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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림 Mar 30. 2022

꽃처럼 생겨가지고

네 번째 질문

집 앞 곳곳에도 꽃들이 폈습니다.

어느 순간 짠-하고 바뀐 풍경을 보며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런 변화는 어린아이들도 금방 알아차리는 것이 신기하고 귀엽습니다.

등원 길에 하리가 말합니다. "엄마, 저기 꽃이 폈어요! 봐봐요 꽃이에요!!! 우와 예쁘다~ 그렇지?"

옆에서 유모차를 타고 있던 혜리도 손가락을 쭉 펼쳐서 꽃을 가리키며 뭐라 뭐라 이야기합니다.

요 작은 아이들도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된 것을 느끼고, 아무것도 없던 나무에 꽃이 핀 것을 보며 반가움을 표현합니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봄이랑 아이랑 참 잘 어울린다~ 꽃처럼 생겨가지고 그냥 너희 존재 자체가 꽃이고 봄이구나!'


아이를 낳기 전에는 꽃이 피면 봄이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봄이 오면 사람들이 꽃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봄은 새로운 시작이듯 사람들도 봄이 되면 저마다 새로운 시작을 합니다. 씨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는 것처럼요.

아직 꽃씨로 심겨있는 사람도 있고 작은 싹이 튼 사람도 있고 꽃으로 활짝 핀 사람도 있겠지요.

지금 모습은 각자의 시기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처음엔 아주 작은 씨였지만 조금씩 자라 꽃이 되는 건 이 땅에서 누구나 겪는 인생일 겁니다.




자려고 누웠는데 하리가 말했습니다.

"엄마! 하리는 새딱 반이야."

"맞아~ 새싹 반이지."

"그게 뭐야?"

"새싹이 뭐냐고?"

"응. 새딱."

"음~ 작은 씨가 물도 먹고 햇빛도 받으면서 자라면 싹이 나. 그러다 더 크면 꽃이 되는 거야."

"언니 오빠들은 열매반이지? 근데 왜 나는 새딱반이야?"

"하리는 유치원에 처음 간 다섯 살이라서 새싹처럼 이제 무럭무럭 자라라고 새싹 반인 가봐."


대화를 끝내고 잠든 하리 옆에서 뜬금없이 눈물이 나는 게 아니겠어요? 아이 정말.

때때로 아이의 말과 질문은 그 어떤 지식보다 더 깊은 깨달음을 주고 그 어떤 시보다 아름답고 낭만적입니다.

'그래 맞아. 너는 너무 귀하고 소중한 새싹 같은 존재야. 그리고 그런 너와 함께 자라고 있는 이 엄마도 새싹 같은 사람이었구나. 네가 나를 자라게 하고 너랑 같이 나는 또 새롭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왜 봄과 아이들이 어울리는지, 왜 아이들이 꽃처럼 생겼는지, 꽃이 피고 지는 것이 왜 우리 인생과 닮아있는지 알 것 같다고.. 그만 그 신비에 감탄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아직도 새싹입니다.

어서 빨리 커서 크고 먹음직스러운 열매를 주렁주렁 맺고 싶다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엄마가 되고 나서 다시 새싹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행복한 새싹입니다. 내가 어떤 꽃이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누군가에 의해 땅 속에 소중히 심겼고 많은 것을 이기고 싹을 틔운 사람이라는 사실이 감사합니다.

차가운 바람도 맞고 따가운 햇살도 받으며 견디고 견뎌 자라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대견합니다. 그렇게 자라 어떤 꽃이 될지 기대가 됩니다.

다시 떨어져 사라진다 해도 제가 있던 자리에 또 다른 모습으로 싹을 틔울 새싹들을 생각하니 아무렇게나 살 수가 없습니다.


너무 따스하고 생명력이 가득한 봄이라서 오히려 외롭고 쓸쓸한 사람이 있나요? 저도 그런 때가 있었거든요. 화려한 꽃들 속에서 풀 죽은 돌멩이 같을 때 가요.

그런데요 억지로 봄에 어울릴만한 모습으로 바꾸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잠시 좀 몸살난 것처럼 봄에도 우린 아플 수 있어요. 햇빛을 덜 받은 꽃이 양지에 있는 꽃들보다 늦게 필 수 있는 거잖아요. 근데 누가 알아요 늦지만 먼저 핀 꽃보다 더 탐스럽게 필지는 펴봐야 아는 거 아니겠어요?

지금 이대로 꽃처럼 생긴 '나'를 좀 예뻐해 주자고요.


네 번째 질문입니다.

어떤 꽃이 되어, 어떤 모습으로 지고 싶나요?

저는 벚꽃도 아니고 장미도 아닌 아주아주 작고 이름 모를, 커다란 나무도 아니고 푸르른 들판도 아닌 돌 틈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귀여운 꽃이 되고 싶어요.

나보다 높이 핀 꽃들이 나를 내려다봐주고 내 옆에 고만고만한 친구들과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작은 꽃이요. 하지만 나를 보고 지나는 사람들이 "여기에도 꽃이 있었네! 나도 너처럼 여기서도 잘 살아봐야겠다." 하는 그런 꽃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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