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희 舞姬 “

“1장, 소년과 신사”

by 연정민

어느 싱그러운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그 사내는 평소와 같이 시장 모퉁이 한 구석에서 갖가지 채소와 과일을 푸념하며 팔고 있었다. 문득, 그 소년은 스스로의 처지를 한탄하며 흙 묻은 당근과 무를 바라보며 조금의 서러움과 한숨이 뒤섞인 감정을 느꼈다. 나이 든 신사가 빳빳한 새 지폐를 고풍스러운 장지갑 속에서 꺼내며 낮으며 무뚝뚝한 목소리로 채소의 가격을 물었다. 소년은 나지막하면서 얇은 목소리로 자신 없다는 듯이 금액을 친절하면서도 상반되는 신세를 애써 외면하듯이 입술을 깨물며 읊조렸다. 신사는 못마땅해 보이는 소년의 표정을 어렴풋이 느꼈고 제값보다 더 얹어주겠다는 듯이 장지갑 속에서 은화 몇 닢을 꺼내어 소년의 손바닥에 얹어주었다. 소년은 황급히 얼굴을 감추며 지폐와 은화를 한 손에 움켜쥐고 주머니에 빠르게 쑤셔 넣고서는 신사가 고른 채소를 주섬주섬 넣었다. 소년은 내심 기분이 좋았는지 덤으로 감자 두 개를 신사의 눈빛이 잠시 지나가는 마차의 소리에 이끌려 있을 때 몰래 넣어주었다. 그리고, 인사를 하려던 찰나 신사는 고개를 숙이며 그가 매고 있던 매끈한 가죽가방을 열어 작은 노트와 펜을 꺼내어 가게이름과 이름을 적어주면 다시 또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소년에게 귓속말로 해주었다. 소년은 그 나지막한 목소리와 번지르르한 구두, 방금 다림질한 것 같은 정돈된 양복의 신사에게 질투심과 동경의 감정이 뒤섞여 때 묻은 고무신과 몇 켤레 없는 흰 양말과 그의 구두를 번갈아보며 알 수 없는 감정이 예전부터 있었던 것 같은 가슴의 한 구석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신사가 떠난 후로 소년은 그의 모습을 회상하며 언젠가의 나의 모습에 그의 모습을 투영하며 광이 나는 구두, 미제삭스를 신은 내 발을 그려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 장사 안 해요?”라는 한 여자의 언짢은 언성이 상상의 나래를 끝내버렸다. “네, 손님 무엇을 드릴까요..?” 모처럼 소중한 시간을 깨버린 여자한테 무엇도 팔고 싶지 않은 감정이 솟구쳤지만 아직은 때 묻은 고무신과 누런 양말은 그 감정을 침묵시키고 있었다. 그 여자는 톡 쏘는 톤으로 “당근. “ 짧고도 명확한 발음으로 귀에 찔러 넣듯이 말했다. 당근은 제철이 아니라 오늘도 몇 없어 해가 뜰 때 서둘러가서 제일 먼저 덕수아저씨한테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귀한 것을 나의 상상을 깨버린 이 여자한테 팔아야만 하는 이 상황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뭐 해! “라고 비참한 감정을 느낄 틈조차 주지 않는 이 여자의 냉혹함에 장사를 접고자 하는 생각도 순간 들었다. ”손님, 드릴 테니 잠시만 계세요 “라고 소년은 얼굴이 구겨져 말조차 헛나올것만 같은 것도 꾹 참고 주섬주섬 당근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봉지에 담고 있던 찰나 ”안사.”라고 말하며 이 여자는 눈길을 휙 돌리면서 또각또각 하이힐로 소년의 마음을 짓밟으며 유유히 몸을 돌렸다. 소년은 벙어리처럼 그녀의 짧은 몇 마디 외침과 매서운 눈초리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손에 담긴 비닐봉지를 힘껏 손에 쥐고 스며 나오는 눈물을 흙 묻은 손으러 닦으며 흙으로 범벅된 자신의 눈이 아파오는 것도 모를 정도로 바닥에 주저앉아버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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