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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이 Jun 16. 2016

갑과 을의 나라

#30. 갑. 을. 병. 정

어느 곳에 가도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들은 갑. 을. 병. 정으로 나뉘어 생활한다. 갑을병정이라고 하여 다 같은 갑을병정이 아니다. 갑 안에 또 다른 갑을병정, 을 안에 또 다른 갑을병정, 병 안에 또 다른 갑을병정, 정 안에도 또한 또 다른 갑을병정. 마치 피보나치수열 마냥 끝없는, 한계 없는 갑을병정 놀이에 빠져있고 그 역할에 충실하다. 그 안에서 살아 남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거나 그 상황에 맞춰 나아가거나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예 갑을병정 놀이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말 그대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꼴이다.



갑을병정의 관계는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가장 흔한 곳이 회사이고, 친구사이, 연인 사이, 가족 사이(부부 또는 고부관계)등 에서 볼 수 있다. 흔한 회사에서 고용주가 직원들에게 흔히들 얘기하는 갑질을 볼 수 있고 직원들 사이에서 선배 후배 또는 상사와 부하 직원이란 틀에서도 또한 갑질 아닌 갑질을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다.

못된 시어머니 밑에서 자란 며느리가 나중에 더 못된 시어머니가 된다

 말처럼 갑질을 호되게 당한 사람이 더 심한 갑질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자신이 다니던 회사의 상사가 하던 행동이 싫어 회사를 나와 자신이 회사를 차려 운영하면서 결국은 그 상사가 하던 행동을 그대로 하는 사람, 여직원만 보면 커피 등 잔심부름시키는 사람, 열정 페이 운운하며 어떻게든 월급 적게 주려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자신이 보고 경험 한 행동들을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음에도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또 다른 갑을 관계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갑을관계이다. 비정규직임을 이용하여 정규직이 되고 싶으면 시키는 대로 하게끔 하거나 모욕적인 언사도 참아 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런 것들을 참다못해 폭발시키면 '네가 그러니까 비정규직밖에 못하는 거야'라는 식의 말들만 내뱉는다. 비정규직은 비정규직이 할 일들만 하면 된다. 물론 언젠가 정규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렇게 못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내가 얘기하는 것은 아무리 비정규직이어도 정규직이 시키는 대로 다 할 필요하는 없다는 얘기다. 적어도 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비정규직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법은 없으며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정규직에 비굴해질 필요도 없다. 비정규직이어도 나에게 주어진 일만 제대로 제때 끝낸다면 능동적인 일은 진행할 수 없더라도, 일을 제대로 한다는 것만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면서까지 주어진 일을 할 필요는 없다. 주어진 목숨은 한번 살 몫 밖에는 없으므로 본인이 판단을 잘 해야한다.



가족 사이에서도 갑을관계는 존재한다. 특히 맞벌이 부부가 많은 요즘 많이 보이는 현상이다. 둘이 같이 직장을 다니는 것은 똑같은데 집에 오면 집안일은 죄다 여자 몫이다. 아이라도 있으면 둘 다 야근을 해야 한다면 야근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 여자이다. 물론 이렇지 않은 집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은 여자들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많은 것을 감수한다. 어쩌다 다투기라도 하면 남자들이 화가 나서 하는 말은 대부분 '그거 얼마나 번다고 생색낸다고 일 그만두라고' 이런 식의 말들이다. 그러다 일을 그만 두면 자신 혼자 어떻게 감당하냐고 다시 일하라고 재촉. 도대체 같이 일하는 워킹 맘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이런 일이 발생하면 여자들은 남편이 갑이고 자신은 을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얘기한다.



사회생활은 생각보다 더 치열하다. 아르바이트생이나 백화점 직원, 경비원 아저씨들, 마트에서 물건을 판매하시는 분들, 환경미화원분들 등 각자의 직장에서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해내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갑이라는 이름으로 갑질 아닌 갑질을 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고 오히려 그런 어른들에게 창피함을 주는 청소년들이 있다. 그런 기사나 글들을 볼 때면 창피함과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지 생각하게 되지만 정작 갑질을 하는 당사자들은 창피하다는 생각을 할지가 의문이다. 아마도 그들은 뉘우침보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내가 내 돈 내고 내가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해? 난 내 권리를 주장할 뿐이야'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돈을 지불하는 쪽만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에도 권리가 있다. 그들도 그 직업을 내려놓으면 그리고 돈을 지불하는 쪽도 지불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면 다 똑같은 권리를 가진 사람들일 뿐이다.

이제는 세상이 변했다. '참을 인 자 셋이면 살인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세 번 참으면 병신이다'라는 말로 바뀌었다. 나에게 돈을 주는 사람이고 나의 일자리를 있게 해주는 사람이 하는 말이어도 틀린 말이고 틀린 행동이라면 바른 목소리를 내야 한다. 고스란히 참고 넘긴다고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부당한 것이 있다면 갑과 을의 관계여도 바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필요하다. 영원한 갑도 없고 영원한 을도 없다. 하지만 갑과 을의 나라는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 질 수가 없다. 그래도 언젠간 그 관계가 뒤집힐 수도 있고 아니면 병. 정.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 제발 같은 을병정들끼리는 그러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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