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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슴 May 09. 2024

폭력에 맞서: 한강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중략) 개성있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무채색의 옷차림. 가장 단순한 디자인의 검은 구두를 신고 그녀는 내가 기다리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힘있지도, 가냘프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p.1, 채식주의자  



내가 처음 접한 한강 소설은 《채식주의자》였다. 파격적인 서사와 강렬한 이미지,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작가의 치열한 생각이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인 영혜는 어느 날 충격적인 꿈을 꾼다. 그리고 다음 날, 불현 듯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선언한다. 남편을 비롯한 영혜의 주변 사람들은 그의 채식이 음식 취향의 가벼운 전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이 점차 빠져가는 영혜가 채식을 강건하게 끝까지 고집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영혜는 육식을 비롯한 모든 음식을 거부하면서 서서히 죽어간다. 자신은 곧 나무가 될 거라면서 마른 몸을 이끌고 숲속에서 장대비만 흠뻑 맞는다. 영혜가 음식을 먹지 않는 이유는 뭘까. 그는 왜 식물이 되기로 했을까. 누군가의 한 끼 식사를 위해 다른 이의 생명이 바쳐지는 폭력적인 구조에서 벗어나고 싶은 건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 폭력이 자신이 살아오면서 당해온 불가항력의 것, 타인에 의해 대상화 되는 억압과 닮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내겐 영혜가 고기를 거부하는 모습이 동물의 살, 더 나아가 타자의 죽음을 거절하는 행동으로 읽혔다. 식물이 되기를 자처하며 말라 죽어가는 과정은 폭력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일이었다. 타인의 죽음으로 만든 살점이 누군가의 쾌락이 되지 않는 온전한 삶을 향해 살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폭력이 가득한 동물의 세계에서 벗어나 식물이 되는 것은 곧, 인간으로서 생명을 다해 죽는다는 결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작가 한강은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흰》, 《작별하지 않는다》의 소설을 통해 폭력과 억압, 그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시각으로 다뤄왔다. 한강의 소설은, 뭐랄까, 경건한 마음이 들게 만든다. 아뜩한 폭력이 적나라해서, 피해자의 고통을 바라보고 감히 이해하기 힘들어서, 큰 짐을 묵묵히 지고 견디며 글을 써내려가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사뭇 놀라워서.           




피에 젖은 옷과 살이 함께 썩어가는 냄새. 수십 년 동안 삭은 뼈들의 인광이 지워질 거다. 악몽들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갈 거다. 한계를 초과하는 폭력이 제거될 거다. 사 년 전 내가 썼던 책에서 누락되었던, 대로에 선 비무장 시민들에게 군인들이 쏘았던 화염방사기처럼. 수포들이 끓어오른 얼굴과 몸에 흰 페인트가 끼얹어진 채 응급실로 실려온 사람들처럼.

p.287, 작별하지 않는다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주인공 경하는 5월 광주에 대한 소설을 쓴 작가다. 병원으로 와달라는 친구, 인선의 메시지를 본 경하는 급히 인선이 말한 병원으로 향한다. 목공 작업을 하다가 손가락 두 개가 절단된 인선은, 그곳에서 막 접합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었다.      


간병인은 5분마다 소독한 바늘을 꺼내들고 인선의 수술 부위를 찔러 피를 낸다. 잘린 손가락과 남아있던 손가락 부위가 떨어진 채 각자 아물지 않게, 상처를 내어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5분마다 찾아오는 격렬한 고통. 새로운 피를 흘리지 않으면, 잘린 손가락은 고통만 남기고 사라져버린다. 지금의 고통이 싫어서 포기한다면, 사라진 손가락에서 남은 고통이 영원히 인생을 괴롭힐 것이다.      


한강은 제목으로 선언했다. 결코 작별하지 않겠다고. 온전한 손가락으로 돌아가기 위해 괴로워도 매순간 피를 흘리는 것처럼, 폭력으로 훼손당한 삶에서 온전한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폭력의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거듭 떠올려야 한다. 고통이 상처에 상처를 더하는 만큼 괴롭다고 할지라도. 


모든 생명이 생명으로 온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쉽게 작별해서는 안 된다. 기꺼이 상처를 바라보고 괴로움을 견디어 소설로 건네준 한강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을까?
그런 지옥에서 살아난 뒤에도 우리가 상상하는 선택을 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

p.291, 작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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