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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림 Feb 28. 2023

오래오래 아낌없이


봄방학을 맞아 아이들 모두 등원하지 않고 집에 있는 날. 아침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오늘도 끝까지 인내하고 사랑하자.'

아이들과 함께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런 내 마음을 테스트하듯 욱하는 마음, 화나는 마음이 순간순간 찾아온다. 아이들은 방금까지 잘 놀다가도 갑자기 싸우기도 하고, 뜬금없이 "엄마 사랑해." 고백한 지 5분도 안 돼서 "엄마 싫어. 엄마가 제~~~ 일 싫어."라며 도끼눈을 뜨고 씩씩 거리기도 한다. 특히 당황스러운 순간은 갑자기 화를 내거나, 울거나, 가지고 있던 물건을 던질 때다. 그럴 기미가 미리 보일 때면 화제를 전환하기도 하고, 상황을 파악하기라도 할 수 있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웃던 녀석이 화를 내거나, 울음을 터뜨리거나 하면 머릿속에 말풍선 여러 개가 동시에 둥둥 뜬다.

'왜 저러는 거지?', '일단 달래야 하나, 잘못을 알려줘야 하나?', '하리 말이 맞나? 혜리 말이 맞나?', '기다려야 하나, 빨리 해결해야 하나?'

이제 막 말풍선들이 떠올라 무슨 말풍선을 붙잡아야 하나 고민하는데, 하리의 말에 모든 말풍선이 팡팡 터져 바닥에 떨어진다.

"엄마 싫어. 엄마가 제~~~ 일 싫어. 나 떠난다? 지긋지긋해."

'응? 내가 뭐 했다고? 지긋지긋하다는 말은 또 어디서 배웠대?'


별일 없었다. 그냥 작은 장난감 하나 가지고 놀면서 내 옆을 빙빙 돌다가 혜리랑 '내 거 줘"하고 싸우다가, 갑자기 소리를 꽥 지르고 장난감을 내동댕이쳐버렸다. 나는 하리와 혜리를 중재했고, 하리의 행동에 대해 "그래도 소리 지르고 던지는 행동은 잘못된 거야."하고 말했다. 그랬더니 하리가 한 말이다. 엄마가 싫고, 그래서 떠날 거고, 이 모든 것이 지긋지긋하다고 말이다. 하리는 올해 6살이다. 나도 6살 때 저랬나?

하루종일 반복되는 실랑이에 나도 좀 짜증이 났다. '하~ 피곤해. 쉬고 싶다. 혼자 있고 싶다. 꿀밤 한 대 세게 날려줘 버릴까. 복식호흡으로다가 소리 한번 질러버릴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왜  저럴까? 나한테 뭐가 섭섭한 걸까?'라고 생각을 바꿔봤다. 사실 우리도 논리적인 척, 이성적인 척하며 살아가지만 때론 내 옆의 가까운 이에게 짜증이 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지 않는가. 내 마음을 몰라줄 때, 듣고 싶은 말이 있을 때 괜히 심술부리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나는 그럴 때 상대에게 어떤 반응을 기대하는지 생각해 봤다. 나에게 상대도 똑같이 화를 내거나, 바로 내 잘못을 지적하거나 하는 건 전혀 원하는 반응이 아니다. 내가 좀 못난 거  알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모른척해주고 그저 "무슨 일 있어?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다정하게 물어봐주길 바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아이도 똑같지 않을까?


"하리 일로 와봐. 엄마가 안아줄게."

두 팔을 벌렸는데 오지 않는다. 그런데 입술이 씰룩 움직인다.

"싫어. 안가. 안아주지 않아도 돼."

"그래. 알겠어. 그럼. 근데~ 그래도 한 번만 안아보자."하고 바보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하리를 살며시 안았다.


몇 분 후 하리가 꼬깃꼬깃 접은 색종이를 가지고 왔다. 편지라며 펼쳐보란다. 열었더니 하리랑 나랑 나란히 서있는 그림이 있고 머리 위로 하트가 그려져 있었다. 하리 마음이 풀어졌음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리고 나한테 미안해하고 있음도. 그때 하리에게 말했다. 엄마는 하리를 사랑하지만 소리 지르고 던지는 행동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엄마도 기분 나쁘지만 네가 제일 속상할 거라고. 이번에는 하리가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나도 매번 이렇게 참아주고 안아주진 못한다. 하지만 매순간순간 노력할 뿐이다. 아이를 사랑하는 일, 이해하는 일. 그리고 내 감정을 다스리는 일도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는 서로 말을 꺼내는 것조차 하지 못할 순간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가 소리를 내는 것, 화를 내는 것, 나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어쩌면 고마운 일이다. 내가 너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니까. 아이들이 다 자라면 지금처럼 나를 이토록 끈질기게 찾고 원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찾는 이 순간, 나의 사랑을 원하는 이 순간을 힘들어하기보다 충분히 누리길 선택한다. 갈 길이 멀다. 오래오래 아낌없이 사랑하기 위해서 벌써 다 쏟아버리면 안 된다. 화를 한 번에 다 쏟으면 안 되고, 사랑도 한 번에 다 쏟으면 안 된다. 화는 아끼고 또 아끼다 너를 살려야 할 때 쓰고, 사랑도 오래오래 영원히 줄 수 있도록 고요히 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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