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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림 Apr 26. 2022

듣는 마음

일곱 번째 질문

둘째가 18개월에 접어들었습니다.

고집이 세지고 자기주장도 강력해지고 있죠.

유난히 힘에 부치는 날이었습니다.

기저귀를 갈려고 눕혔는데 발버둥을 치고 몸을 뻗대길래 옆에 있던 첫째에게 

"하리야! 혜리 장난감 좀 가져다줄래?"라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첫째가 쪼르르 방에 달려가 장난감 하나를 가지고 옵니다. 손에 쥐어주자마자 바닥에 던져버립니다.

"하리야! 우리 같이 혜리 웃겨줄까?"

첫째랑 저는 평소에 자주 하던 이상한 소리?를 내며 이상한 표정?을 지어 보입니다.

"우랠래래~~ 메~~ 로오 옹~~"

"혜~~ 리야아~ 이거 봐봐 이! 히! 헤!"

짜증을 내던 둘째가 갑자기 웃기 시작합니다. 까르르 넘어갑니다. 

첫째 덕분에 기저귀도 무사히 갈고, 첫째가 둘째랑 놀아주는 동안 집안일할 수 있었죠.


자기 전 양치를 하고 있는 첫째에게 말했습니다.

"하리야~ 고마워."

오늘 하루 저에게 큰 힘이 되어준 것이 내심 고마웠거든요.

"왜? 내가 혜리 웃겨주고 잘 놀아줘서?"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마음을 다 알고 있었던 것이, 고맙다고 딱 한마디 했을 뿐인데 제 마음을 읽는 것이 놀랍고 기특했습니다.

언제 이렇게 훌쩍 커서 엄마 마음을 알게 되었는지 신기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걱정되고 조심스럽기도 했죠.

이제 저의 표정과 말투 속에서 생각과 감정을 읽어낼 만큼 많이 자란 아이에게 저의 못난 마음을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마음은 통하고 흘러가는 것이기에 들킬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 처음부터 예쁜 마음 이어야 하겠다고요.


'설명해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내 마음을 읽었을까?'

하고 생각하다 보니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는 제 마음을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가 동생을 돌봐줄 때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의 눈빛 속에서

'고맙다. 너도 아직 어린데 동생에게 언니 노릇하느라 고생이 많지? 미안하고 또 고마워.' 하는 제 마음을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들었던 것입니다!

듣는다는 것은 '귀'로 듣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가능한 것입니다. 진짜 들음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하는 것보다 잘 듣는 것이 어렵고 또 중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잘 들으려고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자꾸만 나의 생각과 경험이 앞서고 그것을 말하고 싶어 합니다. 나와 다른 생각과 경험을 듣는 것은 어쩐지 불편하고 힘이 듭니다.

그런데 누군가의 말에 경청했때를 떠올려보면 우리의 귀로만 들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마음으로 들었을 때 고개가 끄덕여지고 이해가 되고 그 말이 받아들여졌을 겁니다.


마음에 있는 것이 입 밖으로 나옵니다.

듣는 마음이 말로 나타날 때 그 말은 사람을 위로하는 말,  사람을 세우는 말, 사람을 살리는 말이 되겠지요.

듣는 마음이 글로 나타나면 그 글은 살아서 움직이는 글이 될 겁니다.

무엇을 줄까 묻는 신에게 '듣는 마음'을 구했던 솔로몬 왕을 떠올려봅니다.

저도 지금 무엇보다도 듣는 마음을 가지고 싶습니다.

마음을 활짝 열어둬야겠습니다. 열어서 환기도 좀 시키고 구석구석 청소도 해서 깨끗해져야겠습니다. 잘 들을 수 있도록요.


일곱 번째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잘 듣고 있나요? 가족들의 말, 친구의 말, 이웃의 말.. 그들의 말을 '마음'으로 듣고 있나요?

여러분의 마음 안에는 어떤 것들로 가득 차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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