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규림 Feb 15. 2023

내가 좋아하는 것


산책하는 길.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내가 좋아하는 풍경이 펼쳐져있었다. 푸른 산 위로 하얀 구름이 만들어내는 그늘. 구름이 떠있는 곳 아래로 드리워진 그림자가 산의 푸르름을 더욱 짙게  만드는 풍경은 정말이지 너무나 멋지고 경이롭다. 나는 이 산 위 구름 그림자를 매우 좋아한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사랑하는 것.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사랑하는가?


나는 하리의 오동통한 손을 좋아한다. 작지만 도톰한 그 손을 꼬옥 붙잡고 걸으면 이 세상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작은 아이의 작은 손이지만 그 어떤 손보다  강한 힘을 가졌다. 잠든 하리의 손을 잡고 옆에 가만히 누우면 이 아이의 세상을 내가 반드시 지켜주고 싶은 열정으로 불탄다. 아주 겁 많은 나이지만 그 누구보다 용감해지는 순간이다. 나는 하리의 손을 좋아하고 하리를 사랑한다.


나는 혜리의 보들보들한 볼을 좋아한다. 요 앙증맞은 볼따구니를 어루만질 때면 모든 근심걱정이 녹아내린다. 혜리의 볼에 내 뺨을 갖다 대면 아이의 숨결이 볼에 담긴 듯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더 많이 자라도 이 깜찍한 볼살이 줄어들지 않기를 바라며, 다람쥐가 먹이를 볼주머니에 저장하듯 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리라  다짐한다. 나는 혜리의 볼을 좋아하고 혜리를 사랑한다.


며칠 전 남편이  웬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상자를 여니 '풋밤 스틱'이라 적힌 둥그런 화장품 같은 것이 나왔다. 그 옆엔 손가락 골무 같은 것도 있었다. 평소 주문도 잘못하는 사람이 새로 생긴 화장품 가게에 가서 이런 걸 사 왔다고 생각하니 풋. 웃음이 났다. 내 피부는 엄청 건조한 편인데 겨울만 되면 손과 발이 심하게 갈라진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더 심해졌는데 최근에는 둘째 혜리의 배변훈련 관계로 팬티나 옷을 빨 일도 많아지고 손과 발에 물 묻힐 일이 늘어났다. 그래서인지 손가락 마디 끝마다 살이 갈라져 피가 나고 발뒤꿈치도 마찬가지였다. 아프다고 지나가듯 말했는데  남편이 그걸 다 보고 듣고 있었나 보다. 또, 무심코 다 떨어져 가는 핸드크림 뚜껑을 열었을 때 아래부터 꾹꾹 밀어 올려 푹 잘 나오도록 해놓은 남편의 손길을 발견했을 때 나는 감동한다. 무심한 듯 나를 잘 아는 사람, 나의 아픔과 필요를 알고 있는 사람. 나는 그런 남편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곧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고 그것 혹은 그들은 내 곁에 아주 가까이에 있다. 우리는 늘 멀리 본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 가보지 못한 곳을 갈망한다. 하지만 조금만 떠나보면 곧 알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사랑하는 것은 여기에도 있다는 것을, 아니 사실은 여기에 있는데 자꾸만 한눈파느라 놓치고 산다는 것을. 돌고 돌아 지체하지 말고 오늘 여기서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힘껏 안아보길.



작가의 이전글 하리의 그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