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채 Jul 28. 2024

가득 찬 세상

2024년 7월 4주 차

 어느 날, 월정리 밤바다를 보며 돗자리에 앉아 노래 들으며 이야기를 나눴던 날. 월정리 낭만도 낭만이지만 진짜 좋았던 거는 모두가 제주와 월정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문득 밤바다를 보다가 누군가가

"근데 월정리 바다는 봐도 봐도 안 질려"라고 했다. 다들 월정리에 질리도록 있던 사람들이면서도 여전히 월정리 바다가 질리지 않는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이렇게나 제주 그리고 월정리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하고 좋은지! 이 낭만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이 순간이 그냥 너무 좋았다.

 이제야 알 거 같은 게 나는 육지에서 외로웠던 것 같다. 사실 회사를 다니면서,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내가 너무 별종처럼 느껴지는 순간들 투성이었다. '왜 나는 남들처럼 그냥 순응해서 살지 못하지?' 하는 그런 순간들. 나는 내가 그다지 특이한 사람이 아니며 평범하다고 생각하는데 회사에서, 도시에서 지내다 보면 내가 하는 생각, 행동들이 그냥 너무 튀고 별종 같아서 그게 너무 혼란스러웠다. 물론 이런 나의 모습을 안 좋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소수이며 내가 뭘 해도 싫어했을 사람이라 상관이 없다. 그래도 내 주변의 친구들은 나의 이런 부분들을 좋게 봐줬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모두가 사회의 일반적인 방식에 잘 녹아들어서 살아가는데 나만 그렇지 못한 거 같아서 나 스스로 너무 별종처럼 느껴졌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나만 벗어나 있는 기분이라 외로웠던 것 같다. 제주에서도 여전히 내가 별종이 아닌 건 아니다. 근데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다들 사회에서의 일반적인 길에서 다소 벗어난 사람들이다. 다들 별난 부분들이 있다. 나만 별난 게 아니라 모두가 별나다. 그러다 보니 내가 별나다고 해서 내가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런 부분을 내가 정말 많이 외로워했다는 걸 문득 깨달았고 여기는 이런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는 곳이라서 나에게 이 시간들이 꼭 필요한 시간들이었으며 앞으로 살아가면서 많은 용기와 위안이 될 시간이라는 게 느껴졌다.

 제주에 살면서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아주 많이, 자연스럽게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비혼주의, 아니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독신주의인 거 같은데 나 이외의 타인과 같이 사는 건 피곤한 일이니 혼자 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혼자서도 모든 걸 할 줄 알아야 할 거 같았다. ‘잘’ 할 필요까지는 없어도 할 수는 있어야 했다. 나는 적어도 나 하나쯤은 먹여 살릴 정도로 돈을 벌 자신이 있고, 적당히 내 영양소를 챙길 만큼 음식도 할 줄 알게 됐고, 청소도 내 나름의 청결도에 맞춰서는 할 수 있으며, 물건이 고장 나도 손재주가 좋으니 내가 스스로 고칠 수 있고, 무거운 짐을 들 수 있을 만큼 힘도 길렀고, 벌레정도야 얼마든지 잡을 수 있고, 깜깜한 밤도 귀신도 무섭지 않다. 이 정도면 혼자 살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그런데 제주에 살면서 내가 아닌 타인과 함께 생활하는 즐거움을 알게 된 것 같다. 나에게 결혼이란 여전히 회의적이지만 가족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은 하게 됐다. 그 가족의 역할은 이야기를 공유할 것. 세상은 다양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있는데 그 수많은 이야기들을 나 혼자서 수집하기란 역시 무리다. 그러니 세상의 재미난 이야기들을 각자 수집해 와서 함께 공유하는 가족을 만드는 것은 어쩌면 꽤 재밌을지도! 여전히 내 인생에서 결혼은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가족을 만들겠어.

이전 29화 변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