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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이 뜨기 전에 Feb 01. 2023

엄마의 낡은 서랍장

6. 그 순간에

은희가 화장실을 다녀오자. 침대 옆에는 거대한 야자수 나무가 등장했다. 잠깐 편의점을 나갔다 와 보니, 청화백자 도자기가 창가 앞에 놓여 있었다. 은희가 엄마의 상상을 응원하자, 엄마의 상상은 과감하고 엉뚱하기까지 했다. 상상 속에서 갖가지 물건들은 자꾸 나왔고, 좁은 입원실을 가득 채웠다.  

     

은희는 엄마 옆에서 소리 내어 책을 읽었다. 이불 사이로 뭔가 꿈틀 꿈들 움직였다. 은희는 놀라 이불을 들쳐보니 흰색 토끼 두 마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엄마의 발 사이로 이리 지러 뛰어다녔다. 엄마의 상상은 뒤죽박죽 끝이 없는 것 같았다. 야자수 바다를 건너시더니, 이번에는 들판을 뛰다가 온 것 같은 토끼들이라니!

      

은희는 갑자기 힘이 빠졌다. 병실 안이 갑자기 너무나 답답해졌다. 창문 너머 세상 속에서는 어둑한 밤공기 사이로 화려한 네온사인이 반짝이고, 국가 대표 축구경기가 있는지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즐거운 환호소리가 간간이 들려오는데, 누워있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은희는 세상과 동떨어지게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았다. 뒤죽박죽 된 상상의 물건들 속에서 은희는 시선 둘 곳을 잃어버렸다.

     

엄마의 상상 속에서 나온 것들이 병실 안을 채우고 있었지만,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인가.     


은희는 갑자기 불만이 터져 나왔다.     


엄마! 엄마가 하고 싶으면 현실에서 하면 되지. 왜 상상 속으로 들어가셨어요. 

이렇게 누워서 하는 상상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이제 얼른 나오세요. 거기 계시지 말고요.     


은희는 덜컥 의자에서 일어나 버렸다. 

의자를 침대 곁에서 창가로 가져다 놓다가 그만 창가에 놓은 서랍장을 손으로 치고 말았다. 

서랍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테이프로 돌돌 말았던 부분이 또다시 부딪치면서 이제는 완전히 부서져 버렸다. 서랍장이 바닥에 부딪치면서 산산조각이 나자, 엄마의 상상 속 물건들이 함께 사라져 버렸다. 깡충거리던 토끼도, 흔들리던 야자수도, 반짝거렸던 청화백자도, 흔적 없이 싹 사라져 버렸다.     


은희는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돌처럼 멈추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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