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여행의 에필로그.
집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이다. 유난히 더욱더 눈을 뜨기가 싫다. 룸메였던 언니는 아침 일찍 피렌체로 이동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 내가 자는 사이 조용히 떠났다. 조용한 방 안에서 일어나기가 싫어 뭉그적거리다가 또 다른 동행이 다른 비행기 편으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해서 조식을 같이 먹기로 했다. 조식을 먹기 전 겨우 일어나 씻고 조식을 먹기 위해 호텔 식당으로 이동했다. 동행과 함께하는 마지막 아침이었다. 마지막이라고 하며 먹다 보니 그제야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실감이 나며 매일마다 보던 얼굴들을 못 보면 어색할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못다 한 얘기와 교환하지 못한 전화번호를 교환하며 조식을 마무리 지었다.
방으로 다시 돌아와 이제는 정말 집으로 다시 돌아갈 준비를 하였다. 미처 다 챙기지 못한 짐들을 캐리어에 정리해 넣었으며 자주 사용하던 것들을 가는 동안 편안하게 가기 위해 캐리어에 다시 담았다. 여행을 떠나 올 때보다 조금 더 무거워진 캐리어를 보며 '진짜 집으로 돌아가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무언가 착잡해졌다.
그리고 함께 했던 동행 한 명이 먼저 떠났다. 진짜 간다는 실감과 함께 나중에 한국에서 모이기로 다짐을 하며 헤어졌다.
그렇게 하나, 둘씩 떠나고 8명만이 함께 한국으로 떠날 채비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호텔 미팅룸에 모였다. 공항으로 가기 위해서는 떼르미니 역에서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그 버스 티켓을 사야 공항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버스 티켓이 다 팔리면 탈 수 없기에 조금 서둘러 가기로 했다. 떠날 채비를 마치고 호텔 밖으로 나섰는데 날씨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엄청 좋은 날씨가 펼쳐졌고 골목골목으로 산타 분장을 한 악대가 캐럴을 연주하며 돌아다녔다. 날씨에 감탄하며 떼르미니 역에 도착했고 떼르미니 역 역시 경찰 군악대에서 크리스마스 공연 중이어서 사람들이 더욱 북적였다. 그들을 지나쳐 버스 타는 곳으로 이동했고 우리는 티켓을 살 수 있었다. 티켓은 인솔자가 알려주었던 가격보다 조금 오른 가격이어서 모두들 남은 동전을 모두 털어서야 티켓을 살 수 있었다. 그 후 각자의 짐을 버스에 싣고 공항으로 출발.
버스를 타고 가며 마지막으로 바라본 로마는 정말 멋있는 곳이었다. 우리 모두는 그런 로마를 보며 아마 트래비 분수에서 던진 동전으로 인해 떠나는 날 날씨 좋은 것을 보여주고 꼭 다시 로마로 돌아오라는 뜻일 거라며 위안 삼았다. 그렇게 구경하는 것도 잠시. 곧 모두가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티켓을 발권하며 무거워진 캐리어를 수화물로 부쳤고 안에 들어가서 점심으로 먹을 것을 구매하여 먹은 뒤 보딩 타임이 되기를 기다렸다.
보딩 타임이 되어 탑승 후 우리 모두는 장시간 사육의 시간을 거쳤고, 경유지에서 내려서도 2~3시간 정도 되는 대기 시간을 면세점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기도 하고 탑승지 근처에서 앉아서 휴식을 취하며 대기하였다. 길어지는 대기시간으로 인해 모두들 지쳤고 진짜 마지막 목적지인 인천공항에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모두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도착한 서울은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어두컴컴했고 비를 뿌리고 있었다.
무사히 짐을 찾고 그곳에서 우리 모두는 1차 정모를 기약하며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왠지 낯설어 보이는 도로 모습에 어색함을 느꼈고 운전석엔 마르코가 있을 것 같았으며 뒷좌석엔 다음 여행지가 어딘지 찾아보는 동행들이 있고 앞좌석엔 인솔자가 여행에 쓰일 지도를 나눠줄 준비를 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다음번 여행에는 이들과 함께 하지 못할 거란 생각에 괜스레 코끝이 찡해졌고 그것을 애꿎은 날씨 탓으로 돌렸다.
집에 도착해서 짐 정리를 했고 피곤했음에도 불구하고 잠이 들지 않아 사진 정리를 했다. 4개의 sd카드에서 사진들을 외장하드로 옮겼고 그 사진들 중 동행들에게 보내줄 사진을 골라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한동안은 시차 적응을 하지 못한 채 여행의 후유증에 빠져있었다.
이후 빠르게 1차 정모를 했고 우리 모두는 2주 만에 다시 모였음에도 어색하지 않았다. 한참을 먹고 마시고 떠들며 정모를 마쳤으며 그다음 날 나와 동행 중 막둥이와 함께 여행사에서 진행한 연탄봉사에 참여했다.
그러고 나서도 여행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참을 그러던 중 지금의 직장으로 이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여행 생각이 간절했다.
이런 내가 이 여행기를 끝마침으로 인해 드디어 기나긴 여행이 끝났다는 기분이 들 것 같다.
집에 돌아와서 자신의 오래되고 익숙한 베개에 기대기 전까지,
아무도 그 여행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깨닫지 못한다.
- 린 위양 -
정말로 이 글을 쓰면서 내가 다녀왔던 첫 번째 유럽 여행이 얼마나 즐거웠고 행복했던 추억이었는지를 다시 되짚어 볼 수 있었으며 사진 정리를 하며 다시 한번 내가 이 곳을 얼마나 멋있게 봤는지 이곳에서의 감동이 어땠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 감정들이 이 여행기에 담겼다면 성공일 테지만 그렇지 않다면 난 아직도 그 감동을 글로 적는 스킬이 부족한 것일 것이다.
여행을 끝내고 온 지 4개월이 되어서야 진짜 여행이 끝난 기분이 드는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 얼마 전 엄마의 유럽여행 준비를 도우면서 다시 한번 여행의 기억을 더듬었고 엄마의 여행이 끝나고 난 뒤 우리 모녀는 여름에 6일 정도 갈 수 있는 여행지를 찾아보자는 얘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바라는 여행을 빠른 시간에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광활했고 우리나라보다 더 개방적이어서 성소수자들도 거리를 걷다 보면 마주할 수 있다. 또한 우리와 건물 층의 개념이 달라 유럽의 1층을 우리나라의 1층과 같이 생각하면 다른 곳에 내릴 수 있으며 우리나라처럼 데이터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리고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전철뿐만 아니라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역시 우리나라만큼 잘 되어있는 나라가 없다는 것.
우리나라에는 없는 팁 문화 역시 조금 생소하지만 그들에게는 정당한 수단일 것이다.
제일 부러웠던 것은 그들은 정확한 퇴근시간과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 그리고 퇴근 이후 어떤 업무도 받지 않으며 자신들의 취미 생활 또는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하지만 유럽에서 관광지며 문화재를 어떻게 지키는지 그리고 장시간 운전하는 운전자들을 어떤 식으로 관리하는지에 대한 것은 배워야 할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끝으로 다시 한번 나에게 이런 좋은 기억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던 날씨와 장소, 그리고 인솔자와 우리를 편안하게 목적지에 데려다주었던 마르코, 그리고 함께 즐거운 여행을 하고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모든 동행들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고자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고 두려워 망설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한다. 여행을 가고자 마음먹고 하나하나 행동에 옮기면 그리고 일단 비행기 티켓을 사두면 준비할 수밖에 없으며 떠날 수밖에 없다.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만이
자신을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난다.
- 헤르만 헤세 -
헤르만 헤세가 말했듯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여행을 떠나보길, 그리고 낯선 자신의 모습과 대면해 보길 권한다.
ps. 길었던 여행기가 끝이 났습니다. 이제 다시 새롭게 시작한 삶 속으로 들어가야겠죠. 이미 들어가 있었지만 여전히 여행 갔던 기억 속에 머물러있었는데 이 글을 마치고 나니 이제야 여행이 끝났다는 느낌이 드네요. 소소한 여행 매거진에 어떤 여행기가 언제 또다시 올라갈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그렇게 늦지는 않을 것 같네요. 그까지 잠시 안녕히 :) 아 혹시나 엄마랑 같이 6일간 떠날 수 있는 여행지가 있는지 추천해줄 곳이 있으면 추천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