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바람이 부는 4월초의 날씨는 아름다웠다. 굽이진 산길을 차로 한참이나 올라갔다. 벚꽃이 예쁘게 핀 양지바른 곳에 멈췄다. 상조회사에서 미리 천막을 치고 트럭에서 음식을 준비해놓았다. 할머니를 보내기 전 마지막 식사를 했다. 식사를 끝내고 할아버지의 묘가 있는 곳까지 걸어올라갔다.
행렬의 제일 앞에는 할머니의 사진을 든 사촌오빠가 있었다. 가벼운 액자였지만 사촌오빠의 어깨는 한없이 무거워보였다. 누구보다도 사촌오빠를 사랑해주던 할머니였기에, 사촌오빠의 상실도 컸을 것이다. 외롭고 쓸쓸한, 하지만 누구보다도 진중해야 하는 사촌오빠는 가족이 짊어져야 할 짐의 대부분을 혼자 지는 것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나도 그 짐을 나눠들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촌오빠 옆에서 같이 산길을 걸어올라가주는 것 뿐이었다.
3일장이 끝나고 할머니는 할아버지 옆에, 양지바른 곳에서 지내시게 되었다. 그 날은 정말 벚꽃이 예쁘게 폈었다. 할머니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날에 떠나고 싶다고 했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한 줌이 된 할머니를 땅에 묻고 마지막으로 묵념하는 순간에 갑자기 우리 모두를 감싸는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멀리서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날개짓하며 울었다. 꾀꼬리같은 할머니의 노래소리같았다.
아, 할머니구나. 진짜 우리를 떠나는 구나.
활짝 핀 꽃잎들이 바람에 날려왔다. 우리들에게 보이지 않는 할머니 앞에 꽃길을 만들어 줄 것만 같았다. 누구보다도 사랑이 넘쳤던 할머니는 당신의 사랑을 자식들에게 베풀고는 꽃길을 즈려밟고 사뿐히 떠나셨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우리 할머니.
2019년 4월 1일.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날에 꽃길을 즈려밟고 사뿐히 떠나셨다.
그 곳에서는 무릎도 안 아프고 날씨도 좋고, 맛있는 것도 실컷 드실 거다.
완벽히 혼자가 된 엄마를 지키기 위해 휴가를 쓰고 할머니의 친척들을 만나러 갔다. 할머니의 형제들과 그 자식까지 모두 만났다. 내가 모르는 친척들이 많았다. 할머니의 올케할머니는 할머니의 비보를 듣고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는데, 건강이 안좋아 도저히 갈 수가 없어 밤새도록 기도만 하셨다고 한다. 떠난 사람을 함께 추억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이었다. 모두 할머니에게 받은 사랑만을 이야기하셨다. 어려울 때 도움을 받았던 일, 할머니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위로가 되었던 일, 할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 할머니에게 따끔하게 혼났던 일 등 몇날 몇일이고 우린 할머니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는 존재하지만 실존하지 않는, 보고싶고 듣고싶은 감정을 억눌러야 하는 그런 대상이 되었다. 오랜 준비 끝에 떠나셨기에 슬픔도 예견되어있었다. 그럼에도 우리의 슬픔은 익숙하지 않았다. 내안에 남아있는 할머니보다 엄마에게 남아있는 할머니가 더 컸을 게 분명했다. 엄마는 할머니의 죽음을 덤덤히 받아들이면서도 그 누구보다도 공허한 마음을 끌어안고 계셨을 것이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른 엄마는 오늘을 어떻게 보냈을까. 어제는 어떻게 보냈으며 내일은 어떻게 보낼까. 슬픔은 이제 남은 사람의 몫이 되었다.