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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림 Dec 14. 2022

우리 아빠였으면 좋겠어요

따뜻함에 대해서


친구랑 같이 누군가를 만나러 갔다. 아주 어릴 적 교회에서 만난 목사님이었다. 못 알아볼 만큼 커버린 나를 반갑게 맞아주시며 안아주셨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눈물이 나는 것은 슬픔인데 안긴 그 품이 정말로 따뜻해서 행복인 것 같았다. 이렇게 따뜻하고 따스하고 평온한 느낌은 처음이라고 생각하며 목사님 귀에 대고 말했다.

"목사님이 우리 아빠였으면 좋겠어요."


꿈이었다. 꿈이었는데도 어찌나  따뜻했는지 그 온기가 며칠 동안 남아 결국 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왜 나는 내 아빠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그 아픈 말을 어린아이처럼 내뱉어버렸을까. 난 한 번도 남자 어른에게서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고, 어떤 남자 어른이  우리 아빠였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조차 한 적이 없는데... 왜 그랬을까?


하늘에 안긴 것처럼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따뜻함'이라는 그 자체를  만나 놀랐던 것 같다. 너무 놀란 나머지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 누워있던 말이 벌떡 일어나 튀어나왔나 보다.

"우리 아빠였으면 좋겠어요."

이 따뜻하고 따스한 사람이 내 아빠였으면 좋겠다고, 나는 그런 사랑을 받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꿈속의 내가,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요 며칠 울적했다. 기대했던 일이 잘 안 돼서 참 많이 속상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생각해보면 삶은 내 기대대로 되는 법이 잘 없다. 매번 당하면서도 또 매번 잊는다. 하지만 이제 속진 않는다. 기대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그걸로 끝이 아니다. 아주 넘어진 것이 아니다. '너는 이제 끝이라고, 너는 다시 일어날  수 없어.'라는 생각에 속지만 않으면 된다. 그럼 그걸로 충분하다.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다시 일어나는 순간 알게 된다. 그때 속고 포기했으면, 도망갔으면  어쩔뻔했냐고.


따뜻한 품에 안긴 꿈을 꾸고 나서 이상하게도 조금 힘이 났다. 역시나 내 생각이 맞았어! 따뜻함이 가진 힘! 삶을 움직이는 것은 차가움이 아니라 따뜻함이라고! 나는 따뜻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따뜻하게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따뜻하게 안아주는 엄마이고 싶다. 따스함에 굶주린 시대, 따스함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글 한 그릇 대접하는 마음으로 쓰고 싶다. 그러니 지금 나는, 따뜻한 품이 되기 위해 다시 일어나서 나를 믿어주고 나를 사랑해주기로 한다. 누구든 내 글 안에 포근히 안겼다 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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