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이 Jul 14. 2016

스물 하고도 아홉

#36. 29

29. 이십구 또는 스물아홉이라고 읽는 이 숫자는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전환점이자 그동안의 생활을 돌아볼 수 있는 나이이다. 스물 하고도 아홉 번이라는 시간을 더 거쳐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여는 것이다. 열아홉과 같은 시기이지만 그때와 다른 것이라면 그때는 이제 어른이라는 문을 여는 것이라 설렘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있었으며 청소년기와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 생각하며 희망차고 활기차게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열어본 문은 현실로 가득했고 오히려 청소년기가 더 편했다는 것을 느끼지만 그 문으로 다시 돌아가기에 너무 멀리 와 버렸을뿐더러 그 문은 이쪽에선 열 수 없는 문이 되어 버렸다. 그저 벽에 뚫려 있는 창문으로 들여다볼 수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 문에 미련을 가질 수 없고 현실 속에서 현실과 치열하게 맞서 싸우기 시작한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지쳐 문득 앞을 바라보면 또 다른 문이 눈 앞에 서있다. 이미 문 하나를 열어본 경험이 있기에 쉽사리 문을 열지는 못한다. 


스물하고 아홉이란 시간이 흘러 앞에 펼쳐진 여러 개의 문. 이번에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열아홉이란 나이에 열 문도 분명 여러 개였을 테지만 아무런 고민 없이 앞의 문만 바라보고 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 여러 개의 문이 보여 고민하여 선택하였다고 해도 분명 현실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는 것은 변함이 없었을 것이라고 예측을 한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내가 한 선택에 후회를 하고 돌아보기 전에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들을 되돌아보고 충분히 마무리 지을 마음의 준비를 끝내고 어떤 문을 선택할지 신중해져야 한다. 그래서 이번엔 신중히 생각하고 결정하여 그 문을 열기 위해 미리 문을 두드렸지만 이번에는 문지기가 있다. 그 문지기는 스물아홉이란 나이와 결혼이라는 것들이란 거대한 장애물이 되어버렸다.


새로운 문을 열기에 여자에게 스물아홉이란 나이가 장애물이 될 거란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경험하니 씁쓸하고 화가 난다. 나이는 내가 먹고 싶어 먹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흘러 저절로 먹게 되는 것인데 유난히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에게는 밝히고 싶지 않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미혼인 상태로 회사 생활을 하면 결혼 안 하냐는 질문과 함께 늘 따라오는 질문 '집에서 걱정하시겠다.' 아니 집에서 내가 결혼하는 것을 가지고 걱정을 하든 말든 상관이 없는 사람이 왜 그런 것으로 걱정하며 안됐다는 눈을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나마 남자친구가 있다면 이 정도지만 남자친구 조차 없다면 그 나이 먹도록 뭐했냐는 식이다. 취업을 하기 위해 면접을 볼 때는 더 가관이다. 물어볼 것들 실컷 물어보고는 최종적으로 나이가 좀 있는데 남자친구가 있는지, 결혼의 여부를 묻는다. 취업을 하기 위해 있는 남자친구도 없다고 하고 결혼 생각이 있어도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하여도 겨우 뽑힐까 말까이다. 이미 결혼한 상태라면 아이 계획을 묻는다. 도대체 취업을 하는 데 있어서 이런 질문들이 왜 필요한 것인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런 질문을 하는 그들 조차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분명 어머니라는 존재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장 회사에서 일을 해야 하는데 결혼한다고 쉬거나 임신을 한다고 해서 쉬면 일에 지장이 있다고 하여 현재 닥치지도 않은 것들을 예상하며 스물아홉이라는 나이를 핑계 대며 채용하지 않는다.


스물 하고도 아홉. 성인이 되고 숨 가쁜 전투를 치르다 잠시 한숨 돌리기 위해 쉬어가는 나이라는 생각이 든다. 되돌아보면서 이것이 내게 맞는 일인지 하고 싶은 일인지를 판단하며 아니라는 판단이 든다면 앞에 펼쳐진 문들 중 하나를 선택해 두드려 보고 열게 되는 나이. 지금도 나에게 이런저런 상담을 해오는 후배들에게 나는 얘기해준다. '지금 생각하기에 그 일이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그만두고 하고자 하는 일을 해보라고. 여자는 나이가 많아질 수록할 수 있는 일이 한정되어버리거나 하고 싶어도 하기가 쉽지 않다고.' 물론 나는 그런 경험을 해볼 수 없었다. 워낙 겁이 많은 성격이기도 했고 내게 맞는 일인지 아닌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기에. 그렇기에 나는 조금은 후회한다고 얘기해 준다. 조금씩이라도 쉬어가며 되돌아봤다면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선택지들을 보지 못한 채 현실과 싸우기만 했다고. 


스물아홉,

 

스물아홉 뒤의 마침표가 아닌 쉼표인 이유는 스물아홉이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는 내 인생에서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잠시 돌아볼 수 있는 시기에 지나지 않는 시기. 어느 누구도 이 숫자를 거치지 않고는 서른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서른으로 넘어가기 전 숨고르기와 앞에 펼쳐진 또 다른 문들 중 어떤 문을 열 것인지 다시 한번 더 선택할 수 있는 시기. 나 또한 한숨 돌리며 내 앞에 펼쳐진 문들 중 어떤 문을 열 것인지 두드리며 정해진 문에 놓인 장애물을 넘어가 서른이라는 새로운 시기에 적응할 것이다. 

스물 하고도 아홉, 서른을 위해 한숨 돌리는 시기. 한층 더 성숙해질 나와 모든 스물아홉의 청년들을 위해.








민's의 다른 글 보러 가기

매거진의 이전글 갑과 을의 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