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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림 Dec 28. 2022

들킨 마음


오늘 하리를 크게 혼냈다. 그런데 잠들기 전 하리가 나한테 한 말 때문에 지금은 내가 크게 혼난 기분이다.


"엄마는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설거지한다고 진짜 힘들었지? 엄마 외로웠겠다."


힘들다와 외롭다는 뜻이 다른 말인데 이상하게 어울린다. 그 미묘한 아픔을 알 리 없는 아이가 내게 건넨 말에 멍한 기분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아이가 사실 그 누구보다 잘 안다. 어떨 땐 나도 몰랐던 내 감정과 마음의 상태를 깨닫게 하기도 한다. 미안해진다. 혼날 사람은 떼쓰고 고집 피운 딸이 아니라 기를 쓰고 고집을 꺾지 않는 나다.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너무 깐깐하게 굴었던 것 같아서 미안하다. 혹시 아이들도 나의 테두리 안에서 나름대로 힘들고 외로운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난다.


장난감이 많아도 심심하고 친구가 있어도 늘 함께할 순 없듯 때론 엄마도, 아빠도, 어른들도 많은 것을 가져도 공허하고 곁에 사람이 있어도 외로울 수 있다는 걸 이 아이들은 모르고 컸으면 좋겠는데 이미 들킨 것 같다. 하지만 이미 들켰다면 이 연약함을 들고 뒷걸음질 치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 나가서 결코 너희를 외로움 가운데 홀로 두지 않겠다고 또 다짐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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