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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림 Mar 04. 2023

아쉬운 마음

아름다운 마음


3월이 되니 아이들의 삶에도 봄이 왔나 보다. 하리는 여섯 살이 되어 새싹반에서 꽃잎 2반으로, 혜리는 네 살이 되어 풀잎반에서 꽃잎반으로 올라갔다. 하리의 담임 선생님도 바뀌고 혜리의 담임 선생님도 바뀌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선생님이 바뀐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없는 것 같은데 나는 왜인지 아쉬운 마음이 크게 들었다. 첫 어린이집, 첫 유치원 생활을 함께해 준 선생님들에 대한 감사와 애정이 너무도 깊이 쌓였나 보다. 보내주신 사랑과 열정이 나를 안심하게 했고 신뢰하게 해 주었는데 이제 내 아이의 선생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꽤나 아쉬웠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리 유치원 하원 차량 도우미 '라니 언니'도 나를 아쉽고 슬프게 했다.


하리가 처음 나에게 차량 도우미 선생님을 '라니 언니'로 표현했을 때가 생각난다. 깜짝 놀라서 "선생님한테 언니라고 하면 안 될 것 같은데..."라고 말했더니, "아니야~ 라니 언니가 라니 언니라고 부르라 했어!"

하리의 말은 사실이었다. 라니 언니는 유치원 버스가 코너를 돌아 하차 지점에 도착하기 전, 반대편에서부터 두 팔을 들어 나를 비롯한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는 분이었다. 아이들을 버스에서 내려줄 때면 두 손을 꼭 잡고 안전하게 내리는 일에 정말 열과 성을 다하는 분이었고, 하리 말에 의하면 차 안의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다양한 동요를 들려준 분이었다. 얼마 전에는 하리가 라니 언니에게 우리 집에 놀러 오라는 초대장과(글은 내가 썼다) 라니 언니와 자기를 나란히 그린 그림을 선물했다. 그날 하원 버스 창문에는 하리가 그린 '라니 언니와 하리' 그림이 소중하게 붙어있었다. 그랬던 라니 언니가 3월이 되자 보이지 않았다. 하리 말로는 다른 지점 차량 도우미바뀌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던 나는 바보 같지만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내가 원래 이렇게 정이 깊게 드는 사람이었나? 내가 이렇게까지 아쉬움을 잘 느끼는 사람이었나? 아쉬운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오가며 마주칠 때마다 늘 환한 미소로 인사해 준 환경미화원 이모님. 어느 순간부터 안 보이셨는데 이모님이 청소하던 구역에 다른 분이 있는 걸로 보아 아무래도 그만둔 것 같았다. 씩씩하던 혜리가 울면서 어린이집에 가던 때가 잠시 있었다. 그때 이모님이 청소하다 말고 내 바로 옆까지 와서, 마치 친할머니처럼 혜리를 향해 손 흔들어주던 모습을 나는 잊지 못한다.


길이가 짧아져 더는 못 입게 된 물려받은 아이들의 옷가지를 떠나보낼 때도 잠시나마 아쉬움에 빠지곤 한다. 옷이 작아질 만큼 아이들이 훌쩍 자랐다는 사실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처럼 자연스럽지만 놀랍고 새로운 것이다. 앙상한 겨울나무에 꽃망울이 맺힌 것을 볼 때에, 곧 꽃이 흐드러지게 필 것을 그리며 마냥 들뜨기보다 조금 아쉽고 조금 마음이 슬퍼지는 것처럼. 꽃이 핀 나무가 아름답듯이 꽃이 진 나무도, 차디찬 겨울나무도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다운 것이다. 갖가지 아름다움이 때에 따라 변하는 것을 지켜보고 받아들이는 일은 아쉽고 또 아름답다.


"하리야. 선생님이 바뀌었는데 아쉽지 않아?"

"지금 선생님도 좋아. 친절하신 분이야."

"(놀랐지만 얼른) 아, 그래 맞아. 지금 선생님도 좋으신 분이야."

"라니 언니 이제 못 봐서 엄마는 너무 아쉬워."

"지금 선생님도 좋으신 분이야."

"(더 놀라고 감탄하며)하리야...(또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군) 맞아. 하리 말이 맞는구나."

"서로서로 달라."


하리의 대답에서 나는 아쉬운 마음이 아름다운 마음으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지금 여기 있는 그 사람이, 그 무엇이 내게 가장 좋은 것이라는 것을.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쉬운 마음을 아름답게 떠나보낼 수 있는 유일한 달램이라는 것을. 이 봄의 시작 앞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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