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균 선수를 떠나보내며
가장 오래된 야구에 대한 기억은 데이비스가 삼성의 오승환을 상대로 삼진을 당하며 끝나는 경기 장면이다. 부모님의 고향인 대전에 친척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함께 야구를 보았다. 검색해보니 그 경기는 2006년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였던 듯하고 아마도 모두 들뜬 마음으로 집중했겠지. 이 경기 엔트리에 포함된 선수 중 안영명(현 KT)과 오승환 선수만 현역으로 남았다 하니 시간이 훌쩍 지났음이 체감되지만 여전히 선명하다. 그렇게 야구는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것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헤어 나올 수 없이 한화 이글스가 좋다. 물론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다른 팀 팬도 한 번 도전하고픈 마음이 있다(?) 한국시리즈를 다시 볼 날이 오긴 오려나.
가장 오래된 야구장에서의 추억은 송진우 선수에게 사인을 받은 기억이다. 야구장 앞에서 오랜 줄을 서서 받은 사인볼로 사인이 죄다 지워질 정도로 동생과 캐치볼을 한 기억도 있다. 나중에 공의 가치를 알았을 때는 어떻게든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보려 했지만, 이미 형체도 구별되지 않는 희미한 사인에 이곳저곳 상처만 가득했고 결국 추억 소환용 정도로만 남겼다. 사인을 받긴 했지만 송진우 선수의 현역 시절은 잘 기억나질 않는다. 정민철 단장과 영구결번에 오르는 장면 역시 기억에 없다. 그들은 야구장에 가면 늘 걸려있는 등번호로 더 익숙하게 남았다. 장종훈 선수의 현역 시절과는 더욱 접점이 없을뿐더러 그를 타격코치로만 만났다.
게임에는 워낙 소질이 없어 재미를 붙이지 못하는 편이지만, 유일하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구마구’는 놓지 않았다. 최근에는 모바일 게임으로도 나왔는데 막상 게임 플레이를 즐기진 않는다. 주로 좋아하는 선수 카드를 모으고 강화하며 능력치를 키우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물론 팀은 당연히 한화 이글스고 닉네임은 No.9952다. (지금은 바꾸었지만) 류현진, 김태균 선수의 등 번호다. 볼 때마다 뻔하고 흔하며 다소 오글거릴 때도 있지만 좋은 걸 어쩌나. 최근 성적이 가장 좋았던 18년도 선수들이 팀의 주축이고 바티스타, 로사리오, 박정진, 송창식, 로저스, 김태완, 송광민 등 말하기 시작하면 구구절절한 시절을 소환하게 하는 선수들은 보관함에 간직한다. 각각의 모습으로 나를 웃기고 울렸던 선수들의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은 카드는 바라만 봐도 흐뭇하다. 그렇게 많은 선수를 모아 왔지만 게임 속 4번 타자는 언제나 김태균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늘 김태균이 있었다는 말은 여러 생각이 들게 한다. 한화 팬 한정 정말 든든하다. 새내기 시절 김태균의 사진과 함께 있는 글귀를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설정해둔 G와 한화 팬이란 공통점을 발견하고 반가움에 서로를 붙잡고 덩실덩실 춤을 췄다. 나무위키 못지않게 한화 이글스를 꿰고 있고 한껏 사랑하는 G는 소중한 야구친구로 남았다. 18년 가을야구를 이어가는 9회 극적인 2루타를 때리던 순간을 비롯해 비밀번호를 찍어가며 암흑기를 보낼 때도 (아직 진행 중인가?) 한화를 놓아버리지 않게 해 준 김태균이었다. 타석에 들어서면 뭔가 보여줄 거란 기대가 생겼고 꼭 뭔가를 해주는 타자였다. 14시즌 이후 통산 득점권 타율 1위 타자는 김태균이다. 김똑딱이라는 비아냥 섞인 별명으로 불리면서도 통산 홈런 311개가 말해주듯 큰 거 하나를 때려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선수였으니까. 김태균 타석은 결과를 떠나 나에게 그런 설렘과 애정을 충만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거기에 86경기 최대 연속 경기 출루와 310회로 단일시즌 최다 출루 기록까지. 타율이 떨어지며 에이징 커브를 겪을 때도 김태균은 끝까지 공을 보며 1루를 밟았다. 4할이 넘는 통산 출루율은 팀 성적이 좋지 않을 때도 진가를 발휘하는 김태균의 정체성이었다. 김태균은 팀 성적이 매번 좋지 않았지만 한화 이글스를 사랑했고 나는 특유의 부드러운 타격폼과 엉덩이를 씰룩이던 김태균만의 루틴을 특히 좋아했다.
나의 한화 이글스는 김태균을 빼고 말할 수 없으며 나의 김태균은 한화 이글스를 때고 기억할 수 없다. KBO에서는 한화에만 몸담은 프랜차이즈 선수다. 많은 별명으로 받는 팬들의 사랑을 즐기는 선수였으며 그에 화답하듯 많은 팬은 김태균의 이름을 유니폼에 새겼다. 나 역시도 김태균의 유니폼을 가지고 있다. 후배 중 누군가에는 너무나 소중한 타석이기에 이 기회를 빼앗고 싶지 않다며 은퇴를 선언한 김태균은 은퇴경기에서도 타석에 오르지 않았다. 1루수로 잠시 등장했다가 경기가 시작된 직후 교체되었다. 5월 29일은 그의 생일이자 그라운드에서 떠나는 날이며 52라는 숫자에 담겨 기억되는 날이다. 모든 선수는 한화의 마지막 우승 유니폼에 52번을 달고 경기를 뛰고 팬들은 매시간 52분이 지날 때면 기립해 그의 작별을 함께하고 있다. 경기는 사실 ‘한화스러운’ 결과로 끝이 날 듯하지만 오래 기억하고 싶기에 오늘을 기록한다. 나의 한화 이글스를 함께해주어서 감사합니다. 잘 가요. 김태균 선수.
언제나 한화 이글스는 저의 자존심이었고 자부심이었습니다
2020년 10월 22일
김태균 선수의 은퇴 기자회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