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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송이타파스 Nov 29. 2020

18. 각자의 불편하고 슬픈, 그리고 어지러운 하루

 오송역에서 제일 빠른 대구행 기차를 찾아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언니에게 받은 장례식 주소로 갔다. 언니에게 전화해서 곧 도착한다고 알렸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서울과 경기도에서 출발한 삼촌들이 이미 와 계셨다. 엄마에게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출발하신 모양이었다. 내가 도착했을 땐 장례식장 한쪽 벽에 할머니의 예쁜 사진이 걸려있었다. 업체에서는 다듬은 꽃을 할머니의 사진 옆에 하나씩 꽂고 상에 올릴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다 오셨나요? 하는 직원의 말이 들렸다.


 가족을 잃은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건 카탈로그를 보는 것이었다. 상복을 고르고, 조문객의 규모와 음식을 결정했다. 화장터와 화장방식을 골랐다. 어떤 유골함에 담을 건지, 선산까지는 어떻게 이동할 건지. 상조 직원은 상을 당한 고객 앞에서 예를 다했다. 죽음이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속에서 정중하면서도 침착하게 일을 진행시켰다. 비용 산정이 끝나고 상복을 갈아입었다. 하얀 깃이 달린 까만 한복이었다. 하얀 핀을 머리에 꽂았다. 상중이라는 뜻을 가진 리본 핀이었다. 회사에서 발랐던 붉은 립스틱을 물티슈로 닦아내었다.


 친척들 모두 상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니 상조회사 직원이 조문객을 맞을 때의 예절을 설명해주었다. 헌화하는 법, 향을 꽂는 법, 상주의 위치, 절을 하는 법 등을 하나씩 알려주었다. 손주들까지 모두 모이자 10명이 넘었다.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했다. 상주였던 사촌오빠는 조문객을 맞이하기 위해 자리를 지켰고, 삼촌들은 각자의 손님을 맞이했다. 사촌동생들은 신발을 정리했고 조문객 숫자를 세었다. 조문객을 위한 음식들과 각종 화환, 조기 배달에 서명을 했다. 삼촌이 나를 찾아 현재 상황과 해야 할 일들을 알려주면 나는 그걸 정리해 사촌동생들에게 다시 알렸다. 상조 직원이 조문 상황을 보며 필요한 걸 알려줄 때면 나는 그걸 해결했다. 나는 가족들을 챙기기에 바빴다.


 절에서 스님이 오셨다. 할머니가 매일 기도를 올리던 절이었다. 스님은 목탁을 두드리며 극락왕생을 기도하는 기도문을 읊으셨다. 아빠는 스님 뒤에서 같이 기도를 올렸다. 우리는 밀려오는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새벽이 되자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 본가와 할머니 댁, 언니 집, 그리고 장례식장 이렇게 네 군데로 흩어져서 잠들었다. 사촌오빠는 할머니 댁에서 밤새도록 그렇게 울었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불편하고 슬픈, 그리고 어지러운 하루를 마무리했다.




 할머니는 생전에 장례를 최대한 짧게 지내 달라고 하셨다. 행여나 우리가 힘들어할까 봐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우리는 삼일장을 지내기로 했다. 첫째 날 밤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둘째 날은 본격적으로 조문객을 맞이했다. 셋째 날은 상복을 벗고 아침 일찍 화장터로 갈 준비를 했다.


 화장터는 구미에 있었다. 화장하기 전 할머니를 예쁘게 화장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혔다. 그 모습을 본 외숙모가 할머니께서 마치 살아계신 것 같이 고왔다고 하셨다. 장례식장을 떠나기 전 간단한 예를 갖추고 버스에 탔다. 한참을 달려 화장터에 도착하니 우리 앞에 장례를 치른 다른 가족이 화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화장을 하기 직전 고인의 관을 CCTV로 볼 수 있었다. 정장을 입고 하얀 면장갑을 낀 직원들이 관을 화로에 집어넣었다. 가족의 시체에 불이 붙어 타오르는 장면을 보던 사람들이 오열하기 시작했다. 불이 타오르는 내내 그들의 마음도 찢어질 듯이 타올랐다. 서로의 손을 부여잡고 기둥 옆에 주저앉아 세상을 잃은 듯이 울던 그들의 모습에 괜히 긴장이 됐다.


 다음엔 우리 차례였다. 불이 붙는 할머니의 모습에 마음이 동했지만, 오열하지는 않았다. 뭔가 강하 내려앉은 것이 더 무겁게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할머니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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