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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L Oct 01. 2023

취향의 고고학

취향 시리즈 1탄

취향의 시대

2022년의 마지막 날, 서촌의 한 카페에서 야마구치 슈의 <비즈니스의 미래>를 읽었다.

자기충족적인 사회에서는 편리함보다 풍요로움이, 기능보다는 정서가, 효율보다는 낭만이 더욱 가치 있는 요소로 요구된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성을 발휘해 각자의 영역에서 ‘도움이 되는’ 일보다는 ‘의미 있는’ 일을 추구해야 사회의 다양화가 진척되고 고유의 ‘의미’에 공감하는 고객과의 사이에서 화폐 교환만으로 연결되어 있던 경제적 관계와는 다른, 단단한 심리적 연대감을 형성하게 된다. - p.161. <비즈니스의 미래>, 야마구치 슈

저성장과 인구감소의 시대. 

사람들은 경제적 합리성보다는 ‘가치’와 ‘낭만’을 찾기 시작한다는 것이 책의 핵심이다.

자기만의 ‘취향’을 충족시키는 장소를 찾고, 물건을 소비하고, 음악을 듣고, 이를 SNS에 올린다.

‘취존(취향 존중)’이라는 말은 조금 철 지난 용어같기는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바야흐로 ‘취향의 시대’가 아닐까.


'오픈런' 불사하는 위스키 열풍...불황형 소비 아닐까

젊은 세대에 불어닥친 ‘위스키 열풍’은 지금이 취향의 시대라는 하나의 방증이다.

소주보다 몇 배는 더 비싼 위스키의 판매량이 늘어난 이유는 위스키를 사서 마시는 즐거움이 더 크다고 소비자들은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소비자들의 취향을 사로잡는 것이 중요한 목표가 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더현대’는 ‘에루샤’(전통적으로 백화점 매출을 대표했던 세 명품 브랜드-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없이도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팝업 스토어’를 통해 업계 1위의 매출과 화제성을 달성한 바 있다.


출처: https://economist.co.kr/article/view/ecn202302010077

하지만 소비자들의 취향을 공략하는 것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는 패션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손쉽게 인기 있는 스타일링을 확인하고,

자신의 취향을 확립해 옷을 구매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함으로써 급속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무신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는 사람들의 많아지게 되면서,

역으로 ‘무신사 랭킹’에 오른 옷들을 구매하기 꺼려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기도 하다.


무신사가 추천해준 (대중의) '취향'을 취향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무신사나 입점 브랜드의 입장에서는 참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남들과 달라지고 싶어하는 것이 이 시대 취향의 특성일까?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는 것이 트렌드가 되는.. 복잡한 세싱이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역사성을 살펴보아야 한다"

라는 미셸 푸코의 말을 따라

먼저 취향의 역사를 돌아보며 취향의 정체를 밝혀보자.


들어가기 전에: 취향의 정의

먼저 ‘취향’을 좀 더 엄밀하게 정의하고 넘어가자.

취향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이로부터 다음 두 가지 명제가 ‘취향’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임을 알 수 있다.  

취향은 ‘감각적 경험’이다.

취향은 여러 가지 선택지 중 끌리는(선호되는) 하나이다.


하지만 아직 뭔가 부족하다.

EX 1. 오줌이 마려워서 화장실에 갔다. 이건 취향인가? 
(당연히 아니다.)
EX 2. 오늘 점심 학식 메뉴는 돼지국밥과 파스타. 그중 돼지국밥을 먹었다. 
나의 감각적 선호인 ‘돼지국밥’을 취향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다음 두 가지 조건을 더 추가해보자.  

취향은 자아의 표현 수단이다.

취향은 문화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사실 두 명제는 at most 동치이다. 

왜냐하면 자아를 구성하는 의미(가치)는 사회적 상황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아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돼지국밥이 취향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예를 들면 최근 국밥이 일종의 남자들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사회적 의미가 형성되어서일지도, 

아니면 서울에서 보기 힘든(그렇지도 않은 것 같지만) 경상도 지방의 음식이라는 희소성 때문일 수 있겠다.


반면 나는 사실 그냥 어릴때부터 집앞에서 돼지국밥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돼지국밥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나 자신을 규정지을 수 있는 정도의 특별한 의미는 못 느낀다. 


이 경우 나의 취향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을 것이다. (자아 표현 x, 감각적 o, 선호 o)

사실 취향에 대한 좁은 의미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앞으로 논의할 취향은 이에 대해 한정한다.

대신 나는 West Java산 원두로 내린 cold-brew 커피를 먹는 sexy guy.

종합하면 취향은 "자아 표현(1)의 수단이 되는 감각적(2) 경험에 대한 선호(3)"라고 할 수 있겠다.


취향의 역사

개념적 지식은 논리학(logic)을 통해 그 완전성, 즉 진리에 도달하고, 감성적 인식은 미학을 통해 그 완전성, 즉 미에 도달한다. - 바움가르텐


18세기 근대미학의 중요한 패러다임 전환은,

플라톤의 초월주의적 미학을 뛰어넘어

"미는 대상 속의 어떠한 성질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서 구상되는 것"이라는 원칙을 밝혀낸 것이다.


그렇다면 미에 대한 주관적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미의 판단이 주관적이라고 해서 미에 대한 기준이 각자의 개인에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반 고흐의 그림보다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이 더 아름답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출처: GoodReads)

이에 데이비드 흄은 <취미의 기준에 대하여(Of the Standard of Taste)>에서 5가지 조건을 갖춘 소수의 비평가들만이 '참된 미의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흄이 제시한 조건의 타당성에는 다소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이는 당시의 시대적, 계층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흄의 주장의 진정한 의의는 

"주관적 판단의 기준은 상호 주관의 공유를 통한 객관성으로 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즉, 개인의 취향은 어느 날 독자적으로 우연하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1세기 후,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구별짓기>(1979)에서 이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근대적 개인은 ‘개인’으로서 존재한 적이 없다. 개인으로서의 구체적 행동과 선택은 아비투스(버릇)에 근거한 것이다. 
취향이란 말의 이중적 의미는 통상 '취향은 자연스럽게 타고난다'는 환상을 정당화하는 데 봉사하는데,실제로 문화를 통해 형성됨에도 불구하고 마치 타고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런 환상이 나타난다.


그는 구조주의적 틀 아래에서 취향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지배계급-중간계급-민중계급은 각 계급의 아비투스에 따라

각각 정통적 취향, 절충적 취향, 대중적 취향을 가진다.

20세기 2번째로 가장 많이 인용된 학자라는 부르디외 (출처: 주간조선)

18세기 무역으로 부자가 된 신흥 자본가들이 특권층에 편입하기 위해 

귀족들의 정통적 취향을 모방하고자 했던 것...부터

현대의 명품 소비 행태까지,

취향은 사회적 위계를 반영한다는 부르디외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한편 1950년대 등장한 매스 미디어는 취미판단의 기준을 형성하는

또 하나의 요소로 부상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아도르노 (출처: 나무위키)

아도르노와 호크하이머는 문화를 미디어에 의해 생산되는 대중문화와 

자발적으로 만들어지는 민중문화로 구분했으며

대중문화 산업이 동일화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했다.

미국의 사회학자 폴 디마지오 (출처: 위키백과)

더 나아가 폴 디마지오는 매스 미디어의 영향력이 점차 증가함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부르디외의 이론에 비판을 제기한다.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별이 현대사회에서는 모호하고 교차한다. 여가활동에 더 많은 소비를 하게 된 현대인들은 계층 간의 구분에 상관없이 전통적인 고급문화를 선호하여, 그러한 문화는 이제 여러 매체를 통해 대중화되어 접근 가능하게 되었다.
영국의 post-punk 밴드 IDLES (출처: The Guardian)

하지만 단순히 매스 미디어가 기존의 고급문화를 대중화한 것은 또 아니었다.

60년대 히피 문화와 90년대 X-세대와 같이 대중문화는 기성세대에 반기를 드는

청년층의 새로운 가치관을 반영하기도 했다.


종합하면,

'상류층' 혹은 '대중'이라는 집단적 주관성이 취향의 기준이 된다는 점은 역사를 통해 분명해진다.


그리고 그러한 집단적 주관성은 

상류층으로의 인정, 혹은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 등

'자아 표현'이라는 목적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remind. 취향의 정의)


Preview: 취향의 미래

먼 길을 돌아온 것 같은데,


그렇다면 현대의 취향은 어떤 기준에 따라 만들어지는가?

현대 사회는 더욱 파편화, 개인화되어가고 있다.

하나의 덩어리(mass)에서, 개개인의 점들로 연결된 네트워크가 되어가고 있다.


남들과 달라지고 싶어하는 차별화, 구별짓기의 욕망도 점점 커진다.


하지만 그 역시도 'hipster', 혹은 '남들과 다른 사람'이라는 

집단적 주관성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맥락이다.


그 어느때보다도 개인화된 사회이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자주 내 일상을 타인과 공유하는 사회라는 역설 속에서

사람들의 취향은 어떻게 영향받을 것인가?

(출처: Toward Data Science)

필자는 유튜브나 애플뮤직 등의 추천 알고리즘이 그 새로운 영향력이라고 생각한다.

유저들의 빅데이터(집단적 주관성) + 개인화된 추천이라는 구조를 통해

현대인들의 욕망을 가장 잘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신사 논란을 통해 보았듯이, 

사람들은 지나친 집단적 유행 혹은 랭킹-기반 추천에 반감을 갖게 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뒷광고', 혹은 '광고성 리뷰글'과 같이 편향된 정보가 주입되는 경우도 있다.

되려 '믿을 수 있는' 유명 평론가나 블로거의 인기가 역으로 상승하기도 한다.


AI는 과연 개개인의 '취향 큐레이터'가 될 수 있을까?

감성은 이성과 달리 '논리의 영역'이 아닌, '확률의 영역'이라면,

어쩌면 AI가 또 한 번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직까지는 시기상조일지도: 옷 구독모델은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나?


참고한 글

- 심귀연 저, <취향, 만들어진 끌림>, 2021

- 김진엽, <흄의 '취미의 기준'에 대하여>, 1997

- 현승윤, <[심층 고전읽기]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https://sgsg.hankyung.com/article/200510116553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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