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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yarel Jan 06. 2019

기저귀 교환대가 버스정류장만큼 많은 나라


베를린 생활 초기, 건물 내 화장실을 다닐때마다 나는 감탄을 했다. 얼른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남편에게도 내가 본 것을 얘기하고 싶어 계단을 쿵쾅거리며 뛰어올라갔다. 나는 남편의 손을 붙잡고 너무 신기한 걸 봤다는 듯 말했다. 

"남편, 여기에도 기저귀 교환대가 있어!" 


예를 들어 을지로3가 뒷골목에 위치한 허름한 식당에 기저귀 교환대가 설치돼 있는 것이다. 화장실을 갈 때마다 너무 놀라고, 신기하고, 환영받는 느낌이 들었다. 


베를린은 오래된 도시다. 1990년 독일 톡일 전에는 분할 통치 돼, 제대로 도시 기능을 할 수 없었다. 도시에 대한 투자도 없었고 개발도 지연됐다. 대부분의 건물이 허름하고, 오래됐다. 그럼에도 아주 높은 확률로 대부분의 화장실에 기저귀 갈이대가 설치 돼 있었다. 기저귀 갈이대가 있는 것은 기본이고, '좋은 식당이다' '센스가 있는 식당이다' 싶을 경우 기저귀, 물티슈 등 기본적인 아기 용품도 갖춰 놓았다. 기저귀 갈이대는 남자, 여자 화장실에 설치 돼 있기 보다 '가족'화장실에 설치 돼 남여가 모두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하람이는 어느 식당에서든 기분좋게 엄마 혹은 아빠와 기저귀를 갈았다. 


식당 건물 뿐 아니라 도시 곳곳에서도 기저귀 갈이대를 만나는 게 어렵지 않았다. 독일에서는 아이 기저귀와 분유 등 아이 관련 용품을 DM(데엠)이나 ROSSMANN(로스만)이라고 하는 생활잡화점에서 판매한다. 한국의 올리브영이나 왓슨스를 상상하면 쉽다. 판매하는 제품 군(群)도 비슷하고, 도시 내 매장 분포도도 비슷하다. 버스 정류장보다 자주 데엠이나 로스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데엠이나 로스만 한켠에 기저귀 갈이대가 설치 돼 있었다. 버스 정류장보다 더 자주 기저귀 갈이대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DM에서 놀고 있는 하람이


데엠이나 로스만은 상당히 많은 PB상품(자체 개발 상품)을 보유하고 있는데, 아기용품이 특히 대표적이다.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품질 좋은 합리적인 PB상품이 많아 부모들이 데엠과 로스만을 애용한다. 하람이도 데엠의 기저귀와 물티슈, 기저귀 전용 비닐봉지 등을 애용했다. 데엠이나 로스만은 기저귀 교환대만 설치해 놓은 게 아니었다. 매장 한켠에 기저귀 갈이대를 설치해놓고 자신들의 PB상품들을 마음껏 쓸 수 있게 해놓았다. 단계별 기저귀와 물티슈, 기저귀 처리 봉지 등을 모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 말이나, 기차, 원목 교구 등을 갖춰 놓아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간이 놀이시설도 함께 만들어뒀다. 하람이도 데엠에서 말타는 것을 어찌나 즐겼는지 모른다. 물론 비용은 따로 없다. 


DM에서 놀고있는 하람이 2


이 기저귀 갈이대를 보며 나는 종종 상상했다. 한국에도 이런 기저귀 갈이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 한국에선 식당 뿐 아니라 공공기관을 방문했다가도 기저귀 갈이대가 없어 건물 한켠에서 기저귀를 갈아주는 부모, 기저귀가 찝찝하다고 우는 아이를 달래 자신들의 차에서 갈아주는 부모들이 많다. 더욱이 한국에서 맘충(mom+蟲) 논쟁이 불거진 이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시선과도 싸워야 한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 맘충 짓을 하는지 안하는지 판단하려는 사람들 속에 휩싸여있는 기분이다. 많은 부모가 주말이면 모두 차를 몰아 백화점으로 향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적어도 기저귀 갈이대가 확실히 있는 곳이니까). 


그러나 한국에 기저귀 교환대만 있다고 해서 달라질까. 베를린에 있으며 나는 한번도 공공장소에서 대놓고 아이 기저귀를 갈아주는 부모를 보지 못했다. 식당 한켠에서 기저귀를 가는 부모는 더욱더 보지 못했다. 주말이면 베를린도 유명 쇼핑몰이나 백화점은 붐빈다. 더군다나 유럽 백화점은 대부분 돈을 내고 들어가는 곳이 많다. 대부분 50센트(약 700원)정도를 요구한다. 그래도 화장실이 붐빈다며 다같이 쉬는 공용 쇼파 한켠에서 기저귀 가는 부모가 없다. 줄을 서서 기다리고, 돈을 내고 들어가 기저귀를 간다. 물론, 쇼파 한켠에서 기저귀를 가는 부모가 있다고 해서, 이를 맘충이라고 욕하는 시민들도 없을 것이다. 


한국 대학가에서 일회용품 줄이기를 위해 가져다 놓았던 텀블러가 열흘만에 500개가 사라지고, 서울시가 따릉이 안전모를 대여했다가 몇달만에 700개를 회수하지 못하는 일은 나의 상상을 더욱 자신없게 했다. 한국에 기저귀 교환대가 있다면 무료 기저귀와 물티슈가 과연 뒷사람들에게까지 남아있을까. 


닭이 먼저 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베를린의 높은 시민의식이 베를린 내 수많은 기저귀 갈이대를 가능하게 한 것일까. 아니면 이 수많은 기저귀 갈이대가 높은 시민의식을 낳은 것일까. 한국에 올 때까지 나는 이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닭이 먼저이냐, 달걀이 먼저이냐를 따지는 것 만큼 이 순서를 따지는 것이 무용한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높은 인프라와 시민의식, 이 두가지는 함께 동반돼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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