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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림 Oct 02. 2022

딸의 생일


10월 1일. 내 사랑하는 딸 하리가 태어난 날.

고작 다섯 살밖에 안된 아이에게 내가 받는 사랑이 더 커서 축하한단 말보다 고맙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꽃 같은 하리가 나에게 와줘서 그저 그것이 정말 고맙다. 내 사랑은 여전히 때때로 이기적이고 일방적이고 서투르고 모가 나기도 해서, 홀로 고요한 밤이면 미안하고 부끄럽다. 아기 때부터 지금까지 내 멱살을 잡고 자는 잠버릇이 있는데 때론 귀찮고 힘들었다. 잘 때조차도 내 품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엄마가 전부인 너의 세상이, 언젠가는 다른 사람과 다른 사랑과 다른 관심들로 바뀔 날도 오겠지. 그때도 언제든 내 품에 쉬었다 갈 수 있도록 더 넓고 따뜻한 품이 되어야겠다.


생일날 공원에 갔다 돌아오는 차에서 갑자기 하리가 토를 했다. 그전부터 배가 아프다고 하더니 무언가 잘못되었나 보다. 하리 옷, 내 옷, 차 안까지 엉망이 되었는데 역한 냄새에 비위가 약한 나도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행히 한바탕 토하고 난 하리는 이제 배가 아프지 않다며 컨디션을 되찾았다. 그러고 종일 마음이 좋지 않아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하다 울적한 감정의 뿌리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의 본모습 그 날것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본래 내 안에는 선한 것, 사랑이 없다. 토를 하는 딸을 보며 걱정하는 마음보다 더러움에 먼저 반응한 내 마음을 돌아보니, 내 안의 악함과 서늘함이 사실은 더 더럽기만 한 것이다. 내 자식이 뭐가 좀 묻은 상태로, 온전하지 못한 상태로 내게 달려올 때 본래의 나는 곧바로, 있는 모습 그대로 안아줄 수 있는 부모가 아닌 거다. 지치고 곤한 나의 부모에게 언제든 그냥 달려갈 수 없었던 그 마음의 거리가 여기 이렇게 내 안에 살아있었구나... 그것은 비단 나의 부모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인간에게서 느끼는 마음의 거리, 이 세상에서 느끼는 소외감이다.


완벽할 수 없고 선한 것 하나 없지만 그러나 내 모든 것을 내어놓는 것. 지금 내겐 그것이 사랑이다. 날마다 새롭게, 날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참고 인내하며 사랑하는 것. 그것이 엄마인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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