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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림 Apr 10. 2022

멀리, 끝까지 가기 위해서

다섯 번째 질문

저는 요즘 평일 아침마다 집 앞 산책로를 걷고 있습니다.

첫째를 먼저 유치원에 보내고 둘째 어린이집 등원까지 30분 정도의 시간이 남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남는 시간에 다시 집으로 들어가서 하다 만 집 정리를 조금이라도 해놓고 나올까' 했는데,

집 밖에 나와서 그저 신난 아이보며 '그래, 이왕 나온 김에 한 바퀴 돌자!'하고 마음을 바꿨습니다.

그렇게 어쩌다 아침마다 둘째랑 함께 산책을 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같은 길을 걷다 보면 꼭 그 시간,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을 마주칩니다.

등굣길을 같이 하는 아빠와 아들, 교통봉사를 해주시는 시니어클럽 할머니, 항상 같은 신호등에서 길을 건너는 아주머니, 아파트 곳곳을 청소하시는 분들...

이름도 모르고 스쳐 지나가는 사이지만 왠지 모르게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마주치는 것이 반갑기만 합니다. 보이지 않는 날이면 괜스레 혼자 안부를 궁금해하기도 하면서요.


요즘처럼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벚꽃이 흩날리는 꽃길을 걷는 아침에 먹는 사과 한 알, 목마를 때 벌컥 들이키는 생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참 가진 것이 없다고 스스로 초라해질 때, 나에게도 날마다 내리쬐는 햇볕은 그 따스함만으로도 넉넉한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내 인생은 언제 활짝 필까 하고 낙심될  때, 떨어지는 꽃잎들을 보며 깨닫습니다. 흐드러지게 피었다가도 순간 와르르 떨어지는 것이 꼭 우리 인생 같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남들보다 빨리 피고, 많이 피는 것은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요.

내 삶에 알맞게 피었다가 노을처럼 물들이며 지고 싶노라 꿈꿉니다.




아이들의 식사 시간은 그야말로 난장판입니다.

며칠 전, 먹고 난 자리를 닦고 있는 저에게 첫째가 말했습니다.

"우리 엄마 힘들겠다. 우리 엄마는 진짜 바빠."


어느 날 남편이 그랬습니다.

"널 보고 있으면 난 너무 게으른 사람인 것 같아.

그거 나중에 해도 되니까 좀 쉬었다 해."


저는 정말 바쁘게 삽니다. 집에만 있어도 할 일이 넘쳐납니다. 늘 분주하고 조급하고 불안합니다. 항상 계획을 세워야 마음이 편하고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육아만큼 나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 또 있을까 싶습니다. 그 사실을 매 순간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쉼을 견디지 못하고 시간과 일에 여 끌려다닙니다.

이런 어리석은 저에게 주어진 아침 산책 시간 30분은 뜻밖의 쉼이고, 내려놓음입니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집에 다 와갈 때쯤, 아이는 유모차에서 잠이 들곤 합니다.

따뜻한 햇살이 엄마 품 같고 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이불 같으니 그 어디나 있는 그곳이 하늘 같은가 봅니다.

아이의 감은 두 눈을 가만히 바라보며 구름 같은 두 볼을 쓰다듬어봅니다.

'너를 키우는 일은 내 계획대로 되지 않지만 너와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 행복하기로 선택하는 것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야.'


다섯 번째 질문입니다.

하루 중 잠깐이라도 쉬는 시간이 있나요? 정말로 내 몸과 마음이 쉬고 있나요? 아주 잠깐이라도 쉬어봅시다. 우리 같이 멀리, 끝까지 가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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