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이탈리아 피렌체
항상 우리의 출발 시간은 마지막 아침 조식을 먹고 출발할 수 있는 시간. 버스 이동거리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지. 기차를 이용한다면 짐을 챙기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엄청 날 것이다. 무튼 우리를 항상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고 이번 여행을 같이 즐겁게 해 준 운전사 마르코와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 일찍 피렌체로 갈 준비를 하면서도 또 다른 이별을 생각하니 섭섭한 마음으로 조금은 무겁게 시작한 아침. 베네치아에서 묵었던 호텔은 방과 방 사이의 방음이 전혀 되지 않아 조금은 더 피곤했던 밤을 보낸 나로서는 버스에서 다시 숙면을 취하려 했지만! 피렌체 하면 떠오르는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를 보느라 잠을 포기했다. 책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영화는 어떨지 궁금했다. OST로 유명하면서 영상이 엄청 예쁘게 나오는 영화라 알고 있었기에 기대를 하고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배우들의 연기는 어색했고 스토리도 무언가 조금 끊기는 느낌. 볼 것이라고는 영상과 OST 뿐이었다. 영상을 보면서 '색감이 참 예쁜 곳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회백색 외벽에 붉은 지붕들이 있었으니 영상이 예쁘게 나올 수밖에. 그렇게 영화를 다 보자 피렌체에 도착했다.
영화를 봤으면 영화의 유명 OST가 허밍으로 나올 법도 한데 나는 특이하게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가 허밍으로 콧노래로 계속 흥얼거리게 되었다. 왜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피렌체를 돌아다니는 내내 이 노래가 맴돌았다. 그렇게 이 노래를 계속 흥얼거리며 피렌체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잠시 돌아다녔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산타 크로체 성당 앞에서 열렸으며 산타 크로체 성당 역시 회백색 외벽이었고 지하에는 예술가들의 무덤도 있어서인지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게 잠시 동안의 구경을 마치고 시뇨리아 광장으로 이동했다.
시뇨리아 광장은 넓고 조각상도 많았다. 그리고 베키오 궁전. 궁전이라는 느낌보다는 그냥 조금 크고 넓게 지은 시계탑 또는 체스의 루크가 생각나는 그런 모양이었다. 여기서부터 자유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먼저 점심시간이었기에 피렌체에서 유명한 티본스테이크 집으로 가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실내와 실외로 구분되어있었으며 햇살도 따뜻하고 바람을 막을 수 있게 되어있어 동행들과 함께 실외에서 식사하기로 하였다. 총 여섯 명이서 티본스테이크 두 개를 시켰으며 그것으로도 충분할 정도로 양이 많았다. 확실히 크고 두껍다 보니 안쪽으로 갈수록 레어에 가까웠고 너무 극심한 레어였기에 다시 더 익혀달라고 요청했다. 그랬더니 역시 더 익어서 나오긴 했지만 겉은 타는 불상사가... 무튼 한 번은 먹어볼 만한 맛이었다.
그렇게 푸짐한 점심을 먹은 후 현금으로 결제를 하고 나니 환전해온 현금이 다 떨어지는 불상사가..ㅜㅜ 두오모를 보기 위해 조토의 종탑에 올라가려면 티켓을 끊어야 하는데 카드 결제할 곳을 찾아야 했다. 일단 티켓팅을 하기 전 두오모 근처로 가면서 잠시 피렌체를 구경하며 다녔다. 확실히 연인들의 성지라 할 수 있게 연인들 부부 여행객들이 많았다. 그동안 돌아다녔던 여행지들과 다르게 무언가 이탈리아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결국 인솔자의 도움을 받아 카드결제가 가능한 곳을 찾아 티켓팅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참 불합리한 것이 종탑과 두오모에 올라갈 수 있는 티켓임에도 불구하고 두오모는 시간별 예약제라서 시간을 예약하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었다. 무조건 예약을 해야 올라갈 수 있다는 불합리함이... 그래서 결국 종탑밖에 못 올라갔다 왔다. 그런데 그게 그나마 다행이었을지도 모르는 것이 종탑을 오르는 것은 역시 내 튼튼한 두 다리로 올라가야 하는 것은 당연할뿐더러 파리의 개선문을 오르는 길 보다도 더 좁고 단과 단사이가 높아 개선문 때보다 무릎을 더 높이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다 날도 좋은데 겉옷으로 패딩밖에 없던 나는 패딩을 입고 땀을 흘리며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만큼의 땀을 흘릴 가치는 있었다. 종탑을 오르며 중간중간에 본 피렌체와 두오모는 정말 멋있는 곳이었다. 그런 종탑을 오르면서도 나는 내내 '봄날은 간다'를 흥얼거렸고 길이 좁으니 올라가는 사람 내려가는 사람이 서로를 배려하면서 기다려주거나 기다리거나 하면서 막힘없이 오르고 내리는 진귀한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사소한 배려였음에도 서로에게 "Thank you!" 또는 "Have a nice day!"라는 감사인사를 듣기도 하기도 했다는 사실. 우리나라라면 서로 가려고 하거나 싸움이 나거나 해서 길이 막히는 것은 당연했을 텐데 말이다.
땀을 흘리며 도착한 종탑의 꼭대기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거기다 사진 찍기에도 적합하진 않았다. 철책으로 인해 사진을 찍어도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중간중간에 철책이 없는 곳에서 찍은 사진들이 예쁘게 나왔다. 두오모에 올라가면 두오모를 못 보고 피렌체만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두오모보다는 종탑에 올라가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종탑에 올라 풍경사진만 찍을 것이라면 미러리스나 DSLR로 렌즈 초점을 철책 사이에 잘 맞춰서 찍어나 키가 큰 동행에게 부탁하여 철책 너머로 초점을 잡아 전경을 찍을 수 있다면 행운아다. 그 와중에 작은 키로 까치발 들고 최대한 철책 밖으로 초점을 맞추면서 찍은 사진들은 다행히 잘 나온 편이다.
그렇게 긴 시간 종탑을 올라갔다 내려오니 어느덧 자유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려오자마자 물이나 젤라토를 먹을 곳을 찾았고 처음으로 먹은 젤라또는 거의 사기당한 가격으로 사 먹으면서 맛도 별로 였다. 이탈리아에서의 첫 젤라또는 실패였다.
종탑을 올라갔다 내려와서 다시 올려다본 종탑과 두오모의 느낌은 또 달랐다. 이런 건물을 건축한 사람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건물을 관리하고 유지해온 사람들도 대단하게 느껴졌으며 아직까지 그 위용을 떨치고 있는 건물도 위대한 생각이 들었다.
자유시간이 끝나가고 다시 시뇨리아 광장으로 갔다. 그 시간의 시뇨리아 광장은 굉장히 붐볐다. 거기다 집시들도 많았으며 무섭게 하얀 분칠을 한 집시들이 악수를 청하며 돌아다녔다.
여기서 소소한 팁 하나 더! 이때 돌아다니는 집시들의 손을 잡거나 사진을 찍을 때 껴든 집시와 함께 찍거나 한다면 돈은 달라그 런다. 돈이 없다 그러나 적은 돈을 주면 험악하게 변하며 욕을 하거나 끝까지 쫓아온다. 참고로 동행 중 한 사람이 당했다. 옷도 버리고 돈도 버리고... 무튼 수상스럽게 접근하는 사람들은 주의 또 주의 끊임없이 주의하자!
광장에서 모여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이동했다. 종탑에 올라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곳이다. 피렌체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역시 관광객들이 많다. 하지만 종탑을 올라갔다 온 나로서는 메리트를 느끼지 못한 곳이었다. 그나마 메리트라면 종탑에서는 철책 때문에 거슬렸던 뷰가 그런 거슬림 없이 깨끗하게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파노라마 촬영 사진도 넣으려 하였으나 사진 크기가 20M를 넘어서 올라가질 않아 파노라마 촬영한 것을 첨부파일로 첨부한다.
멋있는 전경을 뒤로 한채 이제 마지막 여행지인 로마로 향했다. 버스 동행으로 마지막 목적지인 셈이었다. 로마에 도착하고 버스에 두고 내린 짐이 없는지 꼼꼼히 살핀 후 마르코와 작별인사를 했다. 우리와 함께 한 여행들이 너무 재미있었고 나중에 한국에 여행 오면 만나자는 인사와 함께 작별인사를 마쳤다. 이후 숙소에 체크인을 했고 늦은 시간이어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려 했지만 리셉션에서 뜨거운 물을 줄 수없다는 말에 숙소 앞의 피자집에서 피자 두 판을 테이크 아웃하고 떼르미니 역에 있는 마트에서 맥주와 물을 구입 후 다음 날 있을 바티칸 투어로 인해 새벽에 움직여야 했으므로 24 hour 티켓을 구매하여 숙소로 돌아갔다. 다들 너무 배가 고팠으므로 피자와 맥주로 조금 부족했지만 새벽 투어를 위해 흩어졌다.
하루 동안 헤어짐과 아름다운 색감을 보고 조토의 종탑에 오르며 사람들의 소소한 배려에 놀랐으며 즐겁고도 섭섭한 마음이 드는 여행을 마무리했다. 여행이 이제 종반부에 들어가면서부터 원래의 나라면 안절부절못하고 다시 돌아가야 하는 일상에 대해 걱정을 했을 테지만 이번 여행은 특별했다.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퇴사하고 왔어도 마음이 편안하고 가서도 취업 활동해보고 바로 안되면 더 쉬는 거고 바로 하면 돈 벌어서 또 여행 가면 되지'라는 식의 초 긍정 마인드가 생겼다. 정말 마음의 집착을 놓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한 마음이었고 여행을 즐기는 것 외에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정말 환경이 사람을 바꾼다는 것을 이번 여행을 하며 가장 크고 많이 깨닫게 된 점이며 더더욱 좋았던 것은 좋은 언니들과 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번 여행을 기점으로 여행의 장점을 보았고 여행병에 빠질 것 같은 행복한 고민에 빠진 하루였다.
마음의 집착을 탁 놓고
우주처럼 넓고 자유롭게
- 법률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