화려한 도시 속, 혼자 흑백이 된다는 건

아프기에 좀 더 적당한 곳

by 정윤희

한국에 잠시 들린 작은 체구의 나, 그런 나를 본 K의 어머니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본인의 딸도 외국에 있는 처지이니 감정이입이 더 되셨으리라. 그날 이후로도 계속 애가 쓰이셨는지 어머니는 본인의 딸에게 종종 나의 안부를 물어보곤 하셨다.




“아휴, 걔는 작게 해서 외국에서 혼자 어떡하냐.”


“엄마, 걱정 마. 걔가 밀라노에서 제일 잘 살아.”




처음 이탈리아로 떠나올 때도, 떠나 와서도, 지인들은 딱 한 명만 빼고 아무도 내 걱정을 하지 않았다.




“난 씩씩한 사람이라 아무도 걱정 안 할 줄 알았는데, 걱정된다는 애가 있어서 깜짝 놀랐어.”


“도대체 누가 니 걱정을 하는데???”




M은 참 답답하다는 투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 답답한 애는 M과도 친한 E (걱정을 달고 사는 편)였고, M은 걔라면 그럴 수 있겠다며 웃어 보였다. 어쨌든 E를 제외한 모든 친구들은 마치 옆 동네 보내듯 나를 이탈리아로 보냈다. 단지 네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곳에 가게 되어 축하한다고, 기쁘다고 했다.




나는 눈에 띄게 작은 체구를 가졌다. 하지만 그에 비해 걱정하는 사람이 우스워질 만큼 씩씩하고 단단한 사람이다. 이런 나를 주변에서는 ‘대단하다.’, ‘멋있다.’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사실 역으로 말하면 ‘남에게 의지할 줄 모르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러한 성격이 살아오면서 가끔 문제가 되기도 했다.




멘탈 갑이라 불리는 나는, 전부를 혼자서 끙차 이겨내다가 그것들이 곪아 한 번에 터지는 때를 맞이하곤 했다. 그땐 걷잡을 수가 없어 어디서부터 고쳐나가야 하는지 모르겠는 경지에 이르는데, 그 원인은 돌아보면 늘, 제 때 풀지 못해서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남한테 한번 털지 않고도 스스로 다 이겨내며 살아온 줄 알았는데, 문제가 되는 그것들을 가슴 깊숙한 곳, 그 어딘가에 쿡 쑤셔놓고 외면해 버리며 살아온 거다. 그래 온 이유를 따지자면 명확하지 않지만, ‘아픔을 들어내고 싶지 않음, 들키고 싶지 않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음.’등이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반면, 이탈리아, 이곳은 내 아픔을 알아볼 사람도, 들킬 사람도, 걱정할 사람도 없는 곳이다. 즉, 어떤 상태로 어떤 모션을 취하고 있어도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나는 혼자이니까! 이방인으로 사는 외국에서는 ‘남에게 의지할 줄 모르는 사람’ 이 문제적 성격이 이토록 제격일 수가 없었다.




그 날, 무엇이 그렇게 마음을 뒤틀리게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울렁이던 기분과는 달리, 기꺼이 다시 겪을 수 있는, 겪어도 되는 밤이 가슴속에 남았다. 영화 같은 장면, 눈물이 그렁이도록 아름다운 장면처럼 말이다.




착 가라앉은 기분을 상기시킬 일이 도무지 일어나지 않던 날이었다. 그 기분을 풀어보고자 간 일식집에서 조차 돈이 아깝도록 맛없는 돈가스를 먹어야 했다. 외식 값이 한국의 2배쯤 되는 유럽에서 큰마음을 먹고 오로지 나를 위한 소비를 했는데, 되는 게 죽어도 없는 날이었다.




어느 작가는 모든 게 좋은 날엔 최대한 길게 살아야 한다며 밤잠을 반납하고 새벽까지 하루를 즐긴다고 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이토록 풀리지 않은 날엔 한시라도 빨리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마땅했지만, 밥값을 지불하고 뚜벅뚜벅 걸어 나온 나는 최대한 느린 걸음으로 집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디뎠다. 깜깜 어둠이 내린 밤하늘에 시선을 두고, 기분만큼이나 차분한 날씨를 느끼면서. 그러다 문뜩 시내로 향하는 트램(전차, 대중교통)에 올라탔다.





<그날을 그리며, 당시 쓴 일기>



-아프기에 좀 더 적당한 곳-


지금 기분에 떠오르는 음악을 찾아 들으며, 외국인이란 이유로, 이곳 사람들도 자유롭다는 이유로,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똑바르지 않아도 걷고 싶은 대로 걸으며 집으로 갈 수 있는, 이곳의 밤거리가 좋고, 이곳 사람들의 시끄러운 말소리와 언제나 관광객으로 붐비는 시내 그리고 도시 위를 지나다니는 시끄러운 뜨람(트램의 이탈리아어) 소리. 그 소리들에 묻혀 목청껏 불러도 내 노래 따위 들리지 않는 거리. 그 덕에 좋아서 든, 우울해서든, 부르고 싶은 순간 육성으로 노래 부르며 거닐 수 있어 좋다.



얘네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없어서 좋다. 내 노랫소리 따위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목청껏 노래하며 지나다닌 그 인파 속 누군가는 시끄럽다고 흉을 봤을지 모르고, 못 부른다고 평가했을지 모르고, 동양 애라고 조롱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겪은 세계에서만큼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으니 간단한 말을 알아듣기도 대부분의 말을 못 알아듣기도 한 지금, 지금이 딱 좋다.



힘든 일도 아플 일도 그것들이 없는 세상은 없지만



그것들을 맞이하기가, 견뎌내기가 모든 것이 전보다 이곳이 더 좋다.








이탈리아에 와서 생긴 버릇이 있다면, 답답한 날에도, 좋은 날에도 혹은 자유를 느끼고 싶은 날에도, 바르게 걷던 발걸음부터 풀어버린다는 거다. 틀에서 약간 벗어났지만 그렇다고 너무 많이 벗어난 건 아닌, 그 정도에서 누리는 해방감이 좋았기 때문이다. 불현듯 트램을 타버린 그날도 밀라노 시내에 내려 광장 주변을 술 취한 주정뱅이처럼 뒤죽박죽 정처 없이 걸었다. 그리고 도시의 잡다한 소리 속에 목청껏 노래도 불렀다. 흰 대리석으로 웅장하게 지어진 두오모(대성당)는 까만 밤하늘을 배경 삼아 조명의 도움 없이도 더욱 빛을 냈고, 토요일 밤, 시내로 나온 사람들의 스타일과 기분은 화려했으며, 고풍스러운 주황빛 가로등도 그 분위기를 더 했다. 아무리 뒤죽박죽 다니며, 음정, 박자 다 무시한 채 제 멋대로인 노래를 불러도 각자의 화려함에 취해 거리 속 그 누구도 나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는 듯한, 그 순간, 그 화려함 속에, 나 혼자 흑백일 수 있어 ‘좋았다.’라고 한다면 이해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