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길.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내가 좋아하는 풍경이 펼쳐져있었다. 푸른 산 위로 하얀 구름이 만들어내는 그늘. 구름이 떠있는 곳 아래로 드리워진 그림자가 산의 푸르름을 더욱 짙게 만드는 풍경은 정말이지 너무나 멋지고 경이롭다. 나는 이 산 위 구름 그림자를 매우 좋아한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사랑하는 것.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사랑하는가?
나는 하리의 오동통한 손을 좋아한다. 작지만 도톰한 그 손을 꼬옥 붙잡고 걸으면 이 세상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작은 아이의 작은 손이지만 그 어떤 손보다 강한 힘을 가졌다. 잠든 하리의 손을 잡고 옆에 가만히 누우면 이 아이의 세상을 내가 반드시 지켜주고 싶은 열정으로 불탄다. 아주 겁 많은 나이지만 그 누구보다 용감해지는 순간이다. 나는 하리의 손을 좋아하고 하리를 사랑한다.
나는 혜리의 보들보들한 볼을 좋아한다. 요 앙증맞은 볼따구니를 어루만질 때면 모든 근심걱정이 녹아내린다. 혜리의 볼에 내 뺨을 갖다 대면 아이의 숨결이 볼에 담긴 듯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더 많이 자라도 이 깜찍한 볼살이 줄어들지 않기를 바라며, 다람쥐가 먹이를 볼주머니에 저장하듯 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리라 다짐한다. 나는 혜리의 볼을 좋아하고 혜리를 사랑한다.
며칠 전 남편이 웬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상자를 여니 '풋밤 스틱'이라 적힌 둥그런 화장품 같은 것이 나왔다. 그 옆엔 손가락 골무 같은 것도 있었다. 평소 주문도 잘못하는 사람이 새로 생긴 화장품 가게에 가서 이런 걸 사 왔다고 생각하니 풋. 웃음이 났다. 내 피부는 엄청 건조한 편인데 겨울만 되면 손과 발이 심하게 갈라진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더 심해졌는데 최근에는 둘째 혜리의 배변훈련 관계로 팬티나 옷을 빨 일도 많아지고 손과 발에 물 묻힐 일이 늘어났다. 그래서인지 손가락 마디 끝마다 살이 갈라져 피가 나고 발뒤꿈치도 마찬가지였다. 아프다고 지나가듯 말했는데 남편이 그걸 다 보고 듣고 있었나 보다. 또, 무심코 다 떨어져 가는 핸드크림 뚜껑을 열었을 때 아래부터 꾹꾹 밀어 올려 푹 잘 나오도록 해놓은 남편의 손길을 발견했을 때 나는 감동한다. 무심한 듯 나를 잘 아는 사람, 나의 아픔과 필요를 알고 있는 사람. 나는 그런 남편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곧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고 그것 혹은 그들은 내 곁에 아주 가까이에 있다. 우리는 늘 멀리 본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 가보지 못한 곳을 갈망한다. 하지만 조금만 떠나보면 곧 알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사랑하는 것은 여기에도 있다는 것을, 아니 사실은 여기에 있는데 자꾸만 한눈파느라 놓치고 산다는 것을. 돌고 돌아 지체하지 말고 오늘 여기서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힘껏 안아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