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툭하면 들리는 말
하람이는 베를린에서 19개월까지 디럭스 유모차를 탔다. 디럭스 유모차란 앞바퀴 2 개가 웬만한 아이들 자전거 바퀴만 한 상당히 덩치 있는 유모차다. 부피가 크고 무겁지만 그만큼 안정성이 있어 아이들이 타기에 안전하다. 독일에선 19개월보다 더 큰 아이들도 디럭스 유모차를 탄다. 하람이도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아마 계속 디럭스를 탔을 것이다.
한국에선 돌이 지나면 대부분 부피가 작고 가벼운 휴대용 유모차로 바꾼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다.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일단 유럽은 한국보다 길이 나쁘다는 것이다. 유럽은 대도시라도 아직 돌 길이 많다. 바퀴가 작은 소형 휴대용 유모차를 태웠다간 돌 사이에 바퀴가 끼어 유모차가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 디럭스를 쓰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는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 질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유모차 들어 드릴까요?”
유모차를 밀면서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할 때, 턱이 있는 장소에 들어갈 때, 계단을 내려가야 할 때, 아무튼 ‘유모차 밀면서 좀 하기 어렵겠는데’ 싶은 순간 거의 90% 확률로 이 질문이 날아온다. 건장한 남성들만 묻는 게 아니다. 30대 또래 엄마들, 가녀린 20대 아가씨들, 혈기 왕성한 10대 남학생들, 60대 할아버지까지 가리지 않고 묻는다. 사실은 말도 잘 안 한다. 어느 순간 누군가 옆에서 나타나 유모차를 함께 들고 있다.
사실 베를린에는 대부분 유럽 건물이 그렇듯 옛 건물을 증·개축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 높은 턱은 물론이거니와, 엘리베이터가 없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지하철을 탈 때도 계단을 이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보다 인프라가 월등하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하람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베를린 시내를 열심히 활보했던 건, 유모차를 밀고 나가면 한 번은 듣게 되는 저 질문 때문이었다.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타는 것도 두렵지 않다. 독일 지하철 내에는 유모차를 실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리 거창한 공간은 아니다. 우리나라가 지하철 노약자석 맞은편에 자전거나 유모차 등을 휴대할 수 있게 자리를 비워놨듯, 독일도 그렇게 해놨다. 거창한 건 이를 대하는 독일 시민들 자세다. 가끔은 지하철 한 칸에 유모차만 2대씩 타는 경우도 있다. 그것도 대부분 하람이가 타는 디럭스 유모차들이 말이다. 비좁고 불편할 것이다. 그래도 애 데리고 대중교통은 왜 타느냐고 눈치 주는 사람이 없다. 유모차가 앞에서 꾸물거리면, 얼른 자신이 유모차를 들어 함께 실어준다. 자신이 더 먼저 줄을 섰더라도 유모차가 못 탈 것 같으면 먼저 탈 수 있게 양보해준다.
살다 보니 독일 사람들이 대단히 친절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독일 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화났나’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로 무뚝뚝하고 원리 원칙주의자들이다. 평소 말도 많이 하지 않는다. 독일인을 이성과 합리의 대표주자로 뽑는 데 이유가 있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다만 그들에게는 유모차를 배려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음식을 먹을 때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먹는 것처럼 말이다. 유모차 들고 왔다고 식당 출입을 막고, 대중교통을 타면 눈치를 주는 게 그들에겐 더 부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렇게 보고 자랐으며, 그렇게 배려하고 배려받아 왔기 때문이다.
하람이와 베를린 어린이 박물관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어린이 박물관 옆에는 청소년 문화 복합시설도 함께 있어 초·중학생들도 많이 온다. 이 날도 한 무리의 아이들이 견학을 왔다. 한 아이가 우리보다 앞서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유모차를 밀면서 얼른 문 열린 틈새로 뒤따라 들어가려는 찰나 문이 닫혔다. 유모차를 세워놓고 문을 열려는데, 지나갔던 아이가 서둘러 우리에게 다시 뛰어왔다. 우리가 들어올 줄 모르고 문을 안 잡아주고 갔다는 것이다. 아이는 문을 다시 열어 우리가 다 지나갈 때까지 문이 닫히지 않도록 잡고 서 있었다. 나이가 많아봤자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일 아이가 말이다.
아마 그 아이는 우리 하람이만 했을 때, 어느 누군가가 서서 그 문을 잡아주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큰 아이가 또다시 누군가의 문을 잡아주고 서 있는 것이다. 과연 우리 하람이는 그 아이 나이 정도가 됐을 때, 어느 누군가의 문을 잡아줄 수 있는 아이로 자랄 수 있을까.
“유모차 들어 드릴까요?”
이 질문이 한국에서 더 많이 들리길 바라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