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규림 Mar 08. 2023

눈치채지 못하도록

관심


하리랑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곧이어 아이들과 보호자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나타났다. 조용했던 놀이터가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아빠가 주스 사 올 테니까 놀고 있어."


아이들 각자에게 원하는 맛을 묻고는 아저씨가 놀이터를 빠져나갔다. 나는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근처에 편의점이 있나? 아, 거기 마트에 가시려나보다. 여기서 걸어갔다 오시려면 그래도 10분 이상 걸릴 텐데...'

나는 하리랑 이제 그만 집으로 가려던 참이었는데 아빠 없이 놀이터에 남겨진 아이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이 셋 중 하나는 초등학생으로 보이고 꽤나 듬직한 남자아이였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놀이터에 있는 유일한 어른인 나까지 떠나버렸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불안했다. 아이들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다. 자기들끼리 신나게 웃고 떠들며 뛰놀았다. 그런 아이들이 눈치챌리 없지만 나는 최대한 티 나지 않게 혼자서 아이들을 눈으로 좇고 있었다. 아저씨가 얼른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아저씨가 돌아왔고 나는 그제야 하리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우리 집 바로 앞에 놀이터가 있다. 몇 발자국 더 걸어가면 또 다른 놀이터가 나타나고 계단을 내려가면 좀 더 큰 놀이터를 만날 수 있다. 나는 아이들과 놀이터 순례를 자주 떠나곤 하는데, 그때마다 꼭 마주치는 여자아이가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쯤으로 보이는 이 아이는 항상 포니테일 머리에, 혼자 놀고 있다. 친구도 없고 보호자도 없이 늘 혼자였다. '부모님이 혼자 놀도록 허락하셨을까? 이 근처에 사는 걸까? 왜 볼 때마다 혼자일까?' 내 걱정과 달리 옷차림도 깔끔하고 혼자 노는 것이 익숙해 보이는 아이지만 이상하게도 내 눈길과 나의 마음이 아이를 향해 기웃거렸다.


작은 일에도, 나와 관련이 없는 타인에게도 '의미'와 '사연'을 잘 부여하는 나에게 남편은 "또 봐라.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 없어."와 같은 말로 나를 진정? 시키곤 한다. 남편의 반응을 상상하니 웃음이 났다. '그래. 저 여자아이도 내가 볼 때만 혼자일 거야. 부모님도 계시고 친구도 있지만 이 놀이터에서 놀 때, 하필 혼자일 때 내가 본 걸 거야.'하고 생각하며 발길을 돌리는 일이 몇 번 있었다.


어느 날. 길을 걷는데 저 멀리서 자전거 한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자전거를 타는 중년의 여성 뒤로 한 여자아이가 앉아있는 게 보였다. "할머니~ 있잖아요." 할머니와 손녀인듯했다.

"아! 다행이다." 나도 모르게 나직이 내뱉었다. 놀이터에서 여러 번 만났던, 그때마다 혼자였던 그 여자 아이였다. '할머니가 계셨구나.' 뒤따라 또 혼자만의 이야기가 펼쳐지려고 했지만 고개를 크게 저었다. '여기까지. 내 관심은 여기까지만 하자.'


부모가 되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 더불어 이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도 이전과는 다르다. 내 아이가 아니라도 모든 아이들은 바라보기에도 아까울 만큼 예쁘고 귀하다. 빛을 내며 걸어 다니는 아이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이 사회가 폭신폭신한 잔디밭이었으면 좋겠다. 모든 길을 잔디로 깔 수 없다면 우리들의 마음만이라도 잔디였으면 좋겠다는 꿈을 꾼다. 위험한 아스팔트가 아니라, 울퉁불퉁한 돌밭이 아니라 푸르른 잔디여서 그 어떤 아이도 신나게 뒹굴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는 관심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그냥 내버려 둬도 마구마구 자라나는 잡초가 아니라 가꾸어야 할 새싹이다. 다만 제발 요란하지 않게, 위협적이지 않게. 묵묵하게, 눈치채지 못하도록 눈처럼, 햇살처럼 사뿐히 내리는 관심이어야 한다. 이름도 모르는 아이들을 향한 내 관심이 부디 눈과 같이, 햇살같 다가가 더 넓은 잔디밭을 만들어갈 수 있길 바란다. 어른으로써, 엄마로서 나는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오늘도 눈을 부릅뜨고 걸어가 본다.

작가의 이전글 아쉬운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