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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yarel Jan 03. 2019

패션의 본고장 유럽 아기들은 어떤 옷을 입을까?

노는데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옷


베를린에 처음 왔을 땐 최대한 예쁜 옷을 골라 아이에게 입히고자 했다. 어린이집을 먼저 보낸 선배로부터 ‘말 못하는 어린 아이일수록 비싸고 좋은 옷을 입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스스로 표현 못 하는 나이니, 외양이 아이를 어느 정도 대변해 준다는 얘기였다. 우리 아이는 아직 말을 못하는 데다, 이방인이니 사람들의 시선을 더욱 신경 써야겠단 다짐이 섰다. 여름은 복장이 간편하니 개입할 여지가 적었다. 시원하던 바람이 쌀쌀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어느 날, 서랍에서 토끼 꼬리가 달린 회색 뜨개 옷과 아이보리 계열의 털실로 짠 바지를 꺼냈다. 유명 명품의 키즈 라인이다. 오늘 나와 남편이 입은 옷을 합친 가격보다 아이의 단벌 옷이 더 비쌌다. 아이는 그 옷을 입고 놀이터로 향했다.


하람이 까꿍


그 무렵 아이는 놀이터를 좋아하는 마음에 비해, 걸음마가 서툴렀다. 뒤뚱거리며 놀이터에 진입한 아이는 그네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가다 넘어졌다. 독일 놀이터는 바닥이 대부분이 흙·모래로 돼 있다. 넘어진 아이를 보며 나는 바지를 생각했다. ‘아, 빨래를 어떻게 하나!’ 


독일은 물에 석회 성분이 많아 빨래할 때마다 나는 애를 먹었다. 뜨개 옷처럼 세탁기에 마음껏 넣고 돌릴 수 없는 특수 소재일 경우 더욱 그랬다. 이 옷이 얼마인지, 세탁하기 얼마나 까다로운지 알 턱이 없는 아이는 울지도 않고 한동안 모래 위에 가만있었다. 그러다 모래의 감촉이 좋았던지 아예 모랫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손으로 흙을 파기 시작했다. 아이보리색 바지에 흙 먼지가 뽀얗게 묻었다. 


아이 옆에는 일찍부터 와서 모래를 파던 다른 아이들이 있었다. 이 아이들이 뭘 입고 노는지 유심히 봤다. 몇 해 전부터 한국에선 스웨덴 등 북유럽이나 프랑스 브랜드의 아동복이 인기를 끌었다. 브랜드마다 가격 차이가 있지만, 비싼 것은 면 티셔츠 하나에 10만원쯤 한다. 일주일치 장을 보는 데 10만원을 쓰는 월급쟁이 부부 입장에선 상당히 비싼 옷이다. 그런데도 다들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한국 엄마들 SNS 상에는 이 옷들을 입은 아이들 사진이 넘쳐났다. 이 브랜드들은 유럽으로 오면 가격이 좀 저렴해지고, 제품군도 다양해진다. 그래서 한국에서 직구 하는 엄마들이 많다. 내가 종종 독일 일상을 온라인 상으로 전하면, 생면부지의 아이 엄마들이 혹시 특정 브랜드의 옷을 대신 구해 줄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독일은 유럽연합(EU) 가입국이라 프랑스에서 사는 것과 같은 혜택을 받는다. 


그래서 더 정확하게는 놀이터에서 나는 이 브랜드의 옷들을 찾았다. 한국에선 더 비싼 돈을 주고 사기도 하고,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 직구까지 해서 입히려고 하는데, 훨씬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는 독일 엄마들은 당연히 이 옷을 더 많이 입힐 것이라고 봤다. 그런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놀이터에 있는 어느 아이들에게서도 이 브랜드 옷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거주하는 동네는 과거 독일이 동·서로 나뉘었을 때 서독이 통치했던 곳에 속한 곳이다. 베를린 내에서도 아이 키우기가 좋은 상당한 부촌(富村)으로 통한다. 운이 좋게도 우리 가족은 특파원 가족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집을 제공하는 주인을 만나 그곳에서 생활하게 됐다. 그 동네 아이들이 돈이 없어 유명 브랜드의 옷을 안 입고 나왔을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독일 아이들이 겨울에 많이 입는 활동복

대신 아이들은 같은 어린이집에서 나왔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위 아래가 붙은 우주복 형식의 방수복이다. 무늬도 없고 그리 고급 소재도 아니다. 아이들이 그 옷을 입고 노는데 한 장면이 떠올랐다. 시골 농번기 농부들이 벌레나 잎사귀 따위가 감히 뚫을 수도 없는 튼튼한 고무 소재의 방수복에 고무장화를 신고서 모내기를 하는 장면이다. 


봄 가을에는 이런스타일의 활동복을 많이 입는다

농부들은 모내기에 최선을 다하고자, 그 옷을 입는다. 일을 하다 옷에 흙이 묻는 것도, 물이 들어가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일에만 집중하려고 선택한 복장이다. 독일 아이들의 복장이 이 모내기 복장과 유사했다. 모래가 묻어도, 흙에서 뒹굴어도, 물에 젖어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옷이다. 독일 아이들은 노는데 최선을 다하기 위한 복장을 택해 놀이터로 나온 것이다. 후에 알게 된 얘기지만 독일 어린이집에선 ‘놀이 옷’이라고 불리는 이 복장을 준비해 보내지 않으면, 아예 야외 활동에 참가하지 못하게 한다.


내게 비싼 옷을 사입히라고 조언한 선배 엄마의 말처럼, 아이 엄마라면 누구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 내 아이를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과 비싼 옷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사실 나도 아직 그렇다. 그때 마다 나는 독일에서 본 장면을 생각한다. 독일 엄마들은 오늘도 내 아이가 어떻게 보였으면, 하는 마음보다 내 아이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놀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놀이 옷을 입혀 아이를 내보낼 것이다. 아이는 부모의 자랑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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