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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잠 Mar 01. 2022

졸업을 했다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 가기로 했으며, 현실을 살기로 했습니다

졸업을 했다. 여전히 그 뿌리를 살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막연한 동경으로 올라온 서울 생활도 어느덧 6년 차를 흘러갔고, ‘화석’으로 요약하던 졸업을 앞둔 사람에 대한 무책임한 묘사가 이제는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있는데 졸업 사진은 꼭 찍어야 할까. 그 시간에 알바나 하며 학비를 마련하는 게 보다 나를 위한 선택은 아닐까 고민한 시간도 있었다. 그래도, 4년 동안 쉬지 않고 몸담았던 공간을 떠나보내는 (어쩌면 다른 맥락으로 계속 유지해야 하지만) 날을 추억하는 것도 필요하겠구나 싶어 그렇게 사진을 찍었다. 막상 찍고 나니 보통은 찍을 때가 되었기에 찍는 사진인데 뭐 하러 그리 난리법석으로 고민했나 싶다. 드디어! ‘돈’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는 내가 꽤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고 스스로 여긴 건가 싶어 부끄럽기도 하고.




“너 같이 공부해서 어떻게 이런 대학에 합격해” 대학교 합격자 조회를 하고, 둘째 동생에게 처음으로 들었던 대입 축하 인사였다. 함께 독서실을 다닐 때 매번 담배 냄새를 풍겨오던 형을 당연히 이해하지 못했던 시절이었겠고, 나에게 독서실은 감시를 피해 불편하지만,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공간 정도였으니까. 고3 때만큼은 유일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공간이 한순간에 도피처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정말 무서웠지만, 한없이 두려웠지만, 한 번 두 번 균열을 경험하자 어느새 편해졌으며 때로는 나에게 유일한 위안을 주는 공간이라고 합리화하기에 이르렀던 듯하다. 그래도 이 정도는 해도 된다고 최면을 걸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전부였던 시절이었기에. 정말로 그것이 삶을 결정지을 수 있다고, 절대로 절벽에서 떨어진 건 아니었지만, 어쩌면 소설 속 가련한 주인공이 된 나를 상정하고 스스로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간절하게 믿었던 때였다. 너무도 슬프지만, 나의 과거다. 누군가 강요했다고, 그렇게 만들었다고, 환경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이제는 대상도 불분명한 그런 분노가, 인과관계를 꼼꼼히 따지지 않은 가벼운 울분이 얼마나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로 되돌아오는지 체감하고 있으니까. 그 말을 내뱉고 집을 떠난 동생은 김밥천국에서, 살기 위한 한 끼를 때웠고 (아마도 더럽게 맛없었겠지) 다시 공부하러 독서실로 향했으니까. 나중에 막내에게 전혀 들은 이야기지만 그때 형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내가 큰 실수를 한 것 같다고, 누구보다 현실적이고 냉혈한이어야만 했던 둘째가 눈물을 흘리면서 건넨 속마음을 듣고는 몇 번이고 무너졌던 때가 생각난다. 지금에야 대학 하나 간 거로 왜 이리 유난이었던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작은 목표가 삶의 전부였던 때가 있지 않을까. 가장 소중한 사람을 질투할 만큼. 그 질투를 이해하면서도 꽤 상처로 오래 기억할 만큼. 그런 나날들을 주고받던 때가 생각났다.




그렇게 대학에 와서도, 날씨가 제법 추워질 때쯤, 수능을 치러야 할 그때가 되면 한 달 정도를 눈물로 새벽을 보냈다. 그들이 제발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나이롱 신자인 주제에 어린 시절 성당에서 몇 번 만났던 듯한, 아득한 기억을 억지로 끄집어 하느님을 외쳐가며. 그렇게 기도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 역시 술안주 정도로 유쾌하게 넘길 수 있다만, 당시엔 꽤 초라했으며 찌질했다. 울지 않으면 잠들지 못하는 나날들을 보내곤 했다. 곁을 지키던 소중한 사람을 다치게 하면서까지.




둘째는 졸업 사진을 찍을 때 내가 건넨 학사복을 입고 몇 번의 거절을 이어가다 결국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걸어두고, 배경 사진엔 나와 함께 행복한 모습으로 서 있는 모습을 올려두고, 그걸 보며 나는 안으로 안으로 끝없이 가라앉았다. 그 감정은 지방의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수시로 진학한 열등한 불확실함이, 그럼에도 스스로 열심히 하지 않았던 시절에 대한 반성이 가득 찬 때가, 입학 이후에도 주변을 뒤흔드는 ‘수시 논쟁’, ‘입시 비리’ 등의 키워드에 그래도 나름의 합법한 절차가 있었겠지 괜히 발끈하던 내가 만들었겠지 생각했다. 입시를 준비할 때에는 대학을 줄 세우고, 진학한다면 마치 서열에 맞게 결정되는 듯 보이는 삶이 너무도 싫었다. 최근 한 유명 번역가에게 했던 한 대학생의 만행(?)이 당시에 바라본 세상 전부인 듯했고, 그것을 감정적으로 온전히 받아내기 힘들었다. 그래서 흔히 좋다고 말하는 대학에 들어가서 목소리를 내자. 정말로 잘못되었다고. 그런 마음으로 공부했다. 그런데 지금은, 여러 알바 자리를 전전하다가 대학원 생활과 병행하기 쉬운 학원 강사로 자리를 잡았으며, 대학원마저도 자대로 입학하지 않았다면 아마 누릴 수 없었던 편한 혜택을 받으며 들어갔다. 아무렇지 않은 듯. 그때의 기억을 한때의 철없던 추억으로 치부하듯. 결국, 현실을 살아야 한다고 최면을 걸며.




군대 선임 J 졸업을 축하한다며 건넨 연락에는 ‘결국 너도 현실 도피하려 하는구나, 그렇게 대학원에 진학했구나아마도 별다른 생각 없었을, 매우 작으며, 상대를 충분히 돌보지 못한 보잘것없는 말들이 섞여 있었다.   하나로 하루를 그리고 일주일을 휘둘렸던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문득, 그래도 현실을 살고 있다고 믿고 싶어졌다. 이곳은 가상현실은 아니니까. 나름의 현실을 살고 있으니까. 그렇게 나이롱 신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당을 찾듯, 오랜 시간 쓰지 않았던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괜히 찔리면서도 대학원 진학을 향한 나의 의지가 거짓이나 현실도피가 아님을 나름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간으로 떠올랐으므로. 앞으로 글을 쓴다면 대학원에서의 나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을 것이기 때문에. 원래는 조금은 멋지게 졸업을 자축(?)하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이런 방식의 글쓰기가 먼저 튀어나옴이  익숙한 듯하다. 지향하고 싶은 글쓰기와 맞닿아 있는 지점인 듯하고. 나는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현대문학을 전공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했다. 같은 대학으로. 조금은 익숙한 공간으로. 앞으로 나만의 현실을 기록할 것이고, 아주 약간만 슬퍼하고 싶을  글을 쓰고 싶어질 듯하다. 당장 내일의 목표는 무엇인지. 조금씩 정리해 기록하려 한다. 내가  대학원에 왔는지, 대강 그렇게 시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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