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들은 심심하면 던지는 인사가 '어떻게 지냈어? (How are you?)인데, 이 가볍고도 다정한 인사가 왜 그리 무게감이 실려 나에게 닿는지 알 수 없다. 당연하듯 좋았다 대답하고 너는?이라고 되묻는 이 상투적인 다이엘로그가 왜 그렇게 민망한지, 서양인들에게 몸에 밴 자연스러운 인사가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인사라 느껴졌다. 이러한 증상(?)을 겪게 될 거라는 전조는 서양인과 말을 제대로 섞어 본 적 없는 한국 토박이 시절 어느 시기에 나타났다.
외국에서 약 10년 정도 생활을 하고 돌아온 선생님께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을 듣던 때였다. 선생님은 매주 다정히 '잘 지냈어?'라고 물어주셨고, 늘 어색하게 '네'라고 대답했다. 그 반복적인 일이 매주 일어나고 있던 어느 날 선생님은 호기심 가득한 모습으로 말씀하셨다.
"잘 지냈어?라는 말에 다른 친구들보다 유난히 어색해해. 유난히!"
그 이유에 대해 궁금하신 거 같았지만 그냥 아무 말 없이 빙긋 웃고 말았다. 정말로 이유에 대해 콕 집어 알지 못했으며 나만 유난히 그런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남들은 어색해하지 않는구나 싶었다. 내게 '잘 지냈어?'라는 인사란, 오랜만에 만나 한 동안 소식을 몰랐던 사람에게 근황을 궁금해하며 묻는 인사라 생각했다. 그러니까 매주 만나는데 따뜻이 근황을 묻는 그 인사가 내겐 너무 과하게 다정했던 거다. 무뚝뚝한 내 삶이 다정하지 못했던 건데 그걸 일반화시킨 내 탓인지 모르고 말이다. 돌아보니 친한 친구와는 다정한 인사 없이 만나자마자 본론으로 들어갔다. 언제 어떤 이유로 이 대화가 시작되어 흘러왔는지 모를 대화가 자연스럽게 흘렀고 반면 낯설거나 어색한 사람과는 나서서 소통할 수 있는 외향인이 아니었다. 즉, 인간관계가 두 부류로 나뉘는 셈. 굳이 묻지 않아도 근황을 알고 있는 부류와 근황조차 나누기 어색한 부류.
학생시절을 거쳐 성인이 될 때까지 인간관계 그리고 사회성에 커다란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사람을 사귀는 법을 모른다라고 말하곤 한다. 대체로 나를 호기심 있게 생각한 사람들이 내 곁으로 들어와 준 거지 애써서 친해지기 기술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아니, 나름대로 있었을지 모르나 딱히 성공해 본 적이 없는 거 같다. 스스로가 어색했고 곧 상대를 어색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술이 없다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이 세상에 내향인과 외향인이 적절히 잘 섞여 있다는 사실이 내향인에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향인의 무능을 외향인의 능력으로 내향인의 인생을 채워주고 있을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동양인에 비해 비교적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서양에서 그들을 경험하다 보니 '잘 지냈어?'가 하나의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벼운 대화의 물꼬를 트는 인사구나 싶은 생각이 든 거다. 며칠만 안 봐도 건네는 인사가 근황을 묻는 인사인 그들은 잘 지냈다는 대답에서 대화를 그치는 게 아니라 있었던 사소한 일을 던지며 대화를 이어가는 일, 그게 친한 사이 던 몇 번 안 만난 사이던 다정히 할 수 있는 대화라는 거에 차이를 느낀다. 이 지점에서 생각하게 되는 건 내향인은 자기표현,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인게 아닌가 하는 거다. 숨기는 건 아니지만 굳이 어제 혹은 최근에 어디 갔다 왔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등등 자신의 사소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사람이지 않을까? (단지 내 추측이지만). 서양인들을 지켜보다 보면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도 잘하고 사소한 일상 이야기, 그에 대한 감정표현도 잘한다. 꼭 친한 친구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 또 상대의 이야기에 호기심도 잘 가지고 그 이야기에 비롯된 공감이나 자신의 경험도 곁들여 잘 말한다. 굳이 오버스럽게 액션 하지 않더라도 그랬다.
내향인은 에너지를 안으로 담는 유형이라 그랬다. 그래서 혹 정말이지 추측만큼이나 에너지를 밖으로 끌어내서 상대에게 닿게 하는 게 쉽지 않아 자기표현, 자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낼 수 없는 거라면, 그런데 외향인이 부러워 그런 페르소나를 하나 장착하고 싶다면, 어쩌면 이 질문이 통할 지도 모른다. '잘 지냈어?'라고 물어보는 일, '뭐 하고 지냈어?' '이번 주말엔 뭐 했어?'라고 변형해서 물어보는 일, 그렇게 상대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일은 내향인이 평생 가지고 있는 고민을 조금이나마 해결시켜 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