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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송이타파스 Oct 25. 2020

13. 민요 부를 때, 그때가 제일 행복했어.

가족이기 때문에 더 어려웠던 일을 호스피스가 도와주고 있었다.

 3개월, 길어야 6개월이 최선이라던 의사의 말과는 달리 할머니는 1년, 2년이 지나도록 살아계셨다. 수술 후 3년이 되던 해에 할머니는 점점 누워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었다. 가정으로 오는 요양보호사를 구하고 의사의 권유에 따라 호스피스도 신청했다. 의사는 할머니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죽음을 앞두고 있는 환자였기에 더 이상 병원 치료가 불필요하다고 했다.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보는 게 힘들었던 할머니는 의사의 말을 따랐다. 과거 수석 간호사였다는 호스피스 선생님은 50대 정도의 따뜻한 이미지를 갖고 계셨다.


 오늘도 여전히 할머니는 '나 죽는다 이제 그만 갈란다'로 하루를 시작하셨다. 밤낮없이 엄마에게 긴급전화를 해 고통을 호소하시던 할머니는 이미 몇 차례나 119를 불렀었고, 엄마는 할머니의 고통에 눈물을 훔치면서 할머니 댁으로 갔다. 수명이 다해 죽음을 앞둔 사람이 인자하고 평온할 거라는 생각은 아직 죽음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의 생각이었다. 치매, 고혈압, 당뇨 등의 질환이 아니더라도 각종 암으로 인한 고통은 사람을 갉아먹기에 충분했다. 할머니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을 갉아먹히는 기분으로 보내야만 했다. '내가 이래서 수술을 안 하려고 했는데, 아이고 사람 잡네'라는 말로 엄마와 삼촌을 원망하셨다. 그걸 지켜보는 나는 할머니의 고통에 공감해주어야 할지, 일방적인 신음소리에 고통스러워하는 엄마를 위로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런 우리에게 온 호스피스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할머니를 진정시켰다.


'할머님, 오늘은 좀 어떠셔요'

'아이고.. 내가 내 명대로 못 살고 오늘도 여기저기 쑤시고 아이고 죽는다'

'우리 할머님, 이렇게 소리 지르시는 거 보니 오늘은 괜찮으신 갑네.'

'배가 너무 아파 배가..'

'어디가 아파요, 이 쪽? 저 쪽?'

'여기, 여기가 너무 아파서 숨도 못 쉬고 목이 탁 막혀 아이고'

'그럼 이따 제가 돌아가고 나서 이 진통제 드시면 괜찮아질 거예요. 그러고 한숨 푹 주무세요. 오늘은 이렇게 손녀 분도 오고, 따님도 오셔서 집이 환한 것 같은데 안 그러세요?'

'좋지. 이렇게 찾아와 주니 고맙지.

'그렇죠? 이렇게 할머님 좋아해서 걱정하고, 찾아와서 건강 물어보니까 얼마나 좋아요.'




'할머님, 오늘은 할머니 젊었을 적에 어떤 게 가장 좋았는지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고, 가장 행복했던 게 언제였어요?'


 거실에서 의도치 않게 엿듣고 있던 나와 엄마는 이 대목에서 내심 기대를 했다. 엄마를 낳았을 때라든지, 손녀딸의 재롱잔치라든지 혹시 우리랑 관련된 일이 가장 행복했던 일이지 않을까 하고.


'민요 부를 때, 그때가 제일 행복했어.'


그렇구나. 우리 할머니는 나와 엄마랑 함께 있었던 때가 아니라 민요를 부르실 때 행복했구나.


'와~ 민요도 부르셨어요? 어디서 부르셨는데요?'

'내가 예전에 그 노인복지, 복지센터에서 장구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장구 가르치던 선생님이 민요 부를 줄 아는 사람 손 들어 보라 해서 들었지.'

'민요 부를 줄 알고 계셨었구나. 무슨 민요 부르셨어요?'

'손 들어보니 선생님이 민요 한 가락 시켜주시대. 그래서 밖으로 나가 아리랑도 부르고 장단에 맞춰서 아는 민요를 춤까지 춰가면서 다 불렀어. 그런데 선생님이 박수를 그렇게 쳐 주시더라고.'

'얼마나 잘 부르셨으면 사람들이 다 할머니를 향해 환호해주고 칭찬해줬겠어요. 멋진데요.'

'그 날은 기분이 너무 좋아서 집에 와서 수육 한 접시 해 먹었거든. 기가 막힌 날이었지.'

'수육도 드셨구나. 얼마나 신나는 날이었으면.'

'그다음에는 센터에서 다 같이 얄팍한 산으로 소풍을 가는데, 그때 내가 떡을 가져가야 했어. 돌아가면서 사고 있었는데.'

'떡을 돌리셔야 했네.'

'근데 전날에 떡을 만들다가 깜빡하고 늦잠을 잤어. 그래서 떡을 들고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뛰어가서 나눠줬거든. 선생님도 그렇고 다들 그렇게 맛있게 먹어주는 거야.'

'떡이 또 엄청 맛있었나 봐요. 할머니가 떡을 또 잘 만드셔서.'

'선생님이 늦었다고 민요 한 곡 뽑아달라 그래서 한 가락 길게 뽑았는데, 다들 그렇게 날 보고 엄지손가락 치켜들고 박수쳐주대. 그게 그렇게 기억에 남아. 그게 최고로 행복했어. 최고. 그다음부턴 내가 복지회관 민요 강사가 되어서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들 가르쳐 주고 그랬지 뭐.'




 호스피스는 마지막을 앞둔 환자들이 편안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마냥 두렵고 힘든, 고통스러운 죽음이 아니라 온전한 사람으로서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사실 이런 역할은 타인이 아닌 가족이 해야 하는 일인데도, 막상 죽음 앞에서 고통스러워하는 가족을 보고 있으면 우리도 울상이 되어버리고 만다. 가족이니까. 가족이니까 더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호스피스는 환자의 평정심과 가족들의 앞길까지 함께 밝혀주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가족이기 때문에 더 어려웠던 일을 호스피스가 도와주고 있었다. 선생님 덕분에 할머니가 웃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더 보게 되었다고, 선생님의 앞길도 누구보다 환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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