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를 위한 변명』(박현도) & 요가와 명상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슬람교'는 생소할 것이다. 그리고 생소함을 넘어서서 어쩌면 부정적인 인식이 큰 종교이기도 할 것이다. 나 역시도 이슬람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는 못했다. 게다가 가족들도 모두 무교인지라 종교사나 종교학에 대해서는 무지했는데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이슬람교라는 종료를 이해하는 데에 아주 친절한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뉴스에 자주 비치던 폭력적인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의 모습보다는 무슬림은 오히려 평화와 청결, 순수를 지향한다는 느낌이 더 강해졌다.
이전에는 종교라는 게 그저 허구를 믿는 것으로만 보였다. 그런데 책을 따라 이슬람교의 역사를 되짚어가니 결국 이슬람교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든 유대교든 모든 종교의 역사가 정치권 싸움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그저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의 꾸란과 성경이 현대사회에서는 헌법과 그 외 다수 법전인 것이다. 무신론자인 나에게는 신이라는 거창한 존재가 있다기보다는 종교사는 하나의 정치사로 보인다. 중세시대에는 종교와 정치가 일치하는 신정 정치였으니, 종교가 정치의 수단이었던 점은 영 틀린 건 아닐 것이다. 물론, 종교인들에게 나의 이런 생각이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종교가 단순히 허구적 행위로 치부되던 것에서 어떠한 구체적인 특성으로 다가왔다는 변화가 생겼다.
특히, '이집트 카이로의 길에서 『꾸란』을 읽고 있는 노인'의 모습은 그저 알라의 말씀을 읽는 신실한 종교인의 모습 그 자체였다. 이슬람교가 폭력의 종교가 아니며 다른 종교들과 다를 게 없을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이었다. 그 노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종교가 없는 나조차도 경건한 마음이 일었다. 결국 모든 종교의 공통점은 내면을 다스리며 수련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니 요가를 하며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근육의 수축과 이완, 호흡에 집중해 보고 자연스레 명상으로 이어가 보자. 이 과정을 통해 신실한 종교인의 태도를 조금이나마 체험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