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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yarel Apr 13. 2019

모든 곳이 숲세권인 베를린

공원이 아이를 키운다

아이를 낳기 전엔, 숲세권이란 말을 몰랐다. 운동이 필요할 땐 아파트 피트니스 센터만 가도 충분했고, 역세권이나 주변의 상권이 훨씬 중요했다. 아이를 낳고 나니  숲세권이 얼마나 소중한 지  알겠다. 아이가 흙을 밟고, 잔디를 거닐며, 차 걱정 없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 말이다. 


베를린 사람들은 이 ‘숲세권’이란 말에 동의를 못할 것 같다. 숲세권이란 말은 특정한 지역에만 숲이 있단 말인데, 베를린은 어느 주거지에 살든 대부분 도보 가능한 곳에 숲이 있기 때문이다. 


베를린은 분단을 그대로 감내해낸 도시다. 4개국이 분할 통치를 했고,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으로 오랫동안 나뉘어 있었다. 어느 기업의 본사도, 공장도 장벽으로 나뉜 곳에 투자하는 위험을 감수하지는 않는다. 그랬던 베를린이 통일이 되고, 그 상징성으로 수도가 됐다. 투박하게 말하자면 통일 후 우리 비무장지대(DMZ)가 갑자기 수도가 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비극을 통해 베를린 시민에게 내려진 축복이 '자연'이다. 큰 공장이나, 대기업 본사들로 채워진 높은 스카이라인 대신 베를린 시민들은 개발되지 않은 자연을 선물 받았다. '베를리너 루프트(berliner luft, 베를린의 공기)'란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닌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2018년 1월 베를린에 대해 소개하면서 "메트로폴리탄의 한 복판에서 자연을 경험하며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아주 드문 곳"이라며 "베를린 시민들은 다른 부유한 메트로폴리탄 시민들보다 훨씬 스트레스가 적은 삶을 누린다"라고 했다. FT에 따르면, 베를린에는 2018년 기준 1850개의 공공 놀이터가 있다. 대부분의 놀이터는 자연 속에 위치해있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그 어느 곳을 가더라도 두려움이 없었다. 어느 곳에든 도보권에 아이가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FT는 베를린의 아이들을 "역사 유적지의 한 복판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닌다"고도 했다. 베를린의 허브와도 같은 '마우어 파크'가 대표적이다. 베를린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원 중 하나인 마우어 파크는 예전엔 동서를 가르던 베를린 장벽이었다. 독일어로 마우어는 장벽을 뜻한다. 과거엔 사람들을 나누던 곳이, 이제 사람을 하나로 모으는 공간이 된 것이다. 


Gleisdreieck park 에서 조깅하는 하람이 


베를린에서 우리 가족은 매일 오전 집 근처 Gleisdreieck park에 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남편은 그곳에서 공원을 크게 4~5바퀴 돌며 조깅했다. 아이는 흙을 밟고, 잔디를 뛰었다. 강아지와 토끼를 만나고, 개미를 만졌다. 그렇게 놀다가 조깅하는 아빠가 한 바퀴 돌고 다시 자신 쪽으로 다가오면, 아이가 "아빠"를 부르며 뛰어갔다. 그 모습이 참 좋았다. 큰 플리마켓이 서는 일요일이면 아이와 함께 마우어 파크에 가서 오렌지주스와 군밤을 사 먹었다. 사람들이 장벽에 그래피티 하는 모습도 봤다. 베를린 중심부에 위치한 티어가르텐에서 다 같이 달리기를 할 때도 있었다. 식탁보를 돗자리처럼 펼쳐놓고 그 위에 다 같이 누워 오래도록 해를 쬐기도 했다. 


공원에 누워 좋은 하람이


베를린 공원은 그렇게 나와 아이를, 우리 가족을 베를리너로 조금씩 키워냈다. 


이래서 숲세권이란 게 좋은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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