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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이 Mar 09. 2016

왕따, 남의 일이 아니야.

#13. 집단 따돌림

왕따

· 따돌리는 일 또는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을 일컫는 은어


왕따 또는 집단 따돌림. 유쾌한 단어는 아니다. 집단 따돌림까진 아니어도 친구들이 한 아이를 놀리고 괴롭히는 것은 초등학교 때도 있던 일이다. 하지만 이런 것이 점점 심해졌던 것이 중학교 때이다. 그저 조금 깔끔하지 못하거나 외모가 우울하다거나 아니면 잘난 척한다는 이유만으로 따돌리는 것이었다. 폭행까지 가는 일은 없었고 그저 같이 놀지 않고 말을 하지 않는 정도였다. 아니 그보다 심한 상황이 있었는데 내가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은 그 정도가 심해져서 폭행이 아니라 그 이상도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기사화되는 것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제는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그 보다 성숙하다 할 수 있는 어른들이 모여있는 회사에서 조차 집단 따돌림이 발생한다고 한다.  


학교에서 따돌림당한 아이들이 자살을 선택하고, 회사에서 이유 없는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은 흉기를 들고 회사 근처에서 난동을 피우다 경찰에 체포된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모든 이유는 이유 없는 따돌림과 괴롭힘, 그리고 근거 없는 터무니없는 소문 혹은 무관심.

얼마나 큰 이슈인지 큰 문제인지 사람들은 이제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초창기에는 큰 이슈가 되고 기사화가 되었지만 지금은 '나만 아니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듣고 흘려보낸다. 왕따를 당해 자살한 학생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자우림의 '낙화'라는 곡을 봐도 알 수 있듯이 혼자서 견뎌내기엔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엄마, 미안해요
아무도 내 곁에 있어주지 않았어요
아무런 잘못도 나는 하지 않았어요
왜 나를 미워하나요? 난 매일 밤 무서운 꿈에 울어요
왜 나를 미워했나요? 꿈에서도 난 달아 날 수 없어요

자우림 '낙화 가사 中'

나 역시도 이런 집단 따돌림은 피하기 어려웠다. 학창 시절에도, 직장인이 되고 나서 두 번의 어려움을 거쳤다. 첫 번째 겪었던 학창 시절의 따돌림은 약 한 달 정도였지만 나에겐 매우 힘겨운 시간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남녀공학이었기에 아주 심하지도 않았고 그저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따돌림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친구들이 모두 나를 봐도 모르는 척했고 체육 시간에 어느 누구와도 짝을 지어 실습을 할 수도 없었다. 점심을 먹을 때도 혼자였고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했다. 남자 사람 친구들도 대충의 눈치로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고 나는 점점 더 혼자가 되어 갈 뿐이었다. 담임 선생님께 직접 찾아가서 상담을 했을 경우 따돌림이 더 심해 질 것 같아 메일로 상담을 청했었지만 담임 선생님의 잘못된 대처로 인해 나는 더 고립되었다. 결국 보름 정도 참다 화장실에서 혼자 울기도 했었고 다른 반 친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그저 무기력하게 혼자 있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따돌림당하는 이유도 몰랐기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한 달이 지나고 친구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나에게 다가왔고 예전과 다를 것 없이 대했다. 나는 어리둥절 했고 당황스러웠다. 한 달 동안 힘들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다가왔으니 말이다. 그 이후 나는 그 1년이 제일 힘들었으며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학창 시절이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그때의 친구들을 만났을 때 그때 왜 그랬는지 물어봤지만 친구들은 그 일 조차 기억을 하지 못했다. 기억을 하고 있더라도 그때 왜 그랬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게 그 한 달은 나에게만 힘든 시간이었고 성격이 바뀌게 된 계기였다. 


두 번째 겪었던 첫 직장에서의 따돌림은 그래도 첫 번째의 겪었던 따돌림보다는 덜 힘들었지만 그래도 역시 버티기는 힘들었다. 첫 직장에는 여직원이 나까지 총 세명이었다. 경리, 웹 디자이너, 그리고 나. 그러다 보니 같은 팀에는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남자였다. 여자라고 해서 어떤 대우를 바라는 것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남자 직원과 똑같은 대우를 받기 위해 더 노력했고 오히려 다름을 인정해서 배려를 해주기만 바랬었다. 하지만 사무실의 창고 정리, 커피, 담배 심부름, 청소, 택배 보내는 일과 같은 잡다한 업무는 전부 내 차지였고 시스템 엔지니어라는 직업 덕에 다른 남자 직원이 나가야 하는 곳까지 모두 내가 대신 나가야 했다. 지방 출장은 말할 것도 없고 철야 작업을 나가야 하는 담당 직원이 다른 일을 나가면 무조건 그 일은 전부 내가 다 커버해야만 했다. 지방 출장은 갈 수도 있지만 1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여자 혼자 심지어 새내기 신입 여사원이 아무 여관에 들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맡은 사이트들을 전부 돌아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들의 사이트까지 떠맡는 것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나에겐 과부하가 걸렸고 팀장에게 얘기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핀잔 섞인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라는 말 뿐이고 오히려 혼나기 일쑤였다. 심지어는 번호를 없애고 보낸 문자에는 '일 그딴 식으로 하지 마'라는 식이었다. 사무실 내에서 서버 세팅을 해서 나가야 할 때면 설치부터 모두 다 나에게 떠넘겼고 남자 혼자 들기 버거운 서버를 이동시켜야 하는 일도  내가 혼자 해야 했다. 팀원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들어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하지 않은 일들이 어느새 내가 한 일이 되어 욕먹는 일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내가 한 적도 없는 말을 지어내서 소문을 내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그냥 일상이었다. 말 그대로 회사 내 따돌림이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일이 힘든 육체적인 것은 버텼지만 사람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든 것은 정말 버티기 힘들었다. 그렇게 약 2년을 버텼고 더는 버티기 힘들어 사표를 내고 나왔고 개발자로 전향했다. 


성격이 바뀌고 난 이후에는 사람들에게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다 보여주지 않았다. 내가 대하는 사람들의 기분이며 지나가는 말로 하는 세세한 것들까지 기억해 상황에 맞게 대처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타인에게 나는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려주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세세한 것 까지 잘 챙기는 배려심 많은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첫 직장에선 그런 배려심이 나를 버티기 힘들게 만들었고 그 이후에는 나도 어느 정도는 진심으로 까칠한 사람이 되게 만들었다. 

내가 얘기하고 싶지 않았던 두 가지 경험을 얘기한 것은 따돌림이란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얘기하기 위해서이다.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당하는 사람은 얼마나 미치겠고 힘든 일인지. 상황을 해결하고 싶어도 원인을 모르니 해결할 수도 없고 그저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내가 당한 따돌림은 그나마 양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종종 지인들에게 상담이 들어오곤 한다. 물론 내가 당했던 일들은 모르고 해오는 상담이겠지만 나는 내가 겪었던 기분들을 생각하며 상담을 해주곤 했었다. 지인들도 경험하는 일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집단 따돌림이 정말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담임 선생님의 잘못된 대처도 익숙하지 않아 생긴 해프닝이었겠지만 따돌림을 당하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고 실행을 했다면 더 힘들어지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잘못된 일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면 친구가 나서서 따돌림을 바로 잡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같은 팀원이라는 생각을 가졌다면 힘들어 보일 때 도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도 사람이다. 나를 도왔다가 나와 함께 따돌림을 받기 싫었을 것이고 도울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나라면 어찌했었을까? 중학교 때는 그런 친구들을 모른 척했다 해도 고등학교 때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간간이 도와줬었던 것 같다. 적어도 모르는 척은 하지 않았다. 아주 친하게 지낼 수는 없어도 방관하지는 않았다. 나도 경험해 봤었으니까. 사회에 나와서는 나 자신이 스스로 혼자가 되면 되었지 따돌림에 가담하지도 않았고 그런 상황이 생길 것 같으면 그 사람과 그 상황을 벗어나 버렸다. 계속 이어갈 인연이 아니라면 그곳에 계속 함께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는 없으니까. 그리고는 계속적인 도움이 아닌 따돌림당하는 이유에 대해 얘기해 주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 얘기를 해주었다. 하지만 그것대로 실행할지에 대한 선택은 따돌림을 당한 사람의 몫이다. 앞으로 계속 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개척해 나가는 것은 그 사람의 몫인 것이다. 따돌림의 원인만 안다면 해결할 방법과 선택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따돌림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다. 아니 나 조차도 그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도와주는 사람 또는 따돌림의 원인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이는 따돌림받은 이유를 알지 못하니까. 그에 대한 해결책도 나올 수가 없다. 

따돌림은 남의 일이 아니다. 내 일이 될 수도 있다. 내 자식이 겪을 일 일 수도 있다. 사회가 점점 미쳐가고 있다. 우리는 모두 신이 아닌 사람이기에 언제 어디서 어떻게 따돌림을 당할지 아니면 따돌림을 주동하는 사람이 될지 알 수없다. 해결책이라고 나와있는 상황들을 아무리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여도 어느 곳에서는 부당하게 따돌림당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일단 나 자신부터 누군가를 따돌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아니면 내 주변에 이런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것부터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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