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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철수 May 02. 2024

손님과 보금자리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된 날. 그 첫날 눈부신 햇살이 생생하다. 이른 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좁게 열린 창문으로 불어왔고 푸른색 커튼을 통과한 햇살이 내 얼굴에 닿았다. 아마도 평일이었고 아마도 늦은 아침이었다. 푹 잔 덕에 햇살이 전혀 싫지 않았다. 오히려 포근했다. 이따금 창밖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는데 바쁜 그들과는 다른 느긋한 내 작은 방이 더 포근하게 느껴졌다. 아직 낯선 곳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덕분에 정해진 일과가 없었다. 내가 할 일은 충분한 휴식뿐이었다.


해가 아직 남아 있을 무렵에는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폈다. 24시간 운영하는 국밥집과 천 원에 세곡을 부를 수 있는 동전노래방을 찾았다. 내가 사는 곳은 빌라가 밀집한 곳이라 늦은 밤이면 조용했지만 조금만 걸어 나가면 번화가가 있었다. 유명 프렌차이즈 식당과 영화관, 술집, 백화점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집 주변에는 유난히 공원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공원에 앉아있는 시간은 없었다.


자주 먹게 될 즉석밥을 데우기 위해 전자레인지를 샀다. 내 돈으로 사는 내 첫 가전이었다. 당시 좋아했던 라임색에 적당한 금액의 제품을 골랐다. 몇 안 되는 옷을 걸기위해 옷걸이도 설치했다. 통돌이세탁기가 있는 좁은 베란다에는 수건을 널어 두었다. 커튼과 색상을 맞춘 이불, 화장실의 체리향 샴푸까지 모두 내가 선택한 내 물건이었다. 좁지만 온전한 내 세상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소중한 보금자리였다.     


행복했던 원룸을 급히 벗어나게 된 이유는 손님 때문이었다.

내가 집으로 들어왔던 가을에도 간혹 손님이 어딘가에서 불쑥 나오곤 했는데 날이 추워지면서 곧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긴 시간 비어있던 방이라 손님들이 미처 나가지 못하고 남아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여름, 손님들이 다시 찾아왔다. 공원과 닿아있는 일층 방이라 한 뼘 정도 두께의 콘크리트 벽을 사이에 두고 손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서로의 구역을 존중하면 좋았을 텐데 손님은 호기심이 많았다. 아무리 창을 잠그고 막아도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그들에게 너무나도 간단한 일 같았다. 세 평 남짓한 좁은 방이라 도망갈 곳도 없었다. 그냥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나는 생존 게임이었다. 처음에는 뿌리는 약을 무기로 덤벼봤지만 손님은 시간이 갈수록 강해졌고 내 무기에 익숙해졌다. 나중에는 기름으로 반질반질하게 코팅된 날개를 펄럭이며 이리저리 내 방을 휘저었다. 반쯤 미쳐버린 손님은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다는 듯 나에게 돌진했다. 항상 마지막에 살아남는 것은 나였지만 승리는 없는 게임이었다. 그래도 참았다.     

내가 이사를 결심한 것은 어느 평범한 여름날 아침이었다.

알람이 울렸고 나는 겨우 눈을 뜨고 침대에서 내려왔는데 침대 아래에서 주무시던 손님이 똑같이 알람을 듣고 밖으로 나왔다. 내 발쪽으로 오는 손님을 보고 기겁을 했다가 안 그래도 없는 힘이 더 빠졌다가 우울해졌다가 화가 났다. 급히 이사갈 곳을 찾았지만 그래도 삼일 정도 걸렸다. 그 삼일이 얼마나 지옥 같은 밤들이었는지. 내 작고 소중한 보금자리는 그렇게 손님들에게 다시 돌아갔다.     


손님이 싫었던 것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이다. 나는 아마도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손님을 싫어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면식 없는 그들을 이렇게 이유 없이 혐오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손님은 나와 한평생을 함께했다. 언제나 곁에 있었고 한 번도 나를 해코지한 적은 없었다. 그냥 ‘존재’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언제부터인지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했다. 선생이라는 호칭와 ‘바기’라는 별명까지 붙여가며 가까워지려고 해보았다. 그들은 나를 싫어한 적이 없는데 나는 왜 그들을 그렇게 싫어하나. 이건 혐오를 넘어선 폭력이 아닐까.     

새 집으로 이사 온 지 한 달이 조금 넣었다. 지금은 황사바람이 불고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쓰나미 같은 더위가 나를 덮칠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여기서도 손님을 만날지 모르겠다. 어떤 식으로 만나게 될지, 인사를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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