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아기와 식당가기
베를린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곳에 비텐베르크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 유명하진 않지만, 살아있는 유럽사에 해당하는 곳이랄까. 개신교가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곳이 바로 이 곳이다. 어느 비오는 주말, 남편과 아이와 이곳을 찾았다.
큰 쇼핑몰이나, 세련된 식당, 이름난 풍광은 없지만 유럽 전역에선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이 과거를 마주하러 온다. 우리도 이들을 따라 옛 종교개혁의 출발지를 거닐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도시 곳곳이 역사의 비밀을 가득히 담은 박물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여행지에서 아이 부모는 으레 긴장하게 된다. 아이와 편하게 밥 먹을 식당이 없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 도시에 대한 한국 사이트의 정보는 거의 전무했고, 외국인들이 많이 찾지 않는 독일 소도시들은 영어 메뉴판이 준비되지 않거나, 영어가 통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아이를 데리고 가도 괜찮은 식당인지 알 수가 없다. 이 때만 해도 독일에 온 지 얼마안돼, 독일어보다 영어가 더 익숙했고, 혹시라도 “아이 데리고 나가라”하는 ‘노키즈존’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항상 했다. 한국에선 아이 데리고 갔다가 안된다는 말에 그냥 나오거나, 아기 의자도 없이 무릎에 앉혀 먹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허둥지둥 식당을 찾다가, 아이 밥 시간이 다 돼 일단은 'Tante Emma'라는 곳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탄테(Tante)가 독일어로 이모니, ‘엠마 이모집’ 정도 되는 식당이다. ‘식당 이름이 이모집인데, 푸근하게 받아주지 않을까’하는 그런 마음으로, 일단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 내부는 상당히 고전적이면서도, 아기자기한 분위기였다. 유모차를 살짝 밀고 들어갔는데, 안에서 얼른 직원이 나와 유모차를 같이 식당 안으로 당겨준다. 남편과 나는 안도의 미소를 서로 주고 받았다. 적어도 아이를 환영하지 않는 곳은 아닌 것이다.
실제 조금 있으니 이모 같은 푸근한 서버들이 다소 촌스러운(?) 혹은 정겨워 보이는 유니폼을 입고 나와 자리를 안내해준다. 아이가 있는 것을 보고, 얼른 아기 의자를 옮겨 주더니, 조금 오래된 듯한 아기 책과 장난감도 가져다준다. 그들은 영어가 조금 서툴고, 우리는 독일어가 서툴러 완벽한 의사소통은 안 되지만, 적어도 우리 아이를 환영한다는 의사만큼은 분명하게 전달받은 것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우리 돈까스와 비슷한 슈니첼과 돼지 안심 스테이크를 주문해 먹었다. 여기에 웨지감자와, 매시드 포테이토를 곁들였다. 독일 감자요리는 언제 먹어도 참 맛있다. 굳이 키즈메뉴를 따로 시킬 필요 없이 아이도 무척 잘 먹는다. 아직 도구(포크나 수저)쓰는 것에 서툴던 아이는, 이내 답답한지 손으로 감자를 집어먹으려 했다.
그때 우리 테이블에 사장님으로 보이는 할머니(식당 소개에 나온 사진과 동일했다)가 오시더니, 재빠르게 담당 서버에게 뭔가를 지시한다. 조금 있으니 서버가 스테인리스 그릇에 들어있던 매쉬 포테이토를 다른 접시에 새로 담아왔다. 아이가 스테인리스 접시에 있는 음식을 먹다가 혹시라도 뜨거울까봐, 접시를 바꿔가지고 오라고 한 것이다. 사장 할머니는 여기에 더해 우리 부부가 편하게 밥을 먹도록 아이 입에 매시드 포테이토를 떠먹여 주고 간다.
독일에 있으며 노 키즈 존을 만난 건 딱 한번이었다.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베를린 내 한국인이 운영하는 유명 일식집에서였다. 그 일식집과 비슷한 가격대의 현지인이 운영하는 일식집에서는 아이 의자와, 아이용 접시, 장난감 등도 갖춰놨으니 일식집의 특징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외에는 대부분이 탄테 엠마처럼 오래된 식당이라도 아이를 배려해주는 곳이 많았다. 유모차가 들어가기 좁은 식당일 경우, 기꺼이 유모차를 같이 들어주었다. 아이 의자를 비치해놓고, 아이가 놀 수 있는 가벼운 장난감이나 그림그리기 도구를 갖춰놓았다. 물론, 식당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 이를 방치하는 부모도 보지 못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