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학부모를 상대해야 하는 입장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이었는데 사실 수업을 성심 성의껏 하는 게 능력 안에서 가장 적당한 태도라고 생각했다. 붙임성이 좋아 학부모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람과 경쟁하자면 장렬히 전사할게 분명한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강점이 있다면 그 분야에 경험해 온 역사가 길고 너무나 좋아하는 분야라는 점과 교육을 대충 여기지 않고 진심일 거라는 점이었다. 인기가 많진 않더라도 마음이 통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무엇보다 수업에 대해 상술로 인한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지점은 없었다. 사실 생계를 위한 업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단지 좋아하는 분야였고 기회가 생겨하게 된 일 정도였다. 그래서 상술이 깨끗이 배제된 마음만으로 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쨌거나 페이까지 적었던 취미 같은 일을 하면서 시간과 마음 그리고 오히려 내 돈을 투자해 가면서 만들어 갔던 수업을 당당히 생각하던 어느 날, '이래서 되나?' 하는 생각이 든 거다. 수업이 끝나면 학부모님께 인사만 꾸벅하고 퇴근을 하던 나. 그런 태도를 임했을 때에는 가장 먼저 성격적인 문제로 장렬히 전사할게 분명했고 딱히 말씀드릴 내용도 없었거니와 무엇보다 생계를 목적으로 한 일이 아니었으니 불편함을 피해 버려서였다. 하지만 그래도 맡겨 주신 학부모님 입장에서는 기대하시는 부분이 있을 수 있고 그래도 선생님 자격인데 오로지 수업만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본질이 수업의 질과 선생님으로서 학생에 대한 마음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낸 용기. 어느 날 깜빡이도 없이 밖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던 어머님들께 다가갔다. 인사만 꾸벅하고 바람처럼 사라지던 내가 갑자기 다가오니 어머님들도 살짝 당황하는 눈치. 괜히 하지 않던 말을 쥐어짜서 학생에 대해 웃으며 말씀드렸는데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나에게 말을 잘 걸던 어머님조차 그 상황을 어색해하는 게 너무나 느껴졌을 때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문제는 마무리까지 이상했다는 점이다. 진짜로 말을 하고 싶어 운을 뗀 게 아여서였는지 뭔가 자연스럽지 못했고 어떻게 마무리 짓고 집에 가야 할지... 돌아서서 퇴근하는 순간까지 단 하나도 자연스럽지 못했음을 어머님들도 나도 다 알 수 느껴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불편하고 낯 뜨거운(?) 기분을 해결할 수 없었던 그 기분을 아는지.
감정은 전염된다. 때때로 내 용기가 공기를 오염시킬 땐 복귀한다. 가만히 있자. 차라리 그게 낫다는 게 짧은 인생에 결론. 얼마나 여러 번을 도전해 봤을까. 영혼을 끌어올려 친근한 척 행동해도 내 연기력은 대체로 어색함을 감추지 못했고 그 연기력은 상대방을 어색하게 만들었으며 내 연기력이 들켰음을 나도 알고 상대도 알게 되는 불편한 상황만이 해결되지 못한 채 공중에 붕 뜬다. 성격을 극복하려 용기 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있을 때가 상대적으로 덜 불편하다는 경험치가 차곡차곡 쌓인 시간이다. 역시 '생긴 대로 살아야 해!'
사실 그렇다. 그래서 어쩌나 그런 성격을 가만히 둬서 사회적인 동물로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나 싶다가도 그 모양대로 잘 살아왔다는 생각도 든다. 가만히 있어도 능숙한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주기도 하고 모양 맞는 사람이 나를 편안해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과 호흡을 이뤄 그 나름 삶이 돌아가기도 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살아지는 곳에서 내 가치가 살아 숨 쉬는 걸 느낀다. 굳이 어필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나'라서 표출되는 색에 매력이 있기도 할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때때로 조바심이 나더라도 조바심을 내지 않기로 한다. 나도 강점이 있을 테고 어딘가에서 발견되기도 할 테니 말이다. 사회생활 중 눈앞에 펼쳐지는 당장의 상황이 외향인에게 치이는 느낌이 든다고 하더라도 내향인은 조용히 내면의 존재감을 쌓아 올린다. 그게 나만 안다 하더라도 언젠가 내 힘이 되어 사회에서 강한 힘을 내는 순간을 만나게 될 것을 잊지 않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