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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림 Dec 15. 2022

소원

연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다가


캠핑장에서 잠을 자던 날 새벽이었다. 하리가 "엄마, 쉬 마려."하고 나를 깨웠다. 핸드폰 시계를 보니 오전 5시가 조금 넘었다. 밖은 추울 테니 급히 겉옷을 챙겨 입고 하리랑 화장실을 향해 걸었다. 겨울 새벽 냄새가 났다. 겨울의 깨끗한 차가움과 새벽의 맑은 공기가 서로 닮았다 생각하며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총총 박혀있었다.

"와 정말 오랜만에 보는 별이다. 너무 예쁘다. 하리야~ 하늘에 별 봐봐. 보여?"

"우와! 별이다. 별이 떨어지면 소원 비는 거래."

"별똥별? 하리 그런 것도 알아?"

"그럼~ 다 알지!"

"하리 소원은 뭐야?"

(평소에 갖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과 가고 싶은 곳이 많은 하리이기에 나는 하리가 어떤 대답을 할지 혼자 상상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 행복한 거."

"힝... 정말?"

하리를 내 품 가득 꽉 차게 안았다. 아무리 부둥켜안아도 모자랄 만큼 딸의 소원은 내 마음에 넘치게 과분한 감동이었다.


하리의 소원을 일상에서 다시 떠올려보면서 하리의 마음을 생각해보았다. 하리는 행복을 알까? 행복을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행복 앞에 가족을 갖다 붙였다는 것은 가족이 소중하다고 알고 있는 것 같은데, 5살밖에 안된 아이가 벌써 자신 혼자의 행복보다 우리 네 식구 가족의 행복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 조금은 아프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아니, 나부터도 너무 가족과 공동체의 행복을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우리'를 배워가는 중인 아이일 테지만 그래도 우선은 '나'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나누고 양보하고 이해하며 평생 살아야 하는데 어린 시절부터 '나'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나'를 먼저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커피 무료 쿠폰이 생겨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아메리카노 쿠폰이긴 했지만 추가 돈을 지불하고 다른 메뉴로 변경해도 되었다. 그냥 귀찮아져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연하게" 주문하고 이어서 동그란 초콜릿 쿠키도 주문했다. 연한 아메리카노여도 나한테는 쓸 테니. 연한 아메리카노를 한 입 마시고는 '음. 역시 쿠키도 사길 잘했어.' 싶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메리카노를 꿀떡꿀떡 잘 마시는 어른들이 보였다. 아메리카노를 연하게 그것도 디저트와 같이 먹어야 겨우 마시는 나에게 삶은 너무나 쓰디쓰다는 생각을 하며, 아메리카노를 멋지게 마시고 마는 저 어른들은 나보다 훨씬 쓴 삶을 이미 마셔왔구나 싶었다. 그래, 삶을 마시는 것보다야 아메리카노 한잔 꿀떡 마시는 것 그것이 뭐 별거라고.


이제 말이 틔여 온갖 소리를 쏟아내는 두 돌 지난 우리 둘째에게도, 유치원에서 이것저것 지키며 배우며 지내느라 고단한 첫째에게도, 아메리카노를 호로록 마셔버리는 저 아저씨도, 카페 창 밖으로 보이는 붕어빵 파는 아주머니도, 연한 아메리카노와 쿠키를 같이 삼키는 나에게도 삶은 농도 다른 아메리카노 같은 것일 거다. 누군가에는 좀 진하고 누군가에게는 좀 연한, 하지만 마시다 보니 때론 캐러멜 마끼아또 같기도 했고 바닐라라테 같기도 했다는 말을 덧붙이겠지.


여러 맛을 맛보며 살아갈 우리 딸들이, 어린 친구들이 가족의 행복보다 "내가 행복하고 싶어요."가 소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살아서 눈을 반짝이며 쫑알쫑알 이야기하며 아장아장 걸어가는 너의 그 모습, 존재 자체가 별똥별 같아서 우린 더 이상 소원이 필요 없으니 너는 너만 생각하고 반짝반짝 빛나라고 말해주고 싶은 이 벅찬 마음을 오늘도 글로 남겨놓는다. 나는 그 누구의 행복을 바랄 만큼 넉넉하지 못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많은 '나'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모자라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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