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일차. 많이 쌓아 온 순례길이라 생각했는데

by 양송이타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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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jpg 산티아고에서의 마지막 아침


산티아고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보낸다는 생각에 사뭇 비장한 심정으로 눈을 떴다. 이제껏 보아왔던 갈리시아 지방 답지 않게 오늘따라 맑은 날씨가 괜스레 미웠다. 짐을 정리하는 데 그동안 사용했던 물건들이 보인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파리에서 며칠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필요 없는 물건들은 모두 버리고 가기로 했다. 매일 아침 함께했던 등산스틱은 더 이상 필요가 없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면 티셔츠와 햇빛 가림용 셔츠도 너무 낡아서 과감히 쓰레기통에 버렸다. 마음 같아선 무릎 보호대와 발가락 양말, 기능성 셔츠 등 싹 다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왠지 이걸 가지고 있으면 순례길의 감정을 생생히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차마 버릴 수 없었다. 한국까지 가져가기로 했다. 그렇게 정리하다 보니 생각보다는 버릴 물건이 별로 없었다. 애초에 한국에서 짐을 많이 가져오지도 않았지만, 순례길을 걸으면서 어깨에 닿는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기위해 하나씩 버렸던 게 그 이유였다. 많이 쌓아 온 순례길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많이 버렸던 순례길이었나 보다.


생각해보면 순례길을 시작할 때의 나는 긴장과 설렘, 두려움, 불안 등의 무게로 잔뜩 짓눌린 상태였다. 땅을 보고 천천히 걸었으며 상대방의 눈을 보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날씨가 아무리 좋아도 내 마음속은 항상 우중충했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던 걸까. 순례길을 끝낸 지금의 나는 가벼워진 어깨의 짐만큼이나 마음이 가벼웠다. 아직 응어리진 마음이 남아있기도 하고 꽁꽁 묶어 둔 비밀도 많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선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짐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 느끼기 위해 허리에 있는 배낭끈을 이용할 줄도 알게 되었고, 무거운 걸 마냥 들고만 있는 게 답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밝음에 끝이 있는 것처럼 어둠에도 끝이 있었다.


산티아고 공항으로 가는 공항버스를 타러 가기 위해 짐을 챙기는데 자고 있던 석재오빠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아 너 이제 갈 시간이네.. 데려다줄게"


02.jpg 공항버스 타러 가는 중


잠결에도 뭐가 그렇게 아련한지 잠이 덜 깬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 정류장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아직 버스가 도착하지 않아서 줄을 기다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어젯밤에 잠깐 보았던 연응씨가 오고 있었다. 피레네에서 같은 날에 출발해 계속 길에서 마주쳤고, 결국 산티아고에서도 만나게 된 연응씨라 그런지 더 반갑고 고마웠다. 짧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경하는데, 며칠 전부터 종종 보았던 할머니가 앞에 계셨다. 공항버스 줄에 서있으신 걸 보면 이 분도 이제 막 순례길을 끝내고 떠나시는 거겠지.


뭔가 이야기를 해 보고 싶은데 좋은 구실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순례길에서 만난 외국인들에게 주려고 한국에서 가져온 기념품이 하나 남았던 게 떠올랐다. 할머니께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여쭙는데 알고 보니 자신의 집 앞에서부터 여기까지 쭉 걸어오신 거라고 한다. 스페인에 사시는 분이셔서 그런가 했는데 아니었다. 집에서부터 여기까지 총 1,600km를 걸어오셨고 이제 순례길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거라고 하셨다. 나는 고작 800km를 걸으면서 세상 경지를 통달한 듯 자만했었는데, 1,600km를 걸어오신 이 분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셨던 걸까. 거리로 측정될 수 없는 게 순례길이라지만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1,600km에 담긴 할머니의 심정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03.jpg (왼쪽부터) 나, 석재오빠, 할머니, 연응씨


시간이 되자 공항버스가 왔고, 악수와 포옹을 나눈 후 우린 각자의 길을 갔다. 할머니와 나는 버스에 몸을 실었고 석재오빠와 연응씨는 알베르게로 돌아갔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밖을 보는데 왠지 익숙한 풍경이었다. 알고 보니 산티아고에 도착했던 첫째 날, 산티아고 도시 입구에서부터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걸어왔던 그 길을 그대로 거슬러 가고 있어서 익숙했던 것이다. 산티아고 대성당에 가면 어떤 표정으로 성당을 바라볼지, 사진은 어떻게 찍을지, 어떤 사람들이 있을지…. 이런 생각들을 하며 걸었던 길이었는데, 빠르게 지나가는 건물들만큼이나 내 과거도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보았던 사람들 대부분을 산티아고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는데, 중간에 만났던 한 부부를 산티아고에서 못 본 게 너무 아쉬웠다. 팜플로냐 바로 다음 마을인 시수르 미노르에서 잤을 때 처음 알게 되었던 분들로. 두 분이 서로 의지하며 순례길을 걸으시는 게 너무 멋있어서 인상에 깊게 남았었다. 길에서 가끔 마주치며 인사를 할 때 느껴지는 특유의 기품과 분위기에 반해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더이상 보이지 않아 무척 아쉬웠다. 이런 생각을 하며 창밖을 봤는데 저 멀리서 큰 배낭을 멘 순례자 두 명이 지나갔다. 자세히 보니 그 부부였다. 이 분들은 여전히 서로를 마주보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서로의 속도를 맞추면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가시는 모습을 보니 괜히 안도감이 들었다. 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걸으셨는데 어느 순간 보이지 않게 되어서 혹시나 건강이 안 좋아지셨거나 다른 일로 순례길을 포기하신 건 아닌가 걱정을 했었다. 여전히 건강히 잘 계신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마지막까지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볼 수 있어서 기쁘고 행복했다.


어느새 산티아고 공항에 도착했다. 9kg이 넘는 내 배낭을 위탁수하물로 보냈다. 탑승시간까지 아직 한 시간이나 넘게 남아서,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보카디요(바게트 샌드위치)와 카페 콘 레체(카페라떼)를 주문했다. 시간도, 돈도 조금씩 남아 기념품 가게를 구경했다. 스페인으로 오기 전 언니가 '유럽은 식재료가 예술이야. 기념품 다 필요 없고 식초나 소금같은 걸 사 와. 걔네 음식의 비결은 바로 그거야!' 라고 했던 게 생각나 정말 식초와 소금을 샀다.


미리 예매해둬서 비교적 저렴하게 탈 수 있었던 부엘링 항공. 한국으로 치면 제주항공이나 부산에어, 티웨이항공과 같은 저가항공이다. 유럽 내를 오가는 저가항공 중 하나로 수하물 분실 문제나 시간 변경 문제 등 말이 많아서 당일 오전까지 어플을 계속 확인해야 했다. 출발 몇 시간 전에 어플로 시간 변경을 통보하는 등 악명이 높았던 터라 걱정했는데, 다행히 별일 없이 탑승할 수 있었다.


벼랑 끝에 몰린 심정으로 적금도 다 깨고 남은 돈을 긁어모아 온 여행이었다. 단 하나의 후회도, 미련도 없이 돌아갈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한국에 도착하면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그래도 내 안의 노란 화살표는 언제까지나 함께할 거니까, 나는 괜찮다.


또다시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했던 나의 한 달. 나의 까미노. 나의 유럽. 나는 평생 이 순간들을 잊지 못 하겠지. 언제까지나 그리워하고 곱씹으면서 이 순간들을 떠올리고 행복해하겠지.


그렇게나 아름다운, 아름다웠던 나의 20대. 그리고 나의 까미노.


이젠 정말 안녕

A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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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마종기, 「바람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