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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yarel Jan 12. 2019

베를린에서 여행하듯 살기

끝을 안다는 것

우리의 베를린 생활은 끝이 정해진 일이었다. 남편의 특파원 부임 기간이 끝나면 우리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애초에 집 계약도 그래서 1년으로 했고, 돌아가는 비행기표도 날짜가 정해졌다. 날짜가 정해진 비행기표를 가지고 1년짜리 시한부의 삶을 사는 것은 매일을 대하는 우리 가족의 태도를 여러 면에서 바꾸었다. 사실은 처음엔 나도 그 차이가 있는지  몰랐다. 어느 날 같은 교민 엄마의 물음에서 '아 우리가 그랬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다.

"하람이네는 어디든 진짜 열심히 다니는 것 같아요"

이 물음을 통해 나는 우리가 어디든 진짜 열심히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베를린에 사는 대부분의 가정이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사는 줄 알았다.  


베를린에서 우리 가족의 일상은 이랬다. 매일 하루에 한 번 이상 가족들이 근처 공원이나 놀이터 등 바깥으로 함께 외출을 한다. 장은 2일에 한번 정도 근처 마트에서 함께 본다. 일주일에 한 번은 주말에 서는 집 근처 장에 나간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베를린 어린이 박물관이나 과학박물관 등 아이가 좋아할 만한 곳을 찾는다.  한 달에 한번 이상은 근교 도시나 나라로 여행을 간다.


베를린 돔 근처에 놀러나간 하람


또 다른 교민에게서도 비슷한 물음을 받았다. 우리보다 먼저 독일에 정착해서 사는 부부였다. 아직 자신들은 베를린 돔(베를린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도 가보지 못했다며, 언제 그렇게 시간을 내서 다니느냐고 물었다. 질문을 한 두 가정의 공통점이 있었다. 독일에서 아이를 낳고 취업도 한, 독일에 반영구적으로 정착해 사는 가정이라는 점이다.


저 물음들을 받고 생각해봤다. 한국에서의 우리는 어땠는지. 한국에서의 우리는 매일 아이와 하루를 살아내기 바빴다. 주말에 나들이를 갈 때는 결국 근처 복합몰이나 백화점으로 가기 일쑤였다. 차 막히는 것, 주말에 사람들로 붐비는 것에 먼저 겁먹어 아이와 근교 여행은 거의 못했다. 과연 서울에 좋은 곳이 없어서 우리가 다니지 않았을까. 시간이 지금보다 더 없어서 그랬을까.  


베를린에서는 매번 오늘 만나는 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실제로 여행을 다닐 때 보면 이 장소가 좋아서 '아 한번 더 들려야지' 했지만, 결국 못 들리고 가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베를린 삶도 그러리라는 것을 여행 좋아하는 남편과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남편은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거리나 시간, 경제적 비용, 하람이의 컨디션 등을 생각해 고민하면 '하람이의 컨디션' 문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가자는 쪽에 힘을 실어줬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뉘른베르크의 크리스마스 마켓


특히 경제적인 문제 앞에서는 '이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다'며 나보다 더 과감하게 결정을 내렸다. 입장료 아끼지 않았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데 투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절정일 무렵 뉘른베르크(독일에서 가장 크리스마스 마켓이 예쁜 곳으로 손꼽히나 숙박 비싸기로도 악명 높다)의 여행도 그렇게 결정됐고, 나 홀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여행도 남편의 권유로 떠나게 됐다.


힐링 그 자체였던 혼자 떠난 암스테르담 여행 


지나고 보면 많이 다닌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지 못한 것, 그때 피곤하다고, 당장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못 갔던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끝이 있는 건 베를린 생활만은 아니다. 모든 삶에는 끝이 있다. 내가 서울에서 10년 살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특히 아이 키우는 일이 그렇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와의 시간에는 분명히 끝이 있다. 언젠가는 지금의 우리가 그러듯 아이가 더 바빠져서, 혼자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아져서, 부모와의 여행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다만 그 끝을 자각하면서 사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끝을 자각하면서 사는 것, 그것이 낳은 놀라운 차이를 나는 베를린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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