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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yarel Apr 16. 2019


베를린 사람들의 오지랖

남 일에 관심 많은 것과, 시민의식은 다르다   

베를린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가장 큰 복합 쇼핑몰에 친정어머니와 함께 쇼핑을 갔다. 당시 9개월 정도 된 아이는 오전 오후 2차례 낮잠을 잤다. 쇼핑몰을 돌다 보니 아이가 오후 낮잠을 잘 때가 다가왔다. 다행히 아이는 유모차에서 스르르 혼자 잠들었다. 나는 복합 쇼핑몰의 환한 전등 빛에 아이의 잠이 방해되지 않도록, 얇은 여름용 거즈 소재 속싸개로 유모차를 가려주었다. 


아이가 잠든 틈을 타 친정어머니와 모처럼 여유롭게 쇼핑을 하려고 하는데, 가게 점원이 다가왔다. "우린 여유롭게 둘러보다 갈 거야"라고 하니, '그게 아니'라고 한다. "네 아이 그렇게 속싸개로 유모차를 다 덮어놔도 괜찮니?" 


처음 이 질문을 받았을 때만 해도, 나는 점원이 우리와 간단한 '수다'를 떨고자 아이를 소재로 삼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웃으며 "괜찮아"하고 넘어가려는데, 점원이 약간 심각한 얼굴로 되묻는다. "네 아이 숨 쉬는 데 어렵지 않을까?" 


"얇은 거즈 소재라 충분히 공기가 통하기 때문에 괜찮아. 충분히 숨 쉴 수 있어"하고 말해주니, 그제야 점원이 돌아간다. 기분이 묘했다. 외국인, 특히 서양사람들은 타인의 일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게 우리네 정설 아닌가. 최근엔 한국에서도 타인에게 지적을 하는 문화가 많이 줄었는데, 베를린 한복판에서 이런 '참견'을 당할 줄이야. 특히 한국에선 아이에 관해 지적을 했다간, '고맙다'는 소리 듣기는커녕 괜한 '지적질'하는 사람으로 미움받기 십상인데 말이다. 


괜히 무책임한 부모가 된 것 같아, 서둘러 가게를 나왔다. 한국에선 나뿐 아니라 아이가 잘 때 많이들 유모차에 얇은 거즈 등을 덮기에,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런데 그 옆의 가게에서도 또 묻는다. "네 아이 숨 쉬는 데 괜찮아?" 


서양인들 남일에 간섭 안 한다는 건 정말 거짓말이었나 보다. 혹은 내가 동양인이라 얕잡아 보는 걸까. 똑같은 대답을 몇 번 해주다, 결국 나는 유모차에 속싸개를 씌워 아이 재우는 일을 포기했다. 그러고 보니 독일에선 아무도 그렇게 하는 사람이 없었고, 실제 아이는 속싸개로 빛을 차단해주지 않아도 잘 잤다. 


다행인 것인지, 지내다 보니 베를린 사람들이 타인의 일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은 대체로 맞는 얘기였다. 한 여름에 여성이 상의를 탈의한 채 공원에 누워있어도 아무도 "너 왜 그러냐" "옷 입어라" 등의 참견을 하지 않는다. 노골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도 없다. 대중교통에서 아이가 크게 울어도 '시끄럽다'라고 인상 찌푸리는 이가 드물다. 


하지만 타인의 일에 신경 쓰지 않는 것과, 시민의식을 적극적으로 발휘하는 건 다른 얘기란 것도 알았다. 몇 년 전 한국에서 논란이 된 한 인물이 독일에서 살다가, 아동학대 혐의로 이웃주민의 신고를 받은 일이 있었다. 어린아이가 10여 마리의 동물들과 같이 사는 것을 보고, 주민들이 아이의 불결한 생활을 걱정해 보건당국에 신고했다는 것이다. 독일인의 신고정신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일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한국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면 '왜 남의 집 일에 괜한 참견을 하느냐'며 오지랖으로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이 때문인지 우리는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남의 가정사'라며 눈 감고 몸을 사린다.


베를린 길거리에서 길을 걷던 시민이 쓰러진 것을 본 적이 있다. 몇 초도 안 돼 근처 사람들이 모여 119를 부르고, 심폐소생술을 했다.  한 지인은 "장애인 주차구역에 잘못 주차했다 돌아왔더니 '차 빼라'는 포스트잇을 여러 장 만났다"라고 했다. 


이들에게는 공원에 상의를 탈의한 채 누워있는 것은 관심을 가질 만한 일이 아니지만, 어린아이의 안전문제는 적극적으로 참견해야 하는 일이다. 아동학대로 의심되는 정황이 있거나, 쓰러진 사람을 돕는 일은 절대 몸을 사리면 안 되는 일이다. 


어쩌면 한국은 이게 반대로 된 나라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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