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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림 Aug 23. 2022

나만 진심인 것 같아서


어떤 이와의 통화를 끝내고 창밖을 보다 눈물이 흘렀다. 슬픈 대화도 아니었고 화가 나지도 않았다. 억울한 것도 미안한 것도 아니었다. 나조차도 당황스러운 눈물이어서 턱 밑에 걸쳐있던 마스크를 눈 위까지 끌어올렸다. 두 눈을 가리니 진정이 되었다. 운전 중이던 남편은 몰랐을 것이다.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운전대를 잡은 손이 살짝살짝 움직이는 것을 보니. 이럴 땐 곰 같은 내 남편이 참 좋다. 남편은 잔잔한 바다 같아서 한껏 예민한 내가 그 안에서 둥둥 떠다닐 수 있는 그 편안함이 고맙다.


마스크 속 눈을 감고 생각해보았다.

'왜 우니?'

'나만 진심인 것 같아서.'

멈춰서 생각하는 시간이 없었던 시절에는 내 감정의 뿌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꾸만 엉뚱한 곳으로 화살을 날려 보내곤 했다. 아주 잠깐이지만 마음속에 몰려오는 먹구름을 멈추는 일은 꽤 큰 효과를 가져온다. 누구보다 내가 안정을 되찾게 된다. 내 감정은 나만 아는 것이고 나만 풀 수 있기 때문이다. 먹구름을 멈추고 생각해보니, 나의 진심이 닿지 않았다는 마음에 눈물이 났던 거였다. 진심으로만 살아지지 않는 세상이란 것을 일찍이 깨달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놓지 못하고 환기시키듯 매일 아침 마음을 열어젖힌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 내가 바라보는 사람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에서 나만 진심인 것 같아서,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아서, 그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 마음 아파서 울어버렸다.






잘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 잠들지 않는 하리 옆에서  점점 조급함이 올라왔다. 하리는 1인 다역 역할 놀이를 시작했다. 공주도 되었다가 유치원 같은 반 친구 누구도 되었다가 하면서 쫑알쫑알 시끄러웠고, 결국 나는 베개 밑에 넣어뒀던 핸드폰을 꺼내고 말았다. '그래, 잠 오면 알아서 자겠지. 나도 내 할거 할래.'

몇 분이 흘렀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하리의 역할극이 절정에 다다른 것 같아 핸드폰을 급히 껐다.

"하리야. 우리 이제 자자."

"엄마 왜 핸드폰 봤어?"

"... 하리가 안자길래 엄마도 심심해서 잠깐 본거야."

"엄마가 핸드폰 봐서 내가 기다려줬어."

"......"

나는 말없이 하리를 온몸 가득 껴안았다.

"엄마는 하리가 안 자서 핸드폰 본거였는데, 하리는 엄마가 핸드폰 다 볼 때까지 기다려준 거야? 미안해. 엄마가 몰랐어."


마스크는 없었지만 불 꺼진 방이어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하리의 말에 너무 놀라 눈물이 날 것만 같았으니까. 전날 흘렸던 눈물의 이유에 대한 시원한 대답을 뜻밖에도 하리에게 들었다. 나의 마음은 내가 잘 안다 하지만 '너'의 마음은 '너'가 가장 잘 아는 것이니 진심은 나의 마음뿐 아니라 '너'의 마음에도 있는 거였다. 나는 '나'만 생각했다. 나의 진심, 나의 배려, 나의 노력, 나의 열심만을. 분명 너를 위한 것이라, 너를 잘 알고 있다 했지만 그마저도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나는 하리가 빨리 잠들지 않는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핸드폰을 켰지만 하리는 핸드폰에 빠진 엄마를 보면서 기다렸다. 혼잣말도 하고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엄마가 나를 봐주기를, 나를 껴안고 토닥여주기를.


외로움과 서운함이 몰려왔다, 서서히 멀어져 갈 때쯤이면 알게 된다. '나만'이라고 생각했던 순간들 속에 나를 기다려주고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외롭고 언제든 힘들 수 있는 존재이지만 영원히 외롭고 힘들 만큼 강하지도, 홀로이지도 않다. 잠시 잠깐 외로움에 흔들리면서 또 누군가의 기다림과 사랑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며 존재한다. 나와 너의 외로움이 같다면 나도 너도 우리는 다시 기다리고 사랑할 수 있다. 그러니 괜찮다. 지금 나만 진심인 것 같아도. 그래도 계속 진심으로 살 거잖아. 그러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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