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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yarel Apr 18. 2019

중고매장 단골인 베를린 엄마들

한국에서 바리바리 싸들고 온 아이의 겨울 옷들이 하나같이 작다. 


11월에 태어난 우리 아이는 겨울 옷 선물을 많이 받았다. 한국에서 짐을 쌀 때부터, ‘작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란 걱정을 안 한 건 아니다. 그래도 아니길 바라며(또 한편으론 무럭무럭 자라길 바라면서), '선물 받은 옷들이라 아쉬워서' '지난해 겨울엔 신생아라 몇 번 입히지를 못해서' 하는 다양한 이유들과 함께 머나먼 독일 땅까지 이 옷들을 가지고 온 것이다. 


부모는 아이가 열심히 성장하길 바라면서도, 금세 작아진 아이 옷 앞에선 ‘몇 번 못 입었네’하는 현실적인 고민을 한다. 특히 물려줄 사람도, 물려받을 사람도 없는 타국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런 걱정은 배가 된다. 


더 이상 자랄 게 없는 어른들이야 똑같은 옷을 몇 해씩도 입을 수 있지만, 한창 커나가는 아이들 세계에선 그런 게 없다. 특히 만 1~3세는 하루가 다르게 역변한다. 


꾀를 써서 어느 날은 몇 사이즈 큰 옷을 사서 입히기도 한다. 이런 경우 아이도 ‘작은 어른’인지라, 영 태가 안 난다. 걷는 것도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 그렇다고 딱 맞는 사이즈를 사 입히자니 본전 생각이 안 날 수 없다. 


실용적인 독일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가 궁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레카’를 외치고 싶은 곳을 발견했다.


어느 날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다녀오는데, 아이들과 부모들로 벅적대는 가게가 있었다. 장난감 가게인가, 싶은 생각에 따라 들어가 봤다. 가게 안에는 다양한 아이 물건들이 전시돼 있었다. 옷의 디자인이나, 색깔 등이 통일성은 없었지만 그만큼 여러 종류의 옷과 잡화들이 다양하게 섞여있었다. 종이 위에 손글씨로 투박하게 적힌 가격은 허름한 가격표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저렴했다. 


아이 물품을 전용으로 파는 중고가게였다. 


매장을 찾은 부모들은 중고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아이들 어린이집 끝나는 시간에는, 아이 손 잡고 온 엄마들로 가게가 시끌벅적하다. 다들 매장 내에서 필요한 옷과 소품을 고르는데, 한두 번 와본 솜씨가 아니었다. 우리보다 소득 수준이 훨씬 높은, 선진국의 엄마들이 중고 매장 단골이라는 게 영 어색하고 낯설었다. 


이 풍경은 내게만 낯선 모양이었다. 알고 보니 우리 동네에만 도보 10분으로 걸어갈 수 있는 중고가게가 2~3개 정도 됐다. 주말마다 열리는 플리 바켓(벼룩시장)에도 아이 용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판매자로 등록해 정기적으로 아이 용품을 내놓고 판매하는 부모들도 많았다. 


한국에서도 가끔 온라인상으로 부모들이 작은 아이 용품을 두고 개인 간 거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 간 거래고, 아직까지 중고용품 매장은 ‘기부용’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동네마다 도보 거리에 1~2군데 정도 아이 중고 용품 가게가 있다면, 그저 보여주기 식 매장이 아니라 정말 부모들의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한다면, 적어도 경제적인 이유로 아이를 안 낳겠다는 부모들에게만큼 작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물론, 요즘 한국은 선뜻 옷 물려준다고 하기도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다들 1명 미만으로 아이를 낳다보니(합계출산율 0.98면), 내 아이에겐 예쁘고 좋은 첨단만 주고 싶어 한다. 


어찌됐든 그해 겨울, 우리 아이는 어느 독일 아이가 입었을 방한복에, 방한부츠를 신고 추위를 잘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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