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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희 Oct 27. 2024

표현을 못하는 데 잘하기도 한다

   드러나는 직업은 외향적인 사람만이 할 수 있을 거 같지만 의외로 연예인들 중에 내성적인 사람이 많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모 연예인이 한 방송에 나와서 자신을 비롯해 연예인들 중에 내성적인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와 덧붙여 그래서 은근히 방송 대기실이 조용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그 연예인뿐만 아니라 연예인들 중에 자신은 내성적이고 쉬는 날 집에만 있다는 말을 하는 걸 꽤 많이 본 듯하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난 초등학생 때 친구들과 댄스대회에 나갔었다. 나가고 싶어 나간 건 아니었지만 나가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었던 거 같다. 우연히 나가게 되었지만 신나게 나가긴 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 매년 부모님을 초대해서 선보이는 문화 발표회 행사가 있었다. 각 반에서 준비한 연극, 마술쇼 등등을 선보이는 행사인데 모두가 역할을 맡아야 했다. 그런 행사를 앞두고 우리 반에서도 회의가 열렸다. 어떤 종류와 어떤 구성을 누가 맡아서 준비할 것인가에 대해서 회의하는 시간, 댄스팀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하는데 왜인지 선생님께서 나에게 권유하셨다. 나서는 성격도 아니고 얌전히 있는 학생이었는데 댄스팀 구성하는데 왜 나를 지목하셨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우연히 의외의 장르에 지목을 당한 나는 또 어떤 생각이었는지 하겠다 했다. (스스로 나서서 의견도 내지 않고 나서서 무언갈 하겠다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나에게 뭐라도 끼워 넣어 주려고 던져 봤는데 선생님도 나도 얻어걸린 건 아니었을까?) 그때 당시 그 상황이 참 의문이었지만 혹시 집에서는 까불고 노는 나를 들킨 걸까 생각했다. 어린 마음에 선생님은 다 알고 계실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어쨌든 난 그렇게 우연히 댄스팀에 들어가 춤 연습을 했다. 그런데 일이 커진 건 열정 많은 어른들 덕이었다. 우리에게 댄스 선생님이 붙여진 거다. 우리끼리 소꿈장난 하듯이 안무 짜고 연습하는 게 아니라 전문가에게 안무를 받게 된 거다. 그렇다 보니 연습도 디테일하게 들어가고 컨셉에도 힘이 들어가 의상까지 멋지게 세팅되었다. 그때 당시로는 꽤나 파격적이었던 갈기갈기 찢어진 청바지에 가죽점퍼를 걸쳤고 머리는 흰 실과 함께 땋은 머리를 해 힙합 레게 머리를 흉내 냈다. 그렇게 교내 행사 치고는 힘이 많이 들어간 댄스팀이 탄생되었다. 그런 우리가 아까우셨는지 댄스 선생님은 곧 열릴 댄스 대회에 참가를 제안하셨고 그렇게 얼떨결에 댄스 대회까지 내성인으로는 쉽지 않은 경험을 했다. 


   조용한 관종, 조용한 관심 종자, 전혀 성립되지 않는 두 단어가 한 단어를 이뤄어 낸 것처럼 내향인들에게도 아이러니한 욕구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드러내는 일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표현과 표출에 대한 욕구? 뭐 그런 것?. 내가 발표 따위를 철저히 거부하면서도 춤을 추겠다 한 건 어떤 대상에 힘을 빌려 내면에 있던 나라는 존재에 대한 표현을 분출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있는 그대로의 나를 표현해야 하는 발표와는 달리 부담스럽지 않고 즐거웠기에 대회까지도 신나는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사실 여전히 그렇기도 한 건, 여전히 극내성인으로 살아가는 지금, 요즘도 발표를 한다거나 불특정 다수 앞에서 존재감을 크게 드러내는 일은 찾아볼 수 없지만 어떤 예술이라는 대상에 힘을 빌려 내면에 쌓여있던 감정과 생각들을 표출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글을 쓰는 일이기도 하다. 내 생각에 연예인을 비롯해 예술인들이 의외로 내성적인 경우가 많은 건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라 간접적인 표현, 예술이라는 탈을 빌려 표현의 욕구를 풀어내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역할'이라는 또 다른 틀이 생겼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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