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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림 Mar 17. 2022

억지로 먹지 말아요

세 번째 질문

첫째 유치원 담임 선생님한테 문자가 왔습니다.



점심때 하리에게 다 안 먹어도 되는데 나머진 선생님이 도와줄 테니 요것만 먹어보자~ 하면서 떡국이랑 밥 반 정도를 한쪽으로 덜어줬더니 잘 먹었어요.
껍질채 나온 사과 한쪽은 사과 속살만 야금야금 먹고 있길래 껍질채 조금 잘라주면서 다 먹지 말고 요것만 먹어보자~ 했더니 그것도 아주 잘 먹었답니다.
3월 한 달은 즐겁게 먹으면서 조금씩 다양하게 먹어보는 경험 하도록 살펴보겠습니다^^



하리는 아기 때부터 잘 먹지 않았습니다. 분유도 다 먹지 않고 남겼고 이유식도 그랬죠. 음식에 대한 흥미가 별로 없었고 새로운 음식에 대한 의심과 거부감도 컸습니다.

조금 크면 나아지겠지 하고 지켜봐 온 게 어느덧 다섯 살이 되었네요.

아직도 식사시간이면 먹기보다 딴짓하느라 바쁘고 먹고 싶은 것만 먹으려 하지만 아주 조금씩 먹는 양이 늘고 있고, 새로운 음식에 대한 관심과 도전하는 힘도 생기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고민을 가지고 선생님, 주변 지인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눴는데 다들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이 "음식은 억지로 먹이면 안 되는 거 같아."였습니다.




하리가 세 살 때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오후 간식으로 토마토가 나왔던 날이었어요.

토마토는 하리가 싫어하는 많은 음식 중 하나입니다.

하원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하리가 갑자기 주저앉아 눈물을 터뜨렸어요.

어디가 아프냐고 묻는 물음에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고 뭔가 물고 있는 듯한 소리가 이상해 마스크를 벗겨보았습니다.

그러자 입 안에서 작은 토마토 조각이 툭 떨어졌습니다.

는 너무 놀랐습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토마토를 입에 물고 있었던 것일까요.

선생님께 여쭤보니 간식을 먹고 바로 다시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다 보니 하리가 토마토를 입안에 계속 물고 있는 줄 몰랐다고, 세심히 관찰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셨어요.

 먹지 않아도 되는데 어떤 이유에서 억지로 먹었을까요? 다른 친구들이 잘 먹는 것을 보고 따라 한입 먹었다가 뱉지 못하고 그대로 물고 있었던 걸까요...

"안 먹을래요, 먹기 싫어요, 뱉고 싶어요" 표현하지 못하고 1시간 이상 힘겹 입에 물고 있었을 하리 모습을 생각하니 참 많이 속상하고,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를 화도 습니다.




그런데 어제 유치원 선생님의 문자를 받고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학교 건물을 사용하는 공립 유치원에서는 급식실에서 밥을 먹습니다. 어린이집과 다른 환경에서, 편식이 심한 하리가 과연 밥을 잘 먹고 있는지 너무 궁금하고 걱정이 되었었거든요.

억지로 강요하지 않되 다양한 음식을 즐겁게 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안심이 되고  감사했습니다.


내 아이가 잘 먹는 것만큼 기특하고 고마운 일이 또 있을까요? 이렇듯 '밥 잘 먹는 일'은 많은 부모들의 최대 관심사일 것입니다.

골고루 잘 먹어 건강하게 자라기만을 바랄 뿐인데 잘 먹게 하는 일이 어찌나 힘들고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다 커서는 살 뺀다고 난리, 어릴 때는 살 찌운다고 난리입니다.

조금 진정하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를 비롯해 우리 다 큰 어른들도 편식을 합니다. 못 먹는 음식이 있고 싫어하는 음식이 있고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음식도 있죠. 음식에도 저마다의 여러 가지 이유와 사연이 있는 것이죠.


우리는 왜 아이들에게 자꾸만 조바심을 내고 강요하고 심지어 야단까지 치게 될까요?

안타까운 마음, 걱정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나 커서 아이가 부모의 이 마음을 넙죽 받아먹길 바라기 때문이겠죠.

모든 것이 덜 자란 아이는 아직 모릅니다. 다만 부모의 눈빛과 목소리와 행동에서 느낍니다. 지금 자기를 향한 부모의 마음이 사랑인지 분노인지를 다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음식은 절대 억지로 먹이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식사시간에는 밥만 먹는 게 아니니까요. 서로의 마음을 함께 먹는 시간이니까요. 억지로 먹은 음식은 좋지 않은 기억으로, 상처로 남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문득, 우리도 억지로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 먹지 않아도 되는데 꾸역꾸역 먹고 있다는 생각이요.

내가 하기 싫은 일,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인데도 누군가의 부탁을, 누군가의 조언을, 누군가의 기대를 위해서 억지로 하고 그냥 듣고만 있는 것이죠.

상대방의 마음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우선인 것은 내가, 스스로,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유치원 선생님 말씀처럼 말입니다.

누군가 내게 부탁하는 일은 내가 맛있게 먹을 수 있을 만큼만, 누군가 들려주는 이야기 또한 내가 스스로 먹고 소화할 수 있을 만큼만 듣고 나머지는 흘려버리는 거죠.

때론 다 하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다 듣지 않고 다 받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내 마음이 아프고 힘들다면 반쯤 덜어내 봅시다. 오늘 이만큼 먹고 내일 좀 더 먹고 조금씩 즐겁게 먹으면서 건강하게 자라 간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요? 그렇게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란 나는 어느 편식쟁이를 만나도 여유 있게 기다려주는 어른이 되어있겠지요?


세 번째 질문입니다.

지금 더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일, 사람, 관계 등)이 있나요? 끝까지 다 먹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잠시 덜어보거나 숟가락을 놓아보는 것이 좋을까요? 나는 진짜 무엇을  먹고 싶은지, 얼마만큼 먹고 싶은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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