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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이 뜨기 전에 Aug 16. 2022

엄마의 낡은 서랍장

3. 꿈은 무엇이지?

병원에서의 시간은 느린 듯 빠른 듯.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 같이 끝도 시작도 오묘한 시간에 놓여있다. 특히 이렇게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은 더욱 그러하다. 

은희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병실을 정리하였다. 벽걸이에 걸어 놓은 엄마의 겉옷을 들었는데, 옷이 묵직했다. 주머니 속에 무엇인가 잡혔다. 작은 수첩이었다. 은희는 한눈에 그 수첩을 알아보았다. 그것은 자신이 어릴 적 쓰던 수첩이었다.


어릴 적 메모를 잘하시던 엄마를 따라 자기도 적어 놓은 이런저런 글들. 영어 단어. 곱셈식. 그림과 낙서들. 엄마는 쓰러지기 전에 내 수첩을 보고 있었던 것인가.. 은희는 듬성듬성 써진 수첩을 넘겨 보다 엄마의 필치로 보이는 메모를 발견했다.    

 

나의 꿈은 무엇이지?    


분명 자신이 쓴 글씨는 아니었다.     

최근에 쓰신 것일까?    


꿈... 꿈이라니... 이제 노년에 들어선 엄마에게 왠지 ‘꿈’이라는 단어가 어색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아니지.. 어색하다니... 엄마에게 미안해진다. 엄마도 끊임없이 고민했을 꿈이라는 것이 있었을 것인데..      


은희는 잠들어 있는 듯한 엄마를 빤히 바라보다가, 낡은 서랍장을 열어 수첩을 넣었다.     


월요일 찾아온 동생에게 서랍장을 치우지 말라고 당부하고, 은희는 병원을 나섰다. 자신의 집으로 가야 했지만, 은희는 서둘러 엄마의 집으로 갔다. 엄마가 쓰던 수첩을 보고 싶었다. 수첩 속 엄마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자 했는지 궁금해졌다. 은희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모습은 아마도 그저 엄마로서의 엄마인 것 같다. 한 사람으로서의 엄마는 잘 몰랐다.     


엄마의 방 한편. 붙박이장에서 층층이 쌓여있는 수첩을 발견했다. 그런데 수첩 속 엄마의 글들은 이상하게 뒤죽박죽이었다. 어떤 날에는 알 수 없는 뜻의 단어들만이 나열된 장도 있었고, 어떤 날에는 날짜 이외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텅 빈 장도 있었다. 그렇지만, 한번쯤 적을 법한 누구를 향한 원망도, 누구를 향한 분노도 없었다. 수첩에서 그나마 알 수 있는 내용은 평범한 일과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해 왔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일상 속 실행과 그 결과에 대한 것뿐이었다. 이 내용으로는 한 사람으로서의 엄마를 알 수 없었다.         

  

어디서 엄마를 찾아야 할지 모르겠네.    


어쩌면, 어쩌면... 엄마는 자신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신 것은 아닌가.      


나의 꿈은 무엇이지?    


엄마의 글씨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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