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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송이타파스 Nov 01. 2020

14. 꽃다발에 곰팡이가 슬도록 버리지 않으셨다.

진작 꽃을 사다 드릴 걸 그랬다.

 할머니의 생일날,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할머니의 올해 생일이 마지막 생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몇 주 전부터 할머니의 생일선물을 준비했다. 할머니가 어떤 물건을 좋아하실까는 이제 크게 의미가 없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할머니에겐 꽃을 드리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꽃을 준비하고 싶었다. 생명력이 강한 꽃을 보고 죽음을 향한 두려움과 고통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길 바랬다. 수소문 끝에 할머니 댁 근처의 꽃집을 알아내었다. 꽃집에 할머니 사정을 말씀드리고 꽃에 특별히 신경 써달라 요청을 드렸다.


 직장에서 휴가를 쓰고 대구로 내려왔다. 할머니의 특별한 생일날 꽃집에서 꽃을 찾아 할머니 댁을 갔다. 꽃은 정말 예뻤다. 이름을 잘 모르는 꽃이지만 꽃집 사장님의 말에 의하면 꽃말은 뭐 하나 나쁜 게 없다고 했다. 지저분하게 떨어지거나 꽃잎이 흐트러지면서 떨어지는 꽃도 없다고 했다. 할머니에게 큰 꽃다발을 안겨드렸다. 뭘 이런 걸 사 오냐고 인상을 살짝 쓰셨지만 꽃 냄새를 맡으시곤 잠깐 환히 웃으셨던 걸 슬쩍 볼 수 있었다. 저기 올려두라며 TV 옆을 가리키셨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의 환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할머니의 웃음을 볼 수 있다면야. 이걸로 충분했다.




 2,3주가 지나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할머니가 내가 준 꽃을 버리질 않으셔서 곰팡이가 슬고 썩은 냄새가 난다는 거였다. 승은이가 준 꽃인데 어떻게 버리냐며. 꽃 뿌리와 줄기에 곰팡이가 슬어 고약한 냄새가 나는데도, 할머니는 엄마가 꽃에 손을 대기만 하면 절대 버리지 말라며 호통을 치셨다고 한다. 살아생전 처음 받아본 큰 꽃다발이라며, 손녀가 준 꽃을 쉽게 버릴 순 없다고 하셨다.


 엄마의 SOS를 받고 바로 대구로 내려갔다. 할머니 댁에 가 보니 정말 꽃 밑동에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몇 주나 지났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3,4일만 지나도 꽃이 시드는데 꽃집 사장님이 정말 좋은 꽃을 주신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꽃에서 나는 악취는 숨길 수가 없었다. 할머니에게 내년 생일 때는 더 예쁜 꽃을 드리겠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곰팡이가 핀 뿌리와 상한 줄기를 잘라내어 다듬었다. 아직도 싱싱하게 남아있는 꽃과 풀로 꽃병을 다시 장식했다. 더 이상 살려낼 수 없는 최소한의 꽃만 버리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 꽃들이 싱싱한 꽃까지 죽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도 했다. 할머니는 그제야 납득을 하셨고, 남은 꽃들로 어릴 때 배운 꽃꽂이 잔기술을 떠올려 꽃병을 장식했다.


 할머니는 버려진 꽃들이 너무 아깝다고 하셨지만 엄마는 곰팡이 핀 꽃을 잘 버렸다고 씩 웃으셨다. 나는 저 꽃보다 더 예쁜 내가 할머니의 꽃이 되어주겠다며 애교를 부렸다. 어이없는 애교에 헛웃음을 지으신 할머니는 남편에게도 못 받아 본 꽃을 받을 수 있게 해 줘서 정말 고맙다고 하셨다.


 비싼 물건을 선물로 드리면 항상 이런 걸 왜 사 왔냐며 질타를 하시는 바람에, 꽃을 드릴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진작, 진작 꽃을 사다 드릴 걸 그랬다.


이렇게 좋아하실 줄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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