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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yarel Jan 01. 2019

감기에 걸렸나요? 신선한 공기를 마시세요!

과잉진료 하지 않는 독일

독일은 예고 없이 비가 자주 온다. 맑은 하늘을 보고 외출했더라도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경우가 많다. 아이와 함께 외출했을 때 당황하기 딱 좋다. 평균 기온이 10도를 밑도는 11월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람이의 첫 감기도 11월의 어느 비 오는 날에 걸렸다. 우산 없이 아이와 집에서 조금 떨어진 아시아 마트를 다녀오다가 비를 만났는데, 꼼짝없이 감기로 이어졌다. 처음엔 기침만 하더니, 어느새 콧물이 줄줄 흘렀다. 


감기에 걸린 우리 하람이


하람이를 데리고 동네 소아과에 갔더니 감기라고 했다. 코 점막과 목이 많이 부었단다. 콧물 약과 기침약을 처방해줄 거라 우리 생각과 달리, 독일 의사 선생님은 처음 듣는 처방을 내렸다. 

“신선한 공기를 많이 마시게 하세요!” 


콧물이 줄줄 흐르고 쉴 새 없이 기침을 하는 아이를 두고, 열이 나지 않으면 밖에 데리고 나가 뛰어놀게 하라는 것이다. 콧물을 빼주는 일도, 훈증기 치료도 없다. 항생제 처방도 없다. 대신 아기용 식염수를 주면서 ‘자기 전에 숨쉬기 편하게 2방울씩 떨어뜨려 주라’고 했고, 담쟁이넝쿨 추출물로 만들었다는 생약 시럽을 처방하면서 ‘기침을 많이 할 때 1번 먹이라’고 했다. 의사는 물어보기도 전에 "약에 화학성분은 없다"라고 먼저 말했다.  집 안 환기도 꼭 해주라고 했다. 11월이면이미 초겨울에 접어들어 기온이 영상 3~4도 정도로 쌀쌀한때인데도 그랬다. 


우리는 진짜 의사의 처방대로 했다(다른 방법도 없었다). 콧물이 흘러도 열은 없으니, 쌀쌀한 날씨에도 아이를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 놀게했다(아이는 어린이집은 다니지 않고 있었고, 사람이 밀집된 곳은 피했다). 아이는 콧물이 나도 잘 놀았다. 신기한 것은 집에서 줄줄 나오던 콧물이 밖에 나가면 흐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집안에 있으면서 갇힌 공기 속에 지내는 것보다, 정말로 야외에서 신선하고 좋은 공기를 마시니 도움이 됐던 것이다. 우리의 우려와 달리 열이 더 오른다거나 감기가 더 심해지는 일도 없았다. 아이는 정말 항생제 한번 쓰지 않고 3일정도만에 감기를 이겨냈다.  놀고싶은 거 다 놀면서 말이다. 


한번은 아이와 동네 산책을 하고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자지러질 듯 울었다. 무슨 일인가 보니, 아이 입에 침이 박혀있고 입술이 소시지처럼 퉁퉁 부어 있었다. 이게 독일에서 유명한 진드기 ‘쩨케(Zeke)’인가 싶어, 20분 거리 병원을 향해 울면서 유모차를 밀고 뛰어갔다. 눈물범벅의 내 얼굴과 퉁퉁부은 아이 입술을 번갈아 보던 의사는 침착한 얼굴로 “벌에 쏘였다”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동네 도로 이름이 ‘아카시아 길’이었다. 아카시아 나무가 많아 생긴 이름인데, 벌도 많았던 것이다. 의사는 아이가 토하거나 기절 증세가 없는 걸로 봐서 독이 없는 벌 같다고 했다. 벌침을 제거한 뒤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침을 제거했어도 입술은 여전히 소시지보다 더 부어 있는 상태였다. “연고 처방은 없느냐”라고 했더니 “얼음찜질이면 된다”라고 했다. 이번에도 의사 말은 정답이었다. 벌에 쏘인 입술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고스란히 가라앉았다. 


독일은 ‘과잉 처방’이 없는 나라다. 감기에 걸려 약국에 약을 사러 가면, 콧물이 나는지 목이 아픈지를 묻는다. 기침을 한다면 ‘컹컹’ 기침인지, ‘콜록’ 기침인지를 다시 묻는다. 이에 맞게 약을 준다. ‘종합감기약’이란 게 없다. 특히 어린아이일수록 병을 이기는 힘을 길러주는 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웬만한 일에는 항생제나 스테로이드 처방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독일 부모들도 웬만한 일로는 병원을 가지 않는다. ‘독일 부모는 아이가 열이 나면 욕조에 얼음물을 받아 아이를 담근다더라’하는 식의 얘기가 나온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열이 나면 아이를 시원하게 하는 경우는 많지만, 얼음물에 담그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를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과잉하지 않는 것이지 안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가 수두나 수막구균 백신처럼 꼭 필요한 백신 주사를 거르면 법적 처벌도 받을 수 있다. 


사실 한국이 마냥 독일처럼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독일의 공기, 특히 베를린의 공기는 ‘베를리너 루프트(Berliner Luft)’란 고유 명사가 있을 만큼 신선하다. 미세먼지로 인해 외출이 자유롭지 못한 한국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라’는 처방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서울은 베를린보다 인구 밀집도가 월등하게 높아 각종 전염병의 감염이 더 쉽기도 하다. 


감기에 걸려도 즐겁게 그네타는 하람이


그럼에도 한국의 항생제·스테로이드 처방이 너무 과하게 이뤄지는 것은 아닌지, 병보다 병을 낫게 하는 힘을 길러주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오늘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한겨울에 콧물을 흘리며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는 아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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