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나의 신앙상태에 대한 이야기
JTBC의 “이혼숙려캠프”가 한창 인기다. 한 부부의 사연을 보기 시작하면 그 이야기가 끝낼 때까지 그 방송을 볼 수 밖에 없다. 이혼을 경험한 선배(?)들로부터 이혼의 후 맞이할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하고, 이혼전문 변호사와 상담에 들어간다. 무리한 요구사항을 변호사를 통해 전달할 때면 방송 패널들의 질타가 이어진다. 그렇게 이것저것 따지다가도 상담사(이호선 교수)를 통해 상대방의 내면의 소리를 듣기도 하고, 따끔한 야단(?)을 맞기도 한다. 사이코 드라마(심리극, 심리치료의 일종)에서 역할을 바꿔볼 때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지기도 한다.
가정이란게… 부부 관계라는게 참 어렵다. “도대체 저들은 어떻게 부부가 된 걸까?” 하는의심도 든다. 싸우기 위해 결혼한 것은 아닐 것이다. 주변에 안타깝게도 돌싱이 되는 사례들을 접하면서 결혼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씩 생긴다.
저들은 가면을 쓴 상대방에게 속은 것인가?
결혼이란 건 선택의 문제인가? 그러면 선택을 어떻게 하지?
좋은 가정도 있지만, 도대체 이런 문제는 왜 생길까?
이런 질문들은 아마도 문제를 “피해가자”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내가 선택을 잘해서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굴 만나든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리고 그 문제를 고쳐가며 평생 살아야한다면 어떻게 할텐가?
이 복잡한 질문에 대해 유기성 목사님께서 답하신다. 목사님들께서 말하시는 그 “정답”들… 그것을 일반 성도가 따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목사님 입장에서는 부부, 부모-자식의 문제와 같은 가정의 문제를 글로 남기는 것이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글을 목사님 가정에서 보고 아래와 같이 반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신 집에서는 안그런데 왜 밖에선 착한척 하며 다녀?”,
“아빠, 이렇게 글과 현실이 다른 사람이 목사 노릇을 한다면 저는 교회 안다닐래요.”
유기성 목사님께서는 큰 부담을 안고 책을 쓰셨고, 놀랍게도 책 마지막 “에필로그”에 사모님이 이 책을 감수하며 느낀 바를 적어두셨다. 이즘이면 이 책의 진실성에 대해서는 크게 의심하지 않고 읽어도 되겠다.
책을 통틀어 목사님은 제목처럼 가정이 “십자가에서 살아남”을 강조하신다.
도대체 이 말이 무슨 뜻인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나도 이 문장만으로는 적용이 어렵다.
1. 내 신앙이 문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반대로 사람들이 가정문제에 대해 갖는 생각들을 짚고 넘어가보자.
부부의 문제를 우리는 주로 상대방의 문제, 그리고 사람의 문제로 해석한다.
나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책은 내 아내/남편, 아들/딸,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신앙”에 대한 이야기임을 깨닫게 해준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대상은 부모나 배우자나 자녀가 아닙니다. 나 자신입니다. 내가 나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힙니다. ‘나를 만족시켜줘’, ‘나를 행복하게 해줘’, ‘나를 이해해 줘’, ‘나를 인정해줘’, 우리안에 있는 이런 욕구가 가족을 힘들게 하고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나는 죽었습니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정의 문제가 발생하면 아래와 같이 질문한다.
그 속썩이는 남편/아내를 어떻게 할까요?
사랑이 식은 것 같아요. 더 살 이유가 없습니다.
배우자의 신앙이 없어요.너무 힘든데 어떻게 하죠?
나는 멀쩡한데, 배우자로 인해 내 자아가 무너집니다.
말 안 듣는 자녀를 어떻게 할까요?
부모님이 밉습니다. 내 성장배경을 들어보실래요? 내가 효도를 해야할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는 “나” 중심적으로 문제를 바라본다.
나는 할 만큼 했고, 당신이 나에게 잘 해주지 못해서 문제야! 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자신을 버리라고 목사님께서는 말씀 하신다.
“하나님 우리 가정 변화시켜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지 말고 “주님, 저는 죽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저를 통해 역사하세요. 배우자를 저를 통해 만나 주시고, 아이들을 저를 통해 만나 주세요. 저는 그저 죽었습니다. 저를 쓰세요” 하고 주님께 내어드리는 것이 정답입니다.
나의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나의 판단에 얼마나 오류가 많던가!
세상에는 내가 아는 것 보다는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가정의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확신을 갖고, 자기 주장을 한다.
그리고 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기 보다는 “나”의 생각을 의지하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쏟게 만든다. 답은 그곳에 없다. 그들이 해결할 수 없는 가정문제에 대해 절대자이신 예수님께 맡기고 의지해야 한다.
정말 우리 가정에 하나님의 기적과 같은 변화가 일어나기를 원하시나요? 그러면 이제 진짜 예수님을 믿으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책임져 주셨어’, ‘예수님이 역사하실거야’하고 믿으세요. 믿는다는 것은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자신이 정말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을 믿으면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 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 니"(빌 2:5). 그러면 그때부터 주님이 우리를 통해 놀라운 일들을 이루시기 시작합니다.
목사님은 나 자신의 신앙을 바로 세우라고 말씀하신다.
아니 관계의 문제가 생겼는데, 심지어는 배우자에게 잘해주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고 하신다.
예수를 통해 바로선 나의 모습을 통해서 가정도 알아서 바로 선다고 말씀하신다.
배우자에게 잘해 주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먼저 예수님 안에서 행복하면 됩니다. 예수님 안에서 내가 새로운 피조물 이 되면 됩니다. 자녀가 행복해지기를 원하시나요? 자녀가 행복 해지도록 만들어 주고 싶습니까? 많은 돈을 유산으로 물려준다고 자녀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행복하면 됩니다. 예수 님을 믿고 사는 부모가 정말 행복하면 자녀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좌절하거나 실패해 낙심하게 되었을 때, '예수님 안에 답이 있어. 우리 부모님도 행복할 수 없는 여건인데도 예수님 때문에 행복해하셨어' 하면서 반드시 구원받을 길이 생깁니다. 예수님을 찾아가고,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됩니다.
2. 결혼은 선택의 문제인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결혼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결혼을 선택의 문제로 바라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진로의 문제도 만찬가지다.) 하지만 그 선택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선택한다는것은“마치 당신이 돈을 잘버니 사랑하오. 당신이 나 대신 집안일을 하니 만족하오.”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사랑에 “조건”이 붙는 것이다. 이 조건이 결혼 생활을 얼마나 길게 유지시켜줄지… 의문이다. 반면 목사님은 사랑이 결혼을 지탱하기 보다는 결혼을 했기에 지속된 사랑을 부어주고 사랑이 유지된다고 말씀하신다. 인간의 사랑은… 결국 식는것이다. 한없이 나약하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이 가정에 오면 우린 그 불씨를 계속 활활 타오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라는 말씀에는 '좋은 남편 만나면'이라는 조건이 없습니다. 말 잘 듣는 아내가 있으면' 이나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잘하면'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조건은 다 필요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결혼하고 나서도 연애할 때 처럼 계속 뜨거운 감정으로 로맨틱한 사랑을 나누며 사는 것이 자 연스러운 일이라면 서약까지 할 필요가 있나요?
그래서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이렇게 말했습니 다. "사랑이 결혼을 지켜 주는 것이 아니라 결혼이 사랑을 지켜 주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이 점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랑이 결혼을 지켜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부부가 견딜 수 있겠습니까? 사랑이 식으면 다 헤어져야 되지 않나요?
목사님은 목회자에게 적용되는 엄격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솔직한 고백을 하신다. 설교 욕심으로 설교 준비기간 동안에는 사람 만나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셨던 것. 딸에게 무릎 꿇고 고백했던 일 등을 공유해주신다.
목회자로써 가정을 어떻게 여길까? 어떻게 행동할까? 궁금한 점이 많은데 아래와 같은 내용을 설명하신다.
이따금 교인들로부터 "은혜 받았습니다', 목사님 참 귀하십니 다라는 말씀을 들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춤을 추고 좋아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분은 그저 겉으로 보이는 제 모습만 보고서 저를 칭찬하시고 높여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아내가 저를 칭찬하면 다릅니다.
아내가 "당신은 참 훌륭합니다. 오늘 말씀이 정말 은혜로웠습니다. 하면 진짜로 혼자 화장실에 가서 춤출 일입니다.
3. 부모와 자녀의 이야기
특히 재밌던 내용은 자녀가 부모 탓하며 효도를 미룰 수 없다는 대목이다. 성경에서 좋은 아버지로 그려지는 “탕자의 아버지”가 있다. 탕자의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라서 자녀들이 엇나간게 아닌 것 처럼, 부모가 나빴기 때문에 내가 효도를 안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것 또한 맞는 생각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준다. 그밖에 효도에 대해 생각해볼 만한 내용을 아래와 같이 적어주셨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아버지도 정말 좋은 아버지였습니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아들도, 둘째 아들 자 도 효자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정말 좋은 분이라고 해서 자녀 들이 효자가 되는 것은 아님을 보면서, 내가 불효하는 원인이 부모에게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알아 두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부모가 특별히 나 쁜 사람이라서 우리 마음에 상처를 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모도 어쩔 수 없는 사람입니다. 자녀는 부모와 함께 어린 시절 을 보내면서 부모의 모든 것을 알게 됩니다. 약점, 왜곡된 문제, 위 선적인 태도, 잘못된 행동을 다 보았기에 자녀에게는 심각한 문제 가 됩니다. 나이가 들어서 어른이 되면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상처 를 받아도 심하게 다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풀어낼 수 있는 능 력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정 못 견디겠으면 싸우거나 항의 를 하고 재판까지 갈 수도 있습니다. 상처를 받기는 하지만 어릴 적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보다 깊지는 않습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상처받은 것을 다 기억한다는 내용) 그런 식으로 따지면 자녀는 부모에게 잘못한 것을 다 기억하나요? 자녀도 잘 모릅니다. 의도적으로 부모에게 상처를 주려고 하 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의도가 있었다면 기억날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도 어쩔 수 없어서 했던 일이 부모에게 상처가 된 것 입니다. 이렇게 부모와 자녀는 서로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눈 덮인 산길을 올라가서 절벽 앞에서 뛰어내리려던 그녀는 자 기가 걸어온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눈 위에 자기 발자국이 찍혀 있는데 너무 삐뚤삐뚤한 것입니다. 분명히 자기는 똑바로 걸어왔 는데 어떻게 이렇게 삐뚤삐뚤한지 의아했습니다. 그때 어머니 생 각이 났습니다. '나는 바로 걷는다고 걸어도 이렇게 삐뚤삐뚤할 수 있는 거구나. 나도 그렇구나. 어머니도 잘 살아 보고 싶었고 바 로 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마음대로 안 되었던 것뿐이구나.' 그러면서 어머니를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4. 글을 마치며
나는 교회를 다니든 다니지 않든 “깨어진 가정”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결혼을 선택한 과거의 선택을 비난하지 않길 바란다. 잘못된 길을 들어섰으니 끊어내자고 하기보다 다시 붙이기 위한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결혼은 선택이 아닌 지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잘못을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상대방을 바꾸는 일이 좀 어려운가? 하지만 나 하나 변화시키는건 내가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이다. 이책을 지금도 고통받을 많은 가정에 소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