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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이 뜨기 전에 Aug 17. 2022

엄마의 낡은 서랍장

4. 아직 따뜻하고 부드러운

언니. 언니가 이거 놓고 간 거야?

뭐?

어. 침대 위에 붓이 있어서. 언니가 놓고 간 거 맞지? 그래도 환자 침대 위에 이렇게 두고 가면 어떻게...

붓이라고? 

응 이거 어디 둘 때가 없네. 아.. 이 서랍장 안에 넣어 둘께

어.. 어.. 그렇게 해.    


은희는 얼른 병원으로 가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그 붓이 자신의 것은 아님을  알기에, 도대체 어디서 이런 물건들이 계속 나오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동생은 엄마의 상태가 별 차도가 없다고 했다. 그저 더 나쁜 소식이 없으니, 다행으로 생각하자는 말에도 은희의 기분이 좋아지지는 못했다.    


주말이 오기만을 기다린 은희는 서둘러 병원에 갔다. 은희는 입원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서랍장으로 갔다.    


언니 오자마자 뭘 그리 찾아?... 아.. 붓?  


어? 어.. 아... 미안. 미안.. 별거 아니야.. 이번 주도 수고 많았어. 좀 가서 쉬어.. 그리고 다음 주에는 나 연차 몰아서 휴가 냈어. 다음 주는 내내 내가 있을 거야. 넌 어디 바람 좀 쐬고 와도 돼.


엄마가 이러고 있는데, 내가 무슨 여행이야...


엄마가 금방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잖아. 우리도 지치지 않으려면, 잘 조절해야지.


그럼... 나... 정말 여행 다녀온다.


응 그래!.


나 다녀온 다음에는 그럼 언니가 다녀와


응 그래. 그래 암튼 잘 쉬었다 와


언니 고마워. 엄마 잘 부탁해    


은희는 동생을 보내고 얼른 서랍장의 수첩을 꺼내 보았다.

수첩에 또 다른 엄마의 흔적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수첩을 일껏 들춰보는데, 전화가 왔다. 회사였다. 긴 한 숨을 내쉬고 병실을 나가 전화를 받았다. 이제 막 중요 직책을 맡게 된 은희가 자리를 비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긴 통화 끝에 들어선 병실 문에서 은희의 발걸음이 멈추어 섰다. 창가에 서 있는 아담한 난초 꽃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는 서랍장만 바라보느라 보지 못한 거겠지? 은은한 향기가 병실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었다. 꽃을 좋아하는 동생이 가져다 놓은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의자에 앉았다.     


한번... 물어볼까? 


망설여졌다. 여기 일은 좀 잊으라고 여행을 떠나보낸 동생에게 또 연락하기도 미안한 일이었다.    

엄마의 옆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겉으로 보아서는 잠들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그저 모든 것이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은희는 엄마의 손에 얼굴을 대어 보았다. 아직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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