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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송이타파스 Nov 15. 2020

16.  요양병원(2)

많이 수척해지고 마른 할머니의 몸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들어가신 지 몇 주가 지났다. 엄마는 매일 요양병원에 할머니를 보러 갔다. 병원에 갈 때마다 엄마는 요양보호사와 의사를 만나 본인이 없는 시간에 할머니를 잘 보살펴 달라며 부탁을 하고 오셨다. 멀리 사는 외삼촌들도 매일 할머니에게 전화를 드렸고, 거의 매주 대구에 내려와 할머니와 함께 있다 갔다.


 나도 언니도 이제는 언제라도 할머니가 떠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할머니를 종종 뵈러 갔다. 엄마와 할머니는 요양병원까지 굳이 왜 오냐고 하셨지만 그래도 나는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병원에 주차를 해놓고 외삼촌께 전화를 드렸다. 이번 주는 큰 외삼촌이 오셔서 할머니와 같이 있을 거란 이야기를 들었다. 외삼촌은 근처 공원에서 할머니와 산책을 하고 있으니 조금 있다 오라고 하셨다. 언니와 나는 공원으로 걸어갔다. 저 멀리 할머니가 보였다.


 할머니는 외삼촌이 끄는 휠체어에 앉아 천천히 바람을 쐬고 계셨다. 2월의 추운 겨울날 고운 색깔의 털옷을 입고 따뜻한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 할머니를 보았다. 5, 60년 전에는 할머니가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하고 계셨을 텐데, 이제는 자식이 끌어주는 휠체어에 앉아계셨다. 할머니에게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 할머니는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셨다. 가까이 와서 '삼촌! 할머니!' 하고 불렀을 때 우리를 알아보셨다. 할머니는 초점 없는 눈으로 겨울바람을 마주하다 우리를 보고는 환히 웃으셨다. 여기까지 뭐하러 왔냐는 말과 함께.


 할머니와 조금 더 산책을 하고 요양병원으로 올라가셨다. 요양병원 뒷문이 산책로와 이어져있었고, 휠체어 경사로가 잘 되어있어서 수월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병실로 들어가 할머니를 침대에 눕혔다. 요양보호사가 잘 다녀오셨냐며 맞이해주었다. 할머니는 차가운 바깥과 실내의 따뜻한 공기의 온도차를 견디기 어려워하셨다. 갑작스럽게 실내복으로 갈아입게 되면 감기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천천히 공기에 적응할 수 있게 시간을 두었다. 할머니는 반쯤 앉을 수 있게 모양을 만들어놓은 침대에 누워 우리를 바라보셨다.




 그 후로도 요양병원에 몇 번 더 찾아갔다. 할머니를 더 오래, 더 많이 보고 싶었다. 하루는 할머니가 몸이 붓고 아프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요양보호사에게 팔과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하셨지만, 요양보호사는 할머니 혼자에게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없다며 다른 환자에게 갔다. 여러 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었기에 매일 우리 할머니 옆에만 있을 수 없었다.  그 날은 내가 할머니의 몸을 주물러 드렸다. 팔과 어깨, 다리를 약하게 주무르는데 할머니의 뼈가 한 줌도 안 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할머니는 잘 드시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하셔 왔고, 살이 많이 쪄서 무릎이 아프다고까지 하셨었는데 이제는 그런 말을 할 수도 없게 되었다. 살이라고는 거의 잡히지 않는 팔을 조심스레 만졌다. 조금만 힘이 들어가도 통증을 느끼셨기 때문에 체온으로 마사지를 했다. 할머니의 작은 손 끝에서부터 뼈밖에 남지 않은 어깨와 목까지 천천히 주물렀다. 할머니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계속 주물렀다.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다.


 할머니는 곱게 화장한 내 얼굴이 참 예쁘다며 내 얼굴을 어루만지셨다. 평소 화장이라고는 제대로 하지도 않고 주말엔 화장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인 나였지만 오늘은 화장을 하고 싶었다. 할머니가 기억하는 나의 모습은 할머니가 좋아하는 모습이었으면 했다. '할머니 저도 이제 웃을 때 주름도 생기고, 입가에도 조금씩 나이 든 흔적이 보여요.' 가벼운 이야기를 하며 할머니의 미소를 이끌어냈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과일을 깎았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했다. 내 모든 시간은 할머니에게 맞춰져 있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이렇게 나의 모든 시간을 쏟아본 적이 얼마나 되었던가. 할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보답한다고 하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고 할머니를 사랑한다고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마음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 가장 큰 나무가 되어주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믿어주었던, 내가 너무나 속을 썩였던 할머니를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울면서 왔다. 주변의 누군가가 죽음에 가까워진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이렇게나 사랑하는 사람이라니. 너무 끔찍하고 잔혹했다. 상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지난날을 후회할 수도, 돌이킬 수도, 혹여나 누군가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사람의 자연스러운 죽음은 내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나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나는 그토록 무력했다. 엄마는 이 기분을 매일 느끼며 살아왔겠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무력감에 고통스러워했겠지.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매일을 잠들었을까. 무력과 상실 앞에 홀로 선 엄마는 어떤 기분으로 오늘을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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