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면 탈 수 있다
막 걷기 시작한 하람이와 베를린에서 가장 자주 간 곳은 집 근처 놀이터다. 독일에서도 놀이터의 주인공은 그네다. 특히 독일 놀이터 그네는 허리 주변에 안전 바가 둘러쳐 있어, 아직 허리에 힘주고 오래 버틸 수 없는 어린아이도 탈 수 있다. 하람이를 그네에 앉혀 살살 밀어주면, 몇 개 나지 않은 이가 다 보일 정도로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아직 어려도 그네 재밌는 것은 아는 모양이었다. 찡찡거리는 하람이를 유모차에 태워 놀이터로 데려나가면, 어느새 울음을 뚝 그치곤 짧은 다리로 뒤뚱거리며 열심히 걸어가 그네 앞에 섰다. 한겨울에도 그네 사랑은 변함없었다. 장갑을 낀 고사리손으로 그넷줄을 잡고 볼이 빨개지도록 그네를 탔다. 그 애의 깔깔거리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절로 웃음이 났다.
어느 인생이 그렇듯, 하람이 그네 인생에도 시련은 있었다. 다른 아이들도 하람이 못지않게 그네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어떤 날엔 그네에 이미 누군가 타고 있거나, 주변에서 그네를 기다리는 1~2명의 아이가 있었다. 그네 주변에 서 있지는 않아도 근처에서 모래 놀이를 하며 언제든 그네가 비면 뛰어올 태세의 5분 대기조 아이들도 꽤 됐다. 열심히 걸어갔는데, 그네를 탈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 하람이는 소리 내 앙앙 울었다. 다른 아이가 그네를 타고 있는데도 무작정 그네를 타겠다고 뛰어들기도 했다. 우리 부부는 “다른 친구가 타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자”라고 아이를 달랬다. 사실 이 ‘조금’이 얼마가 될지는 우리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네 탑승권을 맡겨 놓은 것도 아니니, 앞의 아이가 온종일 타겠다고 들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다행인 것은 내가 독일에서 겪은 이 ‘조금’이 굉장히 합리적이었다는 것이다. 어른인 우리 부부는 물론, 돌을 갓 넘긴 우리 하람이가 인내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우리보다 앞서 그네를 타던 아이의 부모님은 하람이가 그네 옆으로 다가서면, 몇 분 이내로 자신의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10번만 더 타고 미끄럼틀 탈까?” 아이가 10번을 타고도 내리기 싫다고 하면, “이번엔 5번만 더 타고 내리자”라고 했다. 보통 90% 이상의 아이가 이 정도 단계에서 짜증 내지 않고 그네를 양보해줬다. 우리도 양보받은 대로 행하니 어려울 게 없었다. 하람이가 그네를 타고 있는데, 다른 아이가 옆에 와서 서면 “기다리는 친구가 있으니 10번만 더 타자”고 아이에게 말했다. 하람이가 간단한 단어 정도만 구사할 때였다. 10번이 끝나고 내리자고 하니 아이가 싫다는 신호를 보냈다. 5번만 더 타자고 하고, 다 탄 후에는 하람이를 그네에서 안고 나왔다. 아이는 뜻밖에 순순히 따라주었다. 금방 모래 놀이를 재밌게 했다.
한 번은 한 아빠가 하람이만 한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왔다. 아이는 그네가 타고 싶었던 모양인데, 이미 누군가 타고 있었다. 아이는 울지도 않고 그네 옆에 얌전히 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네에 타고 있던 아이가 양보하기 위해 그네에서 내렸다. 기다리던 아이는 아직 혼자서는 그네를 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아이 아빠가 휴대전화로 무언가를 확인하느라 이 순간을 놓쳤다. 그네가 비었는데도 이 아이가 타지 않자, 다른 아이가 그네에 탔다. 그런데도 이 아이는 울지 않고, 다시 또 차례를 기다렸다. 그네를 탄 2번째 아이까지 내린 후에야, 기다리던 아이는 휴대전화 보기를 멈춘 아빠의 도움으로 그네에 탔다. 모래 놀이를 하며 그 과정을 지켜보던 나와 남편은 ‘저 아이가 과연 아기인지 어른인지’, 돌 지난 꼬마의 인내심이 보고서도 안 믿겼다.
기다리면 탈 수 있다. 이 간단한 명제가 아이에게 인내와 신뢰를 심어준다. 양보한 아이는 다음번엔 누군가에게 양보받는다. 어느 순간 놀이터에 간 하람이는 다른 아이가 먼저 그네를 타고 있어도, 뛰어들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하람이 마음에도 신뢰와 인내가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혼자 오래 타면 다음에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 우리 애만 오래 태우면, 다른 애도 더 오래 타는 사회로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